[미디어펜=석명 기자] ▲ 목 잘린 시체
1999년 12월 31일, 하루 남은 밀레니엄을 기다리며 사람들의 설렘과 환호로 가득했던 그 날. 경기도 파주시 송촌 인근의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군인 박 씨는 잊지 못할 일을 경험했다. 부대로 이어진 보급로를 지나가던 중 도로 옆 풀숲에 놓여있던 한 남성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매우 잔인하게 살해당한 듯 보였지만, 범행을 감출 것 없이 보란 듯이 도로변에 유기되어 있던 시신.
"처음에는 마네킹을 누가 거기다가 버려놓은 줄 알았어요. 도로에다 탁 던져놓고 간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시체더라고요." - 최초 목격자 박00 씨 -
박 씨의 신고로 현장에 도착한 경찰도 현장을 확인하며 놀랐다고 한다. 시신의 목이 마치 참수된 것처럼 절반 이상 잘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숨진 사람의 신원은 단번에 밝혀졌다. 명찰도 달린 택시 기사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피해자. 그는 서울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하던 김인식 씨였다.
부검 결과, 고인의 사망원인은 목 졸림 및 17cm에 이르는 경부 절창. 그러니까 김 씨는 흉기로 공격당하기 전, 이미 목 졸림을 당했다. 피해자를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는 모자라, 확인 사살을 하듯 재차 잔인하게 목을 벤 살인자. 12월 31일 그 날, 택시 기사 김인식 씨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치명상이 두 개가 돼버리잖아요. 목 졸림도 있고 칼에 베인 상처도 이렇게 되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치명상은 하나. 나머지는 다른 목적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 - 전북대 법의학교실 이호 교수 -
▲ 미스터리에 빠진 살인범의 정체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먼저 단순 택시강도 사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근에서 발생했던 택시강도 사건과 관련 용의자들을 수사했다. 1999년 당시만 해도, 택시비로 카드 결제나 휴대전화 결제가 되지 않던 때라, 택시 기사들의 현금을 노린 강도 사건이 종종 발생했던 상황.
경찰의 수사가 이어지던 중 시신 발견 3일째 되던 날, 시신 발견 장소로부터 약 29km 떨어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청 인근에서 김 씨의 택시가 발견된다. 문이 잠긴 채 발견된 차량 내부에서는 의외로 다툼이나 사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차 안에 남아있던 물품은 김 씨의 휴대전화, 현금 27,000원이 든 지갑, 18,000원어치의 동전, 그리고 김 씨의 메모장 등이었다. 택시강도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택시 안의 현금도 그대로였고, 차 안을 뒤진 흔적도 없었다. 과연, 택시 기사 김 씨를 공격한 것은 택시강도가 아니었던 것일까?
"옷도 얼마나 깔끔하게 입는지 몰라요. 격식을 갖추고 예절을 갖추고… 누구 원한 살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보면 인사도 꼬박꼬박 잘하고, 누가 욕하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일을 잘했어요." - 김 씨의 전 동료들 -
경찰은 수사 범위를 넓혀, 피해자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은 없는지 김 씨의 주변 관계와 채무 관계도 수사했다. 살인자가 목을 깊게 벤 행위도 치정이나 원한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었기에, 김 씨의 친구나 가족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당시 김 씨는 부인과 이혼했던 상태. 부인을 포함해 처가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의심스러운 알리바이를 가진 사람이나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 밖의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김 씨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은 일면식도 없는 강도였을까, 아니면 알고 지내던 면식범이었을까. 김 씨와 살인범은 그날 도대체 어떻게 만났던 것일까
▲ 범인의 시그니처… 매듭
시신 발견 이후 경찰의 수사는 계속되었지만, 살인범에 대한 단서는 오리무중이었고,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김인식 씨가 사망한 지 22년이 흘렀지만, 김 씨의 유족들은 꼭 범인의 정체를 밝혀 사건이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성실하던 아들이자 동생이던 김인식 씨는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어야 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4명의 법의학자, 7명의 과학수사 전문가와 함께 1999년 당시 범인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재추적했다. 먼저 살펴본 것은 살해 도구들이다. 피해자의 목을 베는 데 사용된 칼도 중요하지만, 사건 당시 시신에 남아있던 끈도 분석 대상이다.
사건 당시 범인은 숨진 김 씨의 손을 끈으로 포박했었는데 그 끈을 묶은 방법이 특이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직업군이 사용하거나 특정 작업에서 이용하는 매듭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범죄자들이 남기는 시그니처처럼 매우 독특하다는 범인의 매듭법. 과연, 시신의 손목에 감겨있던 끈은 용의자를 추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여기 끈이 좀 특이하더라고요. 왜냐면 여기를 3번, 4번을 묶었다, 돌렸다 그랬죠. 결박하는 방식이 그냥 우연히 나온 방식 같지는 않거든요." - 매듭을 본 전문가들 -
▲ 지도로 그려보는 범인의 윤곽
제작진이 또 주목한 것은 지리적 프로파일링이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차량이 있었던 장소, 남아있는 증거와 정황 등을 분석해 당시 미처 보이지 않았던 단서는 없는지 분석했다. 또한 범행이 발생한 현장들의 지리적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범인 검거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지오프로스' 기법도 살펴봤다.
범행 장소 데이터로, 범인이 어디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은지, 또는 범인의 주된 활동 영역이 어디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지오프로스' 기법. 과연, '지오프로스' 기법으로 1999년의 사건을 되짚어 볼 수 있을까.
오늘(27일) 밤 11시 10분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살인범의 지도 – 파주 택시 기사 살인사건' 편으로 22년 전 잔혹하게 살해된 故 김인식 씨의 사망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행동 분석(MO기법)'과 '지리적 프로파일링' 등 과학수사 기법으로 새롭게 분석해 살인자의 윤곽을 추적한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