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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신공항 논란 국가 통치력 부재 '민낯'

2015-05-18 10:02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지난 정부에서 백지화된 밀양과 가덕도에 대한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이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두 후보지를 놓고 벌이는 신공항 유치경쟁이 해당지역만의 관심일수는 없다. 최소 10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이 경제성 부족으로 실패할 경우, 막대한 공적 부담으로 작용해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2014년 8월 영남권의 중장기 수요조사용역을 통해 2025년에 이르면 연간 2,051만 명에 이를 것으로 발표했다. 한편, 제주공항은 연간 여객수요가 2300만 명을 넘어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 신공항 건설이든 기존 공항의 확장이든, 공항건설 정책에 대한 방향성 논의가 시급하다는 의미이다. 일각에선 총선을 불과 1년 앞둔 상황에 신공항 건설이 정치바람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는 신공항이 영남권 5개 지방공항의 여객을 모두 흡수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을지, 거시적 시각에서 공항의 수용력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했다. 바른사회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화실에서 <동남권 신공항 논란의 재점화, 공항건설 정책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의 사회로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가 발표했다. 패널로는 윤덕영 대림대 항공서비스과 교수, 황명선 항공경영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가 참석하여, 영남권및 제주도 신공항 건설의 타당성과 공항수용력 확대방안을 놓고 공항의 수요자 관점에서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했다. 아래 글은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통치의 위기와 조직화된 무책임: 국책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소위 영남권 신공항 건설에 관련된 논란은 국가통치행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생각한다. 신공항 건설의 검토와 백지화, 그리고 재추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10조원이 넘는 대형 국책사업이 얼마나 졸속으로, 그리고 무책임하게 추진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많은 국민들은 신공항 건설을 고집하는 영남 지역민들이 과도한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처음 신공항 건설을 요구했던 이들의 염원은 지역발전이었을 것이다. 국가적 차원의 국가개발이나 재정의 효율적 배분은 부차적 문제였을 것이다.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고민할 만큼 정보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발전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 한계가 있다. 지역발전을 염원하는 이들이 국책사업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부정적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다. 각 지역이 지역발전을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전체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역이기주의 보다 이러한 지역적 요구를 국가적 차원에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국가의 ‘통치능력(statecraft)’이 결핍되어 있다는데 있다. 지역의 요구는 넘쳐나고 재정은 제한된 상황에서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 선택과 배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논리와 근거로 정부의 결정을 설득시킬 수 있는 통치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신공항 건설과정에 정부가 보여준 ‘건설 검토와 백지화, 그리고 재검토’ 과정 자체가 국가능력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국가재정을 뒤흔들 국책사업이 지역민들의 압력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 영남권 신공항 건설에 관련된 논란은 정부의 국가통치행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통치능력의 기반, 즉 정당성의 토대는 통치에 대한 ‘신뢰’이다. 정부의 판단과 결정이 합리성과 일관성을 갖고 있을 때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신공항 건설사례처럼 백지화와 재추진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가정책은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마 다른 지역의 국민들은 영남권 신공항이 재추진된 것은 대통령의 소신이라기보다 영남권의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간주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선거를 계기로 지역개발정책을 공약으로 밀어붙이면 될 것이라는 힘의 정치를 배우게 될 것이다. 안 되는 일은 안 되어야 하는데, 안 되는 일도 ‘떼’를 쓰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때문에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에게 떼쓰지 말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압력에 휘둘리고 있는 자신들을 탓해야 한다.

국가정책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상황에는 전문가 집단의 무책임한 태도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2011년 신공항 건설은 타당성이 없다고 백지화를 주도했던 국토교통부는 3년 만에 정반대의 결과보고서를 냈다. 국토연구원과 교통개발연구원이 각기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들이 이렇게 상이한 평가를 내린 것은 연구 자체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연구기관들이 용역 발주처의 입장에 맞춰 평가한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연구진의 입장에서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정부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당성 분석을 담당한 연구기관의 잘못으로 실패한 개발사업의 대표적 사례는 용인선 경전철 사업이다. 이 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맡았던 기관은 한국교통연구원 전신인 교통개발연구원이었다. 이 기구에서는 하루 이용객이 16만4000명이나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3만명 수준에 그쳤다. 매년 473억원의 적자로 내고 있지만 조사기관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각종 국책사업이나 민자투자사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무책임한 타당성 조사와 사업추진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떼’쓰는 유권자와 이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사업추진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 신공항 건설의 검토와 백지화, 그리고 재추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10조원이 넘는 대형 국책사업이 얼마나 졸속으로, 그리고 무책임하게 추진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발전을 위해 각종 국책사업 유치를 주장하는 지역유권자들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자세를 갖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발전의지와 욕망 자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책사업유치와 같은 경쟁적 상황에서 좀 더 공정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갖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공정한 절차에 합의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태도가 중요하다. 경쟁적 지역주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근거와 논리를 갖고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유치경쟁에서 자주 발견되듯이 지역간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무능한 중앙정부는 지역발전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원흉인 셈이다.

무엇보다 국정운영의 본령으로서 대통령이 잘해야 한다.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선출되기 때문에 선거경쟁에 내포된 ‘정치적 거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대규모 국책사업은 대부분 대통령선거를 통해 표출된다. 지역유권자들은 당선가능한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자신들의 지역개발사업을 포함시킴으로써 실현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신공항 건설이 대통령 공약으로 줄곧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선거경쟁의 현실을 감안할 때, 대통령 당선자는 정권인수과정을 통해 과도하고 타당성 없는 공약은 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 공약 가운데 10-20% 정도의 공약을 포기하는 대신 나머지 80-90%는 꼭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당선된 대통령이 ‘공약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이제 관료들과 연구기관들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일이 남는다. 많은 국책사업들은 전문적 평가와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 역시 타당성 평가는 전문가의 몫이다. 이들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조사, 평가하느냐가 정책결정자나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타당성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토교통부 사업의 타당성 분석을 하위 연구기관인 한국교통개발원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부처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연구진을 구성해서 타당성 조사를 맡기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가 복잡해지고 각종 위원회가 범람하면서 ‘무책임이 조직화’(organized irresponsibility되는 현상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실패할 일도 감행할 수 있는 기회’(free to fail)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자신의 판단과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제도와 구조를 마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정치인에서 관료, 그리고 관련된 연구진에 이르기까지 공적 행위에 대해 보다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 제도적 차원의 선결과제이다.

특히 국책사업의 경우 연구자들의 전문적 평가와 판단이 중요한 만큼 그들의 책임을 엄정히 묻는 것이 필요하다. 잘못된 분석결과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경우 경제적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잘못된 타당성 분석에 의한 사회적 실패를 막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경쟁과 정치적 압력에 약한 정치인의 오류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가들의 공정하고 책임 있는 자세가 더욱 소중하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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