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19일 오전 불법이 일상화된 현행 집회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독일의 사례를 통해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집회의 자유도 공짜가 아니다 : 독일집시법이 주는 교훈’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는 김상겸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발표를 맡았으며, 김영호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창연 푸른도서관운동본부 부대표,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자로 발표한 김영호 교수는 “폭력 시위의 비율은 최근 들어서면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불법 시위의 비율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며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집회 문화가 아직 선진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김영호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우리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집회가 불법적이고 폭력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 통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폭력 시위의 비율은 최근 들어서면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지만 불법 시위의 비율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집회 문화가 아직 선진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시위 때마다 많은 부상자가 발생함으로써 집회 문화의 후진성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올바른 집회 문화의 정착을 통하여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집회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유는 국민이 합의한 헌정질서와 체제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유는 방종과 구별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자유는 무제한적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J. S. 밀이 말하는 것처럼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데까지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집회 과정에서 기물을 파손하는 등 다른 사람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민주사회에서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또한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에 대해서 폭력을 가하는 것은 국가질서와 공공의 이익을 훼손시키는 행위로서 법에 따라서 엄정하게 다스려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선진적 집회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는 국회가 대의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갈등을 수렴하고 토론하여 조정하고 해결해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이익단체들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국회보다는 직접 거리로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진적 집회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국회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그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든 문제를 거리로 가져가려는 사회적 경향은 결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 사회에서 집회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의제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우리 사회에서 집회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의제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표를 선출하여 국사(國事)를 처리하는 대의제는 한국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대의제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는 동어반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대의제가 곧 민주주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2천 년 전 아테네에서 행해진 직접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한국 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제’는 나라의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할 수 없어서 간접민주주의인 ‘대의제’를 택한 것이 아니다.
제헌헌법부터 1987년 헌법까지 한국민주주의는 ‘대의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단체의 활동이라든지 국민의 참여 행위는 어디까지나 ‘대의제’를 활성화시키고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집회와 시위를 통해서 직접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통해서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대의제’를 대체하려는 발상은 커다란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의제에 대한 오해가 우리 사회에서 집회 문화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합의한 정치체제는 ‘대의제’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선진적 집회 문화 정착을 방해하는 또 다른 중요한 정치문화적 요인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만장일치제적 사고’이다. 대의제는 다수결 원리를 그 기본으로 하고 있다. 투표를 통해서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된 국회는 당연히 다수결에 따라서 사안을 처리해나가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은 다수결을 무시하고 이런 만장일치제적 사고가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국회의 이런 사고가 국민의 정치에 대한 생각에도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투표를 통해서 결정이 이루어지면 국민들은 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법안이나 정책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이에 승복하지 않고 이 문제를 거리로 가져나가려는 잘못된 정치문화가 국회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퍼짐으로써 불법적 집회와 시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 문화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대의제와 다수결 원리에 대한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의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호 성신여자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