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안전회의에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낸 이후, 금융당국이 추가 은행 설립을 위한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당장 오는 23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주재로 금융위, 금융감독원, 은행권, 학계, 소비자 전문가 등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의 첫 회의를 열 예정이다.
5대 은행의 예대(예금·대출)시장 점유율이 60~70%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신규 플레이어, 일명 '메기'를 시장에 풀어놓아, 금리·금융서비스의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과점시장에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안전회의에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오는 23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의 1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사진=각사 제공
한편으로 1금융권 은행이 이미 18개(산업은행·수출입은행 제외)나 존재하는 데다, 은행업이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기간산업인 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은행권 경쟁 활성화로 소비자 편익을 확대하기 위해 추가 인터넷은행이나 핀테크 등의 시장 진입을 허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오는 23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의 1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당국은 TF를 통해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방안 등 6개 과제를 종합 검토·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금융·통신은 민간 부문에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의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경쟁 촉진 방안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거론되는 벤치마킹 모델은 새로운 형태의 은행 설립 규제를 크게 완화한 영국 사례가 유력 검토된다. 영국 금융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실은행 인수합병(M&A)으로 6개 주요 금융그룹 과점 체제가 굳혀지자, 리테일(소매)금융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챌린저 뱅크'의 시장 진입을 허용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등에 따르면 영국의 대표 챌린저뱅크로 불리는 '레볼루트(Revolut)'의 고객수는 출범 당시인 2016년 10만명에서 2021년 1500만명으로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기업 가치는 330억달러로 불어나 영국 4대 금융그룹인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NatWest)의 기업가치인 334억달러와 견주게 됐다.
한국도 영국 사례처럼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까. 우선 경쟁으로 과점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기본 원칙과 부합한다. 시장경제의 기본은 경쟁"이라며 "시중은행 엔트리를 이번 기회에 넓혀주고, IMF 당시 파산한 5대 은행 중 몇 개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게 인가를 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과점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경쟁을 부추기는 건 맞는다고 본다"면서도 "단순 은행 수를 늘리는 것보다 독과점 구조를 어떻게 경쟁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막강한 경쟁자가 기존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자극한다는 뜻의 '메기효과'가 실현되려면 단순 전통 모델의 은행을 신설하는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경쟁을 양성화하는 것이니 취지는 좋다"고 평가하면서 "다양하게 제대로 된 곳을 좀 더 키워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생 은행 모델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국은 독립된 개별 은행들이 설립되면서 시장에 정착했지만, 우리나라는 5대 은행의 예대시장 점유율이 60~70%에 달하는 만큼, 소규모 은행 설립이 과점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다. 이에 5대 은행에 견줄만한 은행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영국 방식의 은행업 허가는 허용되더라도 그것이 한국 금융에 미칠 효과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양동이에 물 한방울 떨어뜨리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며 "정부가 금융개혁을 하고 싶고 경쟁을 촉진하고 싶다면 민간자본에 의한, 민간 주도에 의한 시중은행 설립을 본격 허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은행들이 중금리대출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는데, 이는 다시 말해 경쟁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중산층을 타깃해 시중은행이 제공하는 대출금리보다 0.5%포인트(p) 낮게, 예금금리보다 0.5%p 높게 금리경쟁력을 갖춘 은행이 나온다면, 시중은행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주도의 서민금융기관 설립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유 교수는 "지금 금리가 높고 국민여론이 안 좋으니 정부가 이번을 기회로 더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신생 은행을 설립하려 할 것"이라며 "정부가 디지털화에 따른 금융 소외계층의 불편을 신생 기관 설립으로 해결한다면, 민간 경쟁을 부추겨 과점을 다소 완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중은행보다 더 낮은 금리를 제공하면서 취약계층을 품을 수 있는 정부 중심의 금융기관이 설립되면, 기존 플레이어들이 경쟁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은행이 설립되는 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도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은행을 만들 순 있을 것인데, 신생 은행을 설립하기보다 기존 서민금융부터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금리가 높아진 데 따른 이자부담을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은행 설립으로 해결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은행 설립이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히는 당국의 관치행정 외에도 금융규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외에도 해외 (플레이어)도 같이 시장에 들어와야 하는데, 당국의 관치에다 자기의 것만 지키려 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인해 해외 자본들이 국내에 못들어오고 있다"며 "정부가 은행을 규제로 키우고 자르는 게 아니라 자생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도 "당국에서의 말 한 마디도 시장에서는 '창구지도' 내지 '관치'라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데, 거듭되는 개입은 자칫 은행권이 몸사리게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낙관론자를 중심으로 금리가 하반기에 인하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은행 설립 얘기도 묻힐 수 있다. 대통령의 즉흥적인 생각인지, 복안을 가지고 얘기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