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구룡마을 재개발이라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동네 사람들 모아서 돼지 한 마리 잡으려고 해요."(구룡 토지주·주민 협의회 관계자 A씨)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판자촌 너머로 아파트 공사 현장이 보인다./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8일 472번 버스를 타고 기점인 강남구 개포동 일대 구룡마을을 찾았다. 이곳 주민들은 서울시가 재개발 사업 추진 의사를 밝히자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전날 서울시는 12년째 표류 중인 구룡마을 재개발 방침을 밝혔다. 이곳은 1986년 아시안 게임·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살던 집이 철거되며 쫒겨난 원주민들이 형성한 무허가 판자촌이다.
대모산자락에 위치한 구룡마을에 가보니 오물과 폐수가 흐르고 있어 과연 이곳이 행정구역상 강남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각종 쓰레기들이 산재해 있어 거주 환경이 아주 열악해 보였다. 컨테이너 박스와 슬레이트 지붕이 덮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각종 천재지변이 나면 인명 피해가 상당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판자촌 일대./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산에 오르던 일원동 주민 B씨는 "이게 사람 사는 곳인지, 서울 한복판에 이런 허름한 곳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한번 불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옆동네 주민으로서 이곳은 반드시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20일, 설 연휴를 앞두고 구룡마을 4지구에는 대형 화재가 발생해 해당 구역 주민들은 텐트를 쳐놓고 사는 실정이다. 이들은 "언제 완료될지 모르는 개발은 고사하고 당장 들어살 집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같이 화재에 취약한 구룡마을 주민들을 근본적으로 구제할 방책은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달 20일 화재 사고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4구역 일대./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이와 관련, 구룡 토지주·주민 협의회 관계자 A씨는 "30여년 간 이곳에 살았는데, 내 딸이 통학할 때마다 구룡마을 주민 아닌 척 하게 한답시고 빙빙 둘러서 가게 했다"며 "이 동네는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 '보송마을' 그 자체"라고 설움을 토했다.
그는 "오 시장의 정책에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기쁘기는 한데, 구룡마을 주민들은 현재 가진 현금이 얼마 없어 '임대 후 분양'을 원한다"며 "죽기 전에 내집을 마련해 집다운 집을 내 새끼에게 물려주는 게 꿈이고 동네 숙원 사업"이라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샴페인을 터뜨리자는 말도 나왔지만 설레발 치지 말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당초 주민들은 민간 건설사 주도의 개발을 원했다고 했다. 그런데 공공성 훼손 논란에 서울시가 공공 주도 개발을 하겠다고 나섰고, 임대 후 분양 전환은 불가하다고 못박았다.
서울시는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인 2020년 6월 2838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구체적으로는 △임대 1107가구 △공공 분양 991가구 △민간 분양 740가구와 학교·공원·도로 등을 짓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세훈 현임 시장은 762가구를 추가해 총 3600가구로 늘리겠다고 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파악한 현황에 따르면 구룡마을에는 총 1107가구가 있다. 이 중 화재 전소분과 차상위 계층 등을 제외하면 573가구, 1000여 명이 있다는 것이 구룡 토지주·주민 협의회 관계자 전언이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판자촌 일대./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한편 SH는 이른 시일 내로 공고를 내 감정 평가에 따른 공시 가격으로 토지 보상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재 개포동 아파트 단지 지가는 3.3㎡당 4000만 원 가량 한다는 것이 주민들 설명이다. 반면 공시 지가는 3.3㎡당 500만~600만 원 수준이다. 주민들은 시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인근에서 만난 83세 C씨는 "SH가 구룡마을 토지를 모두 수용해 현금을 지급하면 우리가 지주 조합 비슷하게 아파트를 지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강일 구룡 토지주·주민 협의회장은 "아직 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당장은 아니지만 충분한 보상액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SH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언급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