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64) 우주의 본성과 질서에서 배우라
플라톤(기원전 427~347)의 <티마이오스>
▲ 박 경 귀/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누구나 한번쯤은 달과 별이 수놓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한한 우주 공간의 신비와 장엄함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숱한 행성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지만 광대한 우주 공간 속에서 질서 있게 공존하고 있음을 보면서 인간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현세의 왜소함과 혼란한 삶을 대비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천상의 질서가 구현될 수 없을까? 우주의 작동 원리와 인간 세상의 작동 원리는 일치될 수 없을까? 우주의 본성과 질서를 어떻게 현실세계 인간의 삶에 구현할 수 있을 지를 궁구한 이가 플라톤이다. 그의 사색의 결과물이 <티마이오스(Timaios)>이다.
이 책은 플라톤 철학의 색다른 넓이와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저작이다. 플라톤 철학의 관심 범주가 정치철학과 윤리학에서 우주론과 생리학까지 튼실하게 뿌리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오로지 정치학에 치중한 중국의 제자백가에 비해, 진정한 철학을 연구하고, 우주와 인간의 본성을 과학적이고 의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의 탁월성에 놀라게 된다.
<티마이오스>가 다루는 주제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다룬 국가체제에 관한 내용과 약간 다른 분야인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름다운 국가’를 만들기 위한 기본적 질서를 검토하는 과정의 사유라는 점에서는 긴밀하게 맥락이 닿는다.
특히 바람직한 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본(paradeigma)으로서 우주적 질서의 본질을 검토하고, 나아가 인간의 혼과 몸, 감각기관의 작동 현상에 내재한 원리를 찾아보려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를 주는 작품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통해 9,000년 전에 지중해 너머 대서양에 존재했었다고 믿어지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형성과 멸망의 이야기를 서두로 시작하는 이유도 훌륭한 질서를 갖추고 이를 유지시켜 나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도출해 보기 위한 것이다.
대화에 참여한 크리티아스는 자신의 조부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아틀란티스에 대해 소개한다. 그 출처는 솔론이 이집트의 사제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훌륭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풍요와 번영을 누리던 아틀란티스가 갑작스럽게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오만(hybris)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테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아틀란티스 섬이 바다로 침몰하면서 문명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향과 같았던 아틀란티스의 번영과 멸망의 상세한 과정은 플라톤의 연이은 저작 <크리티아스>에서 계속 전개된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다른 우주적 질서와 인간의 본성, 그리고 ‘최선의 삶’에 대한 논의를 공동체 차원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 아테네 학술원 앞의 플라톤 좌상, ⓒ박경귀 |
원래 플라톤은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의 3부작을 구상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번째 책인 <크리티아스>가 미완성으로 그치다보니, <헤르모크라테스>는 아예 쓰이지 못했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번영시켰던 요소는 계승하고, 멸망하게 한 요소들은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했던 것 같다. <크리티아스>가 완성되었더라면 그의 의도와 구상을 보다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 세상을 바르게 세우는 모델을 우주적 질서와 구조에서 찾고자 했다. 우주의 생성과 순환의 원리를 본(paradeigma)으로 삼고, 우주가 작동되는 형태(모습: idea)와 성능(dynamis)의 원리대로 인간 세상을 설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주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신은 불과 흙으로 우주의 몸통을 구성했다. 플라톤은 우주의 생성과정에 등비 비례(analogia)가 적용되고, 입체적인 것들이 조화롭게 결합되도록 천구(ouranos)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특히 우주는 우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신의 기술에 의해 창출되었다고 보았다. 우주에 혼(psyche)과 지성(nous), 지혜(phronesis)가 담겼다고 본 이유다.
천구가 영원한 회전과 순환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은 비가시적인 혼과 지성, 조화(harmonia)가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우주는 동일성(tauton), 타자성(thateron), 그리고 존재(ousia)가 혼합된 것으로 보았다. 천구가 보여주는 “스스로 자신으로 회전하여 돌아오는 운동”은 곧 자신의 동일성을 가장 잘 유지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곧 자기 동일성의 속성이다. 타자성은 다른 물체와 가분적인 속성이다.
천체의 회전운동도 구체적으로 나누어 바깥쪽 운동을 ‘동일성의 운동’으로, 안쪽 운동을 ‘타자성의 운동’으로 구분했다. 천체의 구성물들이 각기 회전의 방향이 다르게 설정되고, 일정 비율에 따라 운동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천체의 일정한 운동에서 “필연적으로 ‘지성적 이해(nous)’와 인식(episteme)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천체 활동의 구체적인 예로 태양과 달, 금성과 여러 행성들의 회전 궤도가 각각 수학적으로 적합한 수와 비례에 의한 일정한 회전 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우주의 질서(kosmos)를 구성하는 원리다.
플라톤은 우주적 본성과 질서를 본받아 인간의 몸과 혼이 구성될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 몸의 모든 구성요소들은 지성에 의한 “필연(ananke)의 산물들”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주적 본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지성과 앎(episteme)가 중요하다. 특히 불, 물, 공기, 흙의 4원소의 본질적 속성을 심도 있게 고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체의 각 부분은 4원소의 적정한 비율에 의해 구성되고, 그에 따라 각 기능이 다르게 된다. 천체가 동일성과 타자성의 운동으로 완전한 질서를 형성하고 있듯이, 인체에서는 각 기능의 균등성과 불균등성의 원리가 작동된다는 것이다.
신체의 감각적 느낌들(pathemata)과 지각이 인식되는 원리에 대한 플라톤의 치밀한 설명과 논리 전개는 히포크라테스에 버금가는 의학적 지식에 바탕하고 있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각이 4원소가 갖고 있는 특정한 비례 관계(symmetria)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맵고, 짜고, 쓰고, 단 느낌들이 “흙의 성분을 지니고 있는 입자들과 공기의 입자들”의 비례 관계 속에서 입자 운동의 유형이 다른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다양한 질병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각 기능이 불균형에 이르거나 이성과 사려 분별이 관여하지 못하게 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자연적으로 부여된 기능의 적정 비율(kairos)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경우 ‘무질서 상태(ataxia)’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곧 질병이다.
인체 요소의 구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기능이 적정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신적인 조화(hamonia)의 모방(mimesis)”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기능의 ‘모자람’과 ‘지나침’이 없는 상태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다. ‘신적인 조화’의 가장 완벽한 모델은 우주적 질서다.
따라서 <티마이오스>의 교훈은 명확하다. 우주적 질서를 본받을 때 우리 몸의 기능도 가장 아름답고 균형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 신체의 작동 원리를 우주적 본성에서 끌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인간 이해의 깊이를 알게 해준다. 결국 플라톤은 인간의 ‘최선의 삶(aristos bios)’은 우리 안에 있는 우주적 질서, 즉 신적인 요소들을 지성과 지혜로 깨닫고 그 본성을 올바르게 모방할 때 얻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 것 같다.
인간이 우주(kosmos)의 온전한 모상(模相)이 될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해 질 수 있다. 질서 있고 정돈된 삶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갖가지 유혹과 탐욕에 휩쓸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스스로 해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 나태로 인해 인간의 삶은 이러한 ‘최선의 삶’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삶의 플라톤이 지성(nous)과 지혜(phronesis)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추천도서: 『티마이오스(Timaios)』, 플라톤 지음, 박종현․김영균 공동 역주, (2011, 8쇄), 30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