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말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생활임금제의 법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현재 서울시 부천시 등 18개 지자체가 생활임금제를 시행 중이다. 18개 지자체는 상위법 근거 없이 조례를 통해 생활임금제를 도입한 것이다. 향후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생활임금제가 전국 지자체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문제는 생활임금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가 재정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에 영향을 끼쳐 노사갈등을 촉발시킨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생활임금제도의 섣부른 도입 보다는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도입을 신중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생활임금제도 확산이 미칠 영향력과 법적 검토를 통해 전반적인 문제점을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바른사회는 <생활임금제도, 왜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가 생활임금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발표했고,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이헌 변호사(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가 토론자로 나섰다. 각 패널들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혼란, 민간노동시장에 미칠 파장, 법제도적 문제 등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아래 글은 김이석 소장이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혼란
1. 노동시장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장
지난 4월말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생활임금제의 법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현재 서울시, 부천시 등 18개 지자체들이 생활임금제를 시행중이며, 이들은 상위법 근거없이 조례를 통해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고 한다. 이번 환노위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그런 생활임금제도에 법률적 지위를 확실하게 부여하려는 것이다.
국회에서 입법되었거나 입법이 시도되는 법안들 가운데 노동과 관련된 법안 중 대다수가 마치 노동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되지 않는 것처럼 다루지만, 실제로는 노동시장도 엄연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하는 시장이다. 이점을 망각하면 약자를 돕겠다는 좋은 의도에서 시도된 입법이라 하더라도 결과는 엉뚱하게도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시장에서 작동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감안하지 않은 채 취약계층의 임금을 높이겠다는 정책으로 내세운 명분과는 달리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의 취업을 막는 대표적인 가격규제 악법이다. 이는 경제원론에 나와 있는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다.
2. 최저임금제는 미취업 미숙련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킨다
경제원론 교과서에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제와 그 작동원리에서 다를 바 없는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취약한 것 같다. 그래서 왜 그런지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갑의원이 투자자들로부터 저평가돼 자본확충에 애로를 겪는 기업들을 지원해 주기 위해 주당 1만원이라는 주가하한선을 두는 입법을 제안했다고 해보자. 그 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제 주가 1만원에 못 미치는 기업들이 새로운 설비투자를 하거나 임금을 더 줄 수 있어 경제 전체에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혹시 새로운 주식을 더 비싼 가격으로 산다고 하더라도, 주식투자자는 수중에 비싸진만큼 더 적은 돈이 남게 된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법적으로 규정한 주가 1만원 미만인 5000원인 회사의 거래는 실종될 것이고 주식투자자들은 1만원보다 비싼 주식을 사려고 할것이다(1만원 미만이라는 법적하한선이 있어서). 주식시장에 들어올 자금 총액에 별 변화가 없다면 미소를 머금을 사람은 갑의원의 예상과 달리 주당 가격이 1만원을 넘는 기업의 CEO일 가능성이 높다(캘러헌, 「대중을위한경제학」).
▲ 4월 1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사무실에서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최저임금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 계획을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최저임금제도 마찬가지이다. 취업자들(그 대변자인 노동조합)은 1만원이 넘는 주가를 가진 기업의 CEO와 같은 입장이고, 미취업자들은 주가가 5천원인 기업의 CEO와 같은 처지이다. 노동의 가격을 강제로 일정액 이상으로 묶으면, 기업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져다 줄 사람으로 고용을 한정한다. 최저임금제는 취업자들을 미소짓게 만들고 취업을 하려는 사람들의 처지를 더 어렵게 만든다.
장기적으로 이미 취업한 사람들의 임금을 제외한 근로조건은 악화될 가능성이 많다. 시장가격에 비해 더 높은 임금에서는 노동의 공급자가 수요자에 비해 더 많다. 미취업자들은 열심히 일자리를 찾고자 하지만 쉽게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언제든지 쉽게 대체할 인력이 있는 상황에서는 고용환경이 악화되기 쉽다. 이는 마치 커피값을 내리면 커피의 질이 낮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취업자들도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기 어렵게 된다.
3. 최저임금 위에 또 다른 최저임금 ‘생활임금’을 도입한다고?
그런데 최저임금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려고 하기는 커녕 여기에 더해 생활임금제도라는 최저임금제와 개념적으로도 구별되지 않는 모호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쟁의의 소지를 만들어 내는 제도의 도입이다. 이런 제도의 도입은 그 의도가 선의로 포장되어 있으나 실은 지자체의원들의 자신들의 직분을 망각한 행위이다.
생활임금제도는 의원들이 자신들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지자체에 고용된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생활’임금을 주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최저임금을 지적했던 알바몬 광고. 최저임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킨 광고였다. /사진=알바몬 광고영상 캡처 |
그러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지자체가 주민들의 부담을 최소로 만들면서 양질의 공공행정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독려하고 감시하는 것이 임무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는 커녕 많은 지자체가 재정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오히려 지자체로 하여금 더 많은 임금을 주도록 규제를 하려고 한다면, 이는 일종의 포퓰리즘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지방의회의 결정 속에 있을 수 있는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환노위에서 생활임금제의 법적근거를 뒷받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그래서 이런 포퓰리즘을 권장하는 셈이다.
4. 개념상의 혼란: 최저임금과 구별하기 어려운 생활임금
또한 생활임금은 그 개념정의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경기도 생활임금 지원조례안은 생활임금을 “근로자가 가족을 부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는 것인지는 사람마다 그 의견이 모두 다르다.
한달에 한번씩 오페라를 볼 수 있을 정도라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혹은 아닌지 어떻게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개념적 모호성은 생활임금을 최저임금이나 국민기초생활법상의 최저생계비(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와의 구분도 어렵게 한다. 결국 이는 이를 결정할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나 사람들(위원회)이 결정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이는 생활임금을 지급할 의무를 지는 사람은 결국 이 위원회가 정하는 수준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급하게 되면 법적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생활임금의 도입은 분쟁을 발생시킬 소지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5. 최저임금만으로도 노동시장의 왜곡 충분, 더 왜곡시킬 필요 없어
사실 최저임금만으로도 노동시장은 충분히 왜곡되고 있고, 미취업 노동자들은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생활임금이란 제도를 도입해서 생활임금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받고서라도 취업해서 일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의 꿈을 짓밟지 말기 바란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