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문화평론가 |
일본으로선 때만 되면 소녀상 주변에 몰려드는 한국인 피켓 시위대 때문에 마음 편할 리 없다. 주변에 제복차림의 전경들이 배치된 풍경도 이 주변에, 아니 한일 양국 사이에 형성된 긴장감을 말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해 11월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요청해왔다.
우파 성향의 일본 시민단체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바 있으나 일본 당국이 문제 제기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런 사안을 묵살한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4년 전 느닷없이 설치된 단발머리 소녀상의 문제점
그들은 대중의 반일 정서에 영합하는 보도만을 반복하기 때문에 소녀상이 담고 있는 불편한 진실에 전혀 관심 없다. 당시 한일간 국장급 협의 소식을 전하며 연합뉴스는 "이런 요구는 억지를 넘어 우리 정부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으름장부터 놨다.
이렇게 경직된 상황에서 위안부 소녀상 문제에 제3의 의견을 내는 건 사회적 금기에 속한다. 저번 글에서 지적한대로 “정대협의 생각에서 벗어난 의견”을 내는 건 매국노 소리를 감수해야 하는데, 나는 굳이 그걸 괘념치 않으려 한다.
▲ 주한 일본대사관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 글의 목표는 소녀상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통념이 과연 건강한가를 묻는 것이다. 우선 4년 전 설치된 이 동상은 설치 장소부터 심한 외교적 결례일뿐더러, 미학적으로 쾌적하지 않다. 이토록 조야(粗野)한 수준으로 설치물로 과연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과 도덕을 말할 수 있을까?
동시대의 국제윤리를 상징하기엔 이 소녀상이 역부족이며, 일본에 대한 도덕적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카드로도 쓸모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피할 수 없다. 최선의 경우 ‘성공한 환경조형물’이자 우리시대 기념비 반열에 올라서야 했지만, 어떤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휴머니즘과 평화에 호소하는 한국민의 마음까지 적절히 보여줘야 했어야 했다. 그런 판단은 필자 혼자만의 것이었는데, 공감해주는 이가 있어 반가웠다. 그게 <제국의 위안부>를 쓴 세종대 박유하 교수다.
그런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이 책은 괘씸죄로 몰려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았으리라. 박 교수가 지적하는 소녀상의 문제는 이게 일제하 위안부들의 평균적인 모습과 무관하게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의 딸”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제 위안부들의 평균연령 25세였는데, 이 작품은 10대 소녀로 설정됐다.
▲ 주한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조각상은 외국공관에 대한 결례로 비칠 수 있다. 언론도 반일정서에 부합하는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정부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의 딸”묘사는 잘못
우리는 그녀들이 일제 관헌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강제동원, 즉 끌려갔다고 믿고 싶으니 의도적으로 소녀를 맨발 차림으로 묘사했다. 주먹을 꼭 쥔 채 쏘아보는 듯한 분노의 눈빛도 그 때문이다.
박 교수가 학술 차원에서 파악한 위안부들의 실제 모습이란 ‘민족의 딸’혹은‘성처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은 ‘피해자’이자 ‘협력자’의 두 얼굴을 가졌다. 당시 상황에서 가족 부양을 위해 나섰던 자의반타의반의 희생정신도 있었고,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피해여성이기도 했으니 매우 복합적이다.
‘저항하는 위안부’이미지란, 그래서 정대협이 생각하는 위안부 상의 결정판이다. 또 한국인만이 믿고 싶어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따라서 박 교수는 단언한다. “위안부 소녀상에는 역사 속의 위안부는 없다”고….(<제국의 위안부> 204쪽)
필자 역시 공감한다. 때문에 한국인의 옹고집이 만들어낸 소녀상을 외국 공관 앞에 말뚝처럼 세워놓았다고 일본인들이 뉘우치고 감동할 리도 없다. 상식적으로 고증이 어색한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우선 단발머리부터 걸린다. 단발머리는 소녀가 입고 있는 한복과 매치도 어색하다. 일제시대 젊은 여성들에게 단발머리는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았다. 1920년경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오엽주(吳葉舟)가 1920년 화신상회에서 미장원을 개업하여 유행시킨 게 단발머리라고 하는데, 당시엔 전통적인 댕기머리가 압도적이었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다소 엉뚱한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단발머리는 그 소녀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됐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요령부득의 말에 불과한데, 그게 이 작품을 제작한 부부 조각가 김운성(52), 김서경(51)씨의 설명이다.
소녀상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는 작은 새도 세상을 뜬 위안부 할머니들과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자유와 평화를 담고 있다는데, 이쯤되면 노골적인 의미부여에 속한다.
더 큰 문제는 시민들의 풍속이다. 일부는 날이 춥다고 털모자에 스카프 그리고 양말을 신겨주는 게 보통이다. 이런 모습을 언론들이 잊지 않고 조명하면서 반일 정서를 그때그때 반복해 자극해준다.
과거사와 안보를 구별해 다룰 것을 조언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네 풍속이 아니다. 경주남산 등 야외에 널린 게 부처상-보상상인데, 한국에서는 춥다고 옷 입혀주고 목도리를 둘러주는 일 따위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그건 바다 건너 일본의 풍속일 뿐이다.
우리는 일제에 반대하기 위한 동상을 일본 식 헤어스타일로 장식해놓고, 추모도 일본 스타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결정적인 건 이 동상물의 설치 과정도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 앞의 부부 조각가가 자진해서 제작 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별다른 검증과정 없이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이 부부 조각가가 미술계에 대표성을 가졌는지도 거의 알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 소녀상은 확산일로다. 고양시 호수공원과 성남시청 공원, 수원 올림픽공원 등에도 등장할 전망이다. 미국 글렌데일과 디트로이트 시(市) 등 해외에도 속속 세워지고 있다.
이런 것이 마구 불어난다고 국제사회의 일본에 대한 여론을 좌지우지 할 것 같지 않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보고 싶은 건 한일 간 우호 증진의 대승적 차원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자문해봐야 한다. 식민지 시절 피해자들의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고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좋으나 그걸 반일 히스테리로 펼치는 게 과연 온당한가? 그건 후손들의 못난 한풀이는 아닐까?
다행히 며칠 전 청와대는 한일관계 연내 해결을 다짐했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과거사와 안보를 구별해 다룰 것”이라고 언명했다. 진작 그랬어야 옳았는데, 정대협의 주도하는 반일 히스테리부터 다스릴 것을 조언해주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잊고 있는 듯한데, 올해 2015년은 역사적인 한일 수교 반세기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