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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성수대교 베일벗은 영화 창작의 비밀

2015-06-02 11:1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창작은 무엇으로 하는가?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라는 콜라 비법 레시피를 캐는 이 물음은 아주 산뜻하면서도 케케묵어 뵌다. 쉽게 말해줄 수도 없고 설사 설명한다고 해도 창작의 고통에 깔려보지 않은 사람은 체감하기 힘들다고나 할까? 백인백색 저마다 유형도 다르고 프로세스도 천차만별인 게 바로 창작의 비밀인가 보다.

모든 걸 다 빨아들이는 미디어업계, 문화산업의 웜홀이라고 할까, 이 창작 시크릿은 저 건너 편 명작과 대박 안에서 우뚝 서 있지만 아무 것도 토하지 않는 신기루처럼 몽환적일 때가 많다. 그러니 언제나 애가타고 어렵게만 보이고...
그랬던 천하의 깍쟁이 창작의 비밀이 그만 살짝 천기를 누설해주었다. 6월 1일 신촌 메가박스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 & 캐치 행사에서다. 1부 극영화 부문 피치 & 캐치 현장이 보여준 시크릿은 바로 이러하다.

영화 <히치하이크> 피칭이 진행된다. 스크린 가득히 뉴스 기사가 들어온다. 구룡마을 화재 사건 뉴스다.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면서도 철거 대상으로 노상 뉴스에 오르내리던 그 곳에 주인공 가족이 산다. 피칭에 나선 신예 정희재 감독은 자신의 구상과 집필, 기획과 설계가 누구나 흔히 일상에서 주워 올리는 뉴스 한 꼭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장례비를 봉투에 둔 채 홀로 목숨을 끊은 남자. 실직한 어머니와 두 명의 딸. 온 가족이 함께 자살한 사건. 신문을 펼치면 2015년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거라 믿기지 않는 그러기에 더욱 외면하기 힘든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연이어 전해집니다”라고 자료집 기획의도 칸에 적어두었다. 그렇구나. 이 영화 발상 초기부터 뉴스와 신문 하나 하나가 꽤나 중요한 기여를 했나보다.

또 다른 피칭 작품 <벌새>. 김보라 감독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와 콜롬비아대학 대학원 영화과 석사를 마친 유망주다. 이미 서울독립영화제, KBS 독립영화관, 에딘버러 영화제, 이스탄불 영화제, LA 아시아 퍼시픽 영화제, 뉴포트 비치 영화제, 산호세 영화제, 유바리 영화제 등을 단편 화제작들로 섭렵했다. 이번 피칭 작품은 감독 말대로 ‘아이를 키우듯’ 수년째 안고 기르고 있는 장편 시나리오 <벌새>가 원작이다.

야심찬 작가 감독은 대뜸 1994년 성수대교를 들고 나왔다.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그 때 14살 주인공 은희는 참기를 집을 하는 부모님 그리고 날라리 언니, 폭력적인 오빠와 함께 대치동에 살고 있다. 너무 바쁘고 제각각인 가족들로부터 관심 받지 못하는 은희가 섬처럼 떠다니다가 학원 선생님이 부르는 운동권 가요도 접하고 개척 교회에도 같이 가보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는 줄거리다.

이 작품 피칭 스크린에도 1994년 성수대교 뉴스 영상이 떴다. 클립 하나로 지나가지만 행사장 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나 매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심사위원들 모두가 공통분모로 묶이는 격한 공감대가 역사 실화 현장 바닥으로 일제히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 피칭 모습./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런 예술의 힘, 창작의 시크릿을 작동시킨 스위치는 무엇이었느냐 하면 다름 아닌 뉴스 뉴스 뉴스였다. 감독이나 작가, 프로듀서가 불을 밝히기 위해 누르는 스위치는 대부분 자신의 주관적 경험이나 역사적 사건, 사고를 즉각 다루고 기록에 남긴 뉴스콘텐츠였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고야 마는 영화 피칭들이었다.

이와 같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 & 캐치 행사 프로그램이 보여준 창작의 시크릿은 단연 뉴스콘텐츠였다. 63편 작품들이 경합한 치열한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오른 극영화 부문 다섯 작품 모두가 적든 많든 뉴스콘텐츠라는 창작의 비밀 스위치를 켠 채였다. 극영화 바로 다음 진행한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들이야 두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뉴스가 취재하고 기록하고 전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창작은 어떻게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다. 뉴스라는 문화콘텐츠 원재료 수장고가 건재하기에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며 전 세계 수많은 장소에서 영화와 창작을 배운 도전자들이 문화 자본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들 뉴스 은행 융자를 제로 금리와 무보증으로 착착 이용하는 영화학도와 신진 감독, 제작자들을 보면서 창작의 비밀을 캐내 확인한 보람 저 너머 뜻밖에도 심한 무력감이 밀려 왔다. 뉴스 콘텐츠라는 창작의 저수지가 현재 몹쓸 기상 이변과 가뭄으로 메말라 가고 있어서다. 한정 없이 퍼가도 찰랑 찰랑 할 것 같은 뉴스 저수지, 수장고, 은행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쩍쩍 갈라져버릴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뭐 이런 내용으로 다큐 영화 한 편 나올 법하다고 여길 정도로 뉴스 산업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영화계를 비롯한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도 서글픈 일이다.

아무튼 오늘의 뉴스, 어제의 뉴스 콘텐츠가 공공재 홀씨와 종자가 되어 영화와 같은 문화예술 창작 스위치를 켠다는 새삼스러운 진실을 재발견하면서 꼭 좀 묻고 싶었다. 언제까지 뉴스의 가치, 저널리즘 언론의 가치, 신문의 가치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교과서에만 가둬둘 거냐고?

민주주의가 언론의 지상 가치라고 하더라도 고정 불변하는 개념일 순 없을 터이다. 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 사시가 신통방통하게도 이를 잘 예언하고 있었다. 민족주의, 민주주위, 문화주의. 이 3대 사시가 가리킨 대로 뉴스와 언론 콘텐츠는 먼저 독립과 해방에 기여했고 이후 정치 민주화에 온 몸을 던졌다. 아직 경제민주화도 걸음마고 민주주의 과제도 여전하지만 이제는 문화주의를 명확히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젊은 영화학도들이 참으로 드라마틱한 한국 사회가 풍부하게 제공해준 뉴스 콘텐츠를 수자원 삼아 창작의 혼을 불사르고 있는 광경을 보니 이제 드디어 참된 문화주의에 복무하는 언론을 재정립할 때가 왔음을 실감했다.

유행어 스토리텔링에서부터 다시 봐야 한다. 예컨대 구룡마을에서 불나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하고 피해 가족 신상도 일부나마 파악하게 된다. 신문과 방송은 종이와 전파 그리고 디지털 유통으로 뉴스를 발신한다. 여기까지는 딱 ‘스토리’에 해당한다. 스토리텔링의 후반 공정인 ‘텔링’은 그 다음 창작자의 몫이다. 작가와 감독, PD가 창작의 스위치를 잘 켜고 빛을 던져 ‘텔링’을 잘 해내야만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라는 큰 태양광도 밝힐 수 있다.

이런 스토리텔링의 본원적 가치인 뉴스콘텐츠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포털이 뒷북을 치며 사이비 언론, 유사 언론, 유사 뉴스, 뉴스 빙자 잡설, 취재 없는 퍼 오기 퍼 담기 퍼 나르기를 단속하겠다고 하지만 사태는 결코 녹록치 않다. 문화부 등록 언론 매체만 6천개라고 하니 이미 창작의 샘 뉴스 콘텐츠 수장고는 오염 물질 뒤범벅이다. 온갖 독소와 찌꺼기가 은닉된 뉴스콘텐츠가 잘못 창작의 샘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결국 문화예술 창작이나 교육 전체의 생명줄이 탁해지게 마련이다.

더 늦기 전에 좋은 뉴스 콘텐츠가 그야말로 우수한 창작 스위치가 되고 당장 내일 먹거리로서 문화콘텐츠 창조산업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대응해야 한다. 과연 전체 언론, 미디어 산업의 사시가 그 옛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지나 현재 문화주의에 와 있음을 또렷하게 확인해야 한다.

이를 안다면 정부와 사회 전체가 우수한 뉴스 콘텐츠 수원지 관리에 즉각 나서면 될 일이다. 상수원이 맑고 건강하게 보존되고 유지되지 않는 문화주의 생태계라면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결단코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강하고 진정성이 돋보이는 우수 뉴스 콘텐츠를 맨 처음부터 마르지 않게 하고 제대로 내보낼 궁리를 온 정성을 모아서 해내야 할 때이다.

미디어산업계와 정부는 네이버 등 포털에게만 유사 언론 단속을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챙기고 돌보아야 한다. 전체 언론의 수자원 관리이자 문화예술 창작 비밀의 숲을 살린다는 일념을 먼저 품어야 한다. 맘먹은 다음 곧장 실태 조사부터 하고 피해 사례 분석과 미디어 윤리 강령 제정부터 한 걸음씩 짚어 나가야 한다.
아담한 여성영화제 피치 & 캐치 현장이 잘 보여주었듯이 좋은 뉴스가 돌고 돌아 명작 콘텐츠가 탄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금 2015년 여름 한국이 정성을 쏟아야할 위대한 모토인 문화주의 회로와 스위치를 환하게 켜는 작업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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