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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유죄? 배임죄에 휘청거리는 기업

2015-05-31 09:4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최근 전 태광그룹 상무가 병세 악화로 형집행정지와 재수감을 반복하다 숨지면서 사법치사(致死)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고령의 나이와 지병으로 정상적인 수감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제때 병원치료가 힘들어 결국 사망에 이른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무리한 법집행이 이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편 사법부의 눈치보기식 판결의 문제도 있지만 법률자체의 모호성, 법관의 이념차에 따라 자의적 잣대로 판결이 이뤄지는 상황도 심각하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법적 해석을 달리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법 판단이 일관성을 지켜야 예측 가능한 법치주의 사회를 확립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사회구성원들이 믿을 만한 법원을 찾아나서야 할 판이다.

수사-판결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사법제도의 실질적인 개선은 지속됐지만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이번 사법치사 논란을 비롯해, 사법부의 과도한 법집행이 가져올 폐해를 짚어보고 동시에 사법부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개혁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사법의 신뢰성, 어떻게 높일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발제자로 참석한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발표를 통해 “사법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판여론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유전유죄’를 선택하는 데 이를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사법부가 재량적 판단에 따라 유·무죄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조문들을 대대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자주]

 

   
▲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과도한 수사에 휘청거리는 기업

I. 문제제기

지난 2015년 4월 전 경남기업 회장이었던 고(故) 성완종씨가 검찰 수사 중 자살한데 이어, 지난 2015년 5월 7일에는 이선애(88) 전 태광그룹 상무가 중증 치매에도 불구하고 2014년 3월 교도소에 재수감됐다가 넉 달 뒤 풀려나 병원에 입원치료 중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기업인 수사와 법집행이라는 점에서 사법부가 여론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법집행을 하였다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고 있다. 특히, “유전무죄”라는 말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법부는 정의여신 디케 (Dike)가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가 무색하게 “유전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비판들도 있다.

결국, 사법부가 재량의 여지를 많이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사법부가 귀를 기울이는 순간 “유전유죄”판결의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법치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중요하며, 동시에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형벌의 적용범위를 최소화하고 범죄구성요건을 명확히 하여 사법부의 자의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지난 2015년 3월 2일 헌법재판소는 신현규 전 토마토저축은행 회장과 채규철 전 도민저축은행 회장이 형법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背任罪) 규정에 관해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다. 즉, 사법부의 재량의 여지가 큰 배임죄에 대한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여전히 사법부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게 되었다.

   
▲ 지난 2015년 4월 전 경남기업 회장이었던 고(故) 성완종씨가 검찰 수사 중 자살한데 이어, 지난 2015년 5월 7일에는 이선애(88) 전 태광그룹 상무가 중증 치매에도 불구하고 2014년 3월 교도소에 재수감됐다가 넉 달 뒤 풀려나 병원에 입원치료 중 사망했다. /사진=연합뉴스

더욱이 지난 3월 3일에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제정되면서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원, 기자, 사립학교법인 이사장이나 이사 등이 1회 100만원 이상, 연 300만원 이상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두는 등 여전히 사법부의 재량의 여지를 법률로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 2015년 4월 말에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국민들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생활임금제의 법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한 바 있다.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개정안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활임금제란 “근로자의 실질적인 생계유지에 필요한 수준의 임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법률로 구체적으로 명시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입법안은 생활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생활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을 낮춘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은 병과(倂科)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최저임금법 제28조 제1항). 또한 도급인에게도 연대책임이 발생하여 근로감독관이 그 연대책임을 이행하도록 시정지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도급인이 시정기한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 제28조 제2항). 이 뿐만 아니라 양벌규정이 적용되어 대표자도 처벌을 받도록 하는 등 엄격한 형사 처벌이 가해진다(법 제30조).

   
▲ 지난 4월, 두꺼비 진로의 창업 2세, 장진호씨가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재계 24위까지 부상했던 진로는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금융차입으로 외환위기를 맞아 공중분해되었다. 장전회장은 배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국내에 귀국하지 못하고 캄보디아와 중국을 유랑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는 생활임금의 개념이 법적으로 명확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등식을 성립시켰지만, 최근 기업인 관련 수사를 보면서 사법부가 재량권을 “유전유죄”에 사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점을 중심으로 경영판단 또는 기업인에 대한 형사벌 법제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보고자 한다.

II. 기업인과 경영판단에 대한 형사벌 제재현황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앞의 부정청탁금지법이나 최저임금법개정안이 우리사회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법시 행 후에나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법부가 과도한 수사를 하여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이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한 것은 현행 법률들이 과도하게 기업활동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근거조문들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행정규제법인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자본시장법 등 경제규제 법률들의 대부분이 행정벌 외에도 형사벌이 가능한 입법체제를 갖고 있다. 심지어 회사법 내에도 형벌규정이 비교법적 차원에서 볼 때 압도적으로 많다. 예를 들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행위’에 대하여 과징금 등의 행정벌, 징벌적 손해배상, 그리고 추가로 형사벌도 가하고 있다(동법 제4조 제1항, 제30조 제1항 제1호, 제35조).

공정거래법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또는 채무보증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당해회사의 주주의 주식소유현황·재무상황 및 다른 국내회사 주식의 소유현황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을 경우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동법 제13조 제1항, 제63조 제3호). 자본시장법도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여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제출하지 않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동법 제444조 제13호 라목, 제28호).

   
▲ 일각에서는 기업인 수사와 법집행이라는 점에서 사법부가 여론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법집행을 하였다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고 있다. 특히, “유전무죄”라는 말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법부는 정의여신 디케 (Dike)가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가 무색하게 “유전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비판들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사법에도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형사벌 규정들이 많다. 예를 들어 영미법에서는 아예 회사법에 형벌 규정이 없으며, 독일은 주식법 내에 6개, 일본은 16개의 형사벌 조문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회사법은 622조에서 634조의3까지 17개의 규정을 두고 있다. 물론, 프랑스 상법의 경우에는 대략 18개의 형사벌 조문을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위험범의 처벌이 가능한 배임죄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구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대부분은 항상 형사처벌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기업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III. 현행법상 사법부의 자의적 해석에 의한 형사처벌가능성

우리나라에서 사법부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형사벌이 가능한 대표적인 범죄가 배임죄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배임죄로 인하여 사법부가 행하는 재량적 판단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죄목을 붙여 우리 사회가 비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여론에 부담을 가진 사법부가 다시 재량권을 행사하여 “유전유죄”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2015년 3월 2일 신현규 전 토마토저축은행 회장과 채규철 전 도민저축은행 회장이 형법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背任罪) 규정에 관해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다.

현행 배임죄 규정은 형법 제정 당시인 1953년부터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배임죄의 처벌 대상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단지 개인 사업자의 하수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들의 배임행위에 대한 입증이 쉬웠고 손해 사실도 분명했기 때문에 법 적용상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60년이 지난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수천, 수만의 주주들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기업 CEO에 있어 무엇이 배임인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처벌받게 되는지 불분명하게 됐다. 특히, 복잡다단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험적 투자를 해야 하는 경영자들에게 있어 배임죄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비수와도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이 모든 문제는 현행 배임죄 조항이 안고 있는 2개의 치명적인 결함에 기인한다. 우선, 배임죄의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우리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1871년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명문화한 독일의 경우 ‘법률 또는 관청의 위임, 법률 행위 혹은 신임 관계에 의해 부여된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자’만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형법상 고의가 없어도 배임죄 성립이 가능하지만, 1907년 배임죄를 규정한 일본은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반’한 경우, 즉 고의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결국, 우리 배임죄 규정은 죄형법정주의의 핵심인 명확성의 원칙과 형법 제13조에서 정한 고의범 처벌 원칙에 반하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특경가법상 배임액이 50억 원을 넘는 경우 무기징역 등 가중 처벌하도록 한 것 역시 ‘재산범죄에서 이득액은 불법을 판단하는 핵심적 요소’라며 ‘이를 기준으로 한 단계적 가중처벌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만 언급했다. 1984년 특경가법 제정 당시 50억 원의 화폐 가치와 30년이 지난 현재의 화폐 가치를 동일하게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산범죄인 배임죄에 대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한 중범죄와 동일하게 엄중한 처벌을 가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 물론, 배임죄를 적용함에 있어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사법 당국이 피의자의 고의나 손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형법상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부정하는 배임죄 규정은 사법부에 폭넓은 재량을 허용하면서도 국민 기본권의 핵심인 죄형(罪刑)법정주의, 과잉 금지의 원칙을 침해하는 형벌제도이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부터 사법부가 자유롭기 위해 “유전유죄”라는 마녀사냥을 선택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무엇보다도 사법부의 재량을 최소화하는 입법적 개선노력이 필요하다.

IV. 결어

한 연구보고(김일중, 규제범죄에 대한 과잉범죄화, CFE 정책제안 15-09, 2015.2.24.)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차례 이상 벌금 이상의 형벌을 받은 전과자가 2010년 기준 1100만명(누적치)에 달하고, 2020년께 전과자가 총인구의 32%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기업인과 경영판단에 대한 형사벌 현황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가 없어서 기업인 수사로 인한 폐해가 어느 정도 큰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공정거래분야에서 과거에는 공정거래법위반행위의 특성상 형사적 제재를 적극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들어와서 사회적 비난여론 때문에 형사 처벌을 강화하여 공정위의 고발비율이 2008년 4%(29건)수준에서 2013년 18%(56건) 수준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개인고발 사건도 2008년 24건에서 2013년 42건으로 크게 증가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간접적 통계를 보건대 현행법상 기업인 수사 및 형사처벌 가능성은 법제도적으로 볼 때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을 도태시키는 법제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 창조기업이 탄생하는 것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여론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하여 사법부가 “유전유죄”를 선택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사법부가 재량적 판단에 따라 유̝무죄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조문들의 대대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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