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기존 사업 모델(BM)이었던 단거리 여객 운송에서 탈피해 과감한 도전에 나선다. 사업 영역도 넓히고 규모가 더 큰 기재를 들여와 수익원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나, 실패 사례가 상당해 성공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제주항공 737-800 여객기./사진=제주항공 제공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내년부터 차세대 보잉 여객기 737-8 40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리스가 아닌 직접 구매를 통해 매달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아끼고, 구형기를 송출해 기단 현대화를 이뤄낸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여타 국적 LCC들이 모두 항공기 리스 전문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항공 사업에 나서는 점에 비하면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제주항공이 들여오고자 하는 737-8은 현행 주력 여객기 737-800 대비 항속 거리가 1000km 이상 길다. 해당 기종으로는 인천에서 중앙아시아·인도네시아까지도 운항이 가능해 신규 노선 취항도 가능하다. 아울러 기존 대비 연료를 15% 이상 아껴 좌석당 소모 비용은 12% 줄일 수 있어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개선도 이뤄낼 수 있을 전망이다.
애경그룹 지주회사 AK홀딩스는 제주항공 최신예 여객기 도입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지난 1일 1097억7500만 원을 출자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출자는 오는 14일 예정돼 있고, 출자 목적물은 제주항공의 기명식 보통주 1375만6269주다
AK홀딩스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고난의 행군을 해왔는데, 최대 주주로서 당연히 증자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며 "당초 EB는 1000억 원 규모를 예상했으나 차세대 기단 도입 후 운항 거리 확대에 따른 신규 노선 취항 등 경쟁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나옴에 따라 예상을 웃도는 기관 투자자가 참여했다"고 전했다.
제주항공 카고기 모형./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최근 보잉은 '세계 상용 시장 전망 2022~2041 보고서'를 발행했다. 이에 따르면 전 세계 항공화물 물동량은 연간 4.1%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맞춰 제주항공은 지난 6월 20일부로 화물 운송 사업을 개시했다. 인천-하노이 화물 노선에는 현재 운용 중인 여객기와 같은 기종을 개조한 737-800BCF 1대가 투입된다. 제주항공은 다양한 형태·종류의 화물 운송을 통해 고 부가 가치를 창출해낸다는 계획이다.
운송 실적도 △6월 242톤 △7월 920톤 △8월 952톤 △9월 1060톤으로 매월 늘어나는 추세로, 3개월 반 동안 총 3174톤의 화물을 실어 날랐다. 주요 품목은 전자 상거래 물품·의류·기계 부품 등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앞으로 화물기를 확충할지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아시아권 수요 공략에 집중해 당사만의 화물 영역을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중대형 여객기 A330-300./사진=국토교통부 항공기술정보시스템(ATIS)
티웨이항공은 제주항공과는 정 반대로 중대형기 A330-300을 도입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에 의한 본격 국내 항공 시장 빅뱅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이사는 2027년까지 대형기 20대·중소형기 30대 등 총 50대의 기단을 갖추는 '벌크업'을 이룩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 티웨이항공은 지난 5월 28일 인천-싱가포르 노선에 취항했고, 올 12월 23일에는 인천-호주 시드니 구간에 항공편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대형 항공사(FSC)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노선들인데, 티웨이항공은 원가 경쟁력에 초점을 맞춰 합리적인 수준의 운임으로 좌석 공급 확대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당초 티웨이항공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노선 운항을 올해 6~7월 중 개시하고자 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장기화로 취항 시기를 늦췄다. 또 런던·파리·로마·이스탄불에도 진출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국내 기준 일본·중국·동남아시아까지만 간다는 기존 LCC의 개념과 BM의 공식을 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현재는 아무 것도 정해진 바 없지만 차후 A330-300 대비 더 먼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여객기를 들여올 수도 있다"고 답변했다.
에어프레미아 보잉 787-9 드림라이너(상단)와 인천-LA 노선 취항을 기념하는 직원들./사진=에어프레미아 제공
2017년 '에이피에어'로 설립된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아는 첫 여객기부터 신조 대형기로 시작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띄웠다. 2019년 3월 국토교통부로부터 항공 운송 사업 면허를 취득한 이후 에어프레미아는 보잉 787-9 드림라이너 5대를 발주했고, 2020년 2월 운항 증명(AOC) 발급을 신청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2개월 여 간 김포-제주 간 시범 상업 운항을 하다 12월 인천-싱가포르, 올해 1월 인천-베트남 호찌민 화물편 정기 운항을 시작했다. 올해 9월과 10월에는 2·3호기를 순차적으로 들여왔고, 지난달 29일에는 인천국제공항 제1 여객 터미널에서 인천-로스앤젤레스(LA) 노선 신규 취항 행사를 가졌다.
에어프레미아는 저렴한 항공권 가격과 기내 서비스를 제시하며 모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왕복 기준 항공권 가격은 인천-싱가포르 33만~40만 원대에, 인천-LA는 100만 원 언저리에 책정했는데, 이는 기내식·담요·헤드폰·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제공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에어프레미아는 내년 상반기 중 4호기와 5호기를 들여온다. 유명섭 에어프레미아 대표이사는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2024년까지 787-9 10대를 꾸려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공항에 주기돼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처럼 K-LCC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전례 없는 사업 전략을 꺼내들고 있지만 무조건 낙관만 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이들이 노선 확장을 할 수 있는 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승인함과 동시에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명분으로 슬롯·운수권 배분을 명령해서다. 하지만 LCC들이 이를 빠르게 흡수하지 못할 경우 외국 항공사들이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가 기간 산업인 항공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국익에 반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와도 궤를 같이 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LCC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도전일 수 있지만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고 있고,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돈줄이 말라간다"며 "주먹 구구식이 아닌 철저한 검증을 통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LCC=무조건 단거리'라는 공식에 함몰될 필요는 없다"면서도 "생각보다 수익성을 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에 없던 각종 K-LCC 사업 모델이 정립되면 우후죽순처럼 동참할 것인 만큼 테스트 베드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