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중독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흡연자뿐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동일한 혹은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담배가 주는 유혹에 빠지면 헤어나기 쉽지 않다. 그러니까 중독이겠다.
중독은 담배로 망가진 끔찍한 장기의 사진을 보면서도 담배에 불을 붙이게 한다. 물론 가끔은 가족을 구하는 심정으로 금연을 선언한다. 그러나 마음의 위안을 찾은 짧은 시간이 지나면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다음 금연 선언까지 흡연을 이어가곤 한다. 중독은 멀쩡한 사람의 뇌를 카오스에 빠트린다. 담배가 인체에 아무런 폐해가 없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봤다는 해괴한 논리를 중얼거리거나 늘 내일은 끊으리라는 유보된 결심으로 자위한다.
정치중독은 담배중독만큼 해롭다. 나와 가족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망친다는 점에서는 더욱 나쁘다. “5,000만 국민 모두가 정치전문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기에 심각한 정치소비는 일상이다. 세상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시끄러운 정치소비는 눈감겠으나 상식이 마비된 정치중독은 공멸의 위기감으로 다가온다. 3류가 됐던, 4류가 됐던 정치가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모든 것을 재단하는 나라에서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이나 이익집단이 형성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지나친 흡연은 건강을 망치듯 편향을 동반한 지나친 정치중독은 모두를 망친다.
담배중독처럼 정치중독은 수많은 유해물질을 내포하고 있다. 담배가 폐암, 심장병, 만성폐쇄성질환 등을 일으키듯 정치중독은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다. 담배가 태아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치듯 정치중독은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위협할 게 분명하다. 중독은 끊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사회가 서로에게 내어준 최소한의 용납이다. 심각한 정치중독은 모두를 망치니 그쳐야 한다는 클리셰지만 상생을 위한 소중한 공감 영역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쳐야 할까. 어떤 경우가 정치중독이란 말인가. 극단으로 갈라진 정치진영이 유독 발작하는 두 가지 사례를 아주 담담하게 읽어보자.
윤석렬 대통령의 일본방문 결과를 놓고 아직껏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논란과 본질 그리고 역사의식을 뒤로 하고, 여론의 뜨거운 시선이 쏠렸던 한 장면을 보자. 윤 대통령이 일장기 앞에서 고개를 숙인 사진이었다. 사진 속을 보면 태극기는 없다. 다만 커다란 일장기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만 보인다.
일부 방송과 언론은 이런 장면을 놓고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요지는 “한국 대통령이 일장기에 무릎을 꿇었다”는 줄거리다. 상대가 일본이고 일장기이기에 지지 정파를 넘어 대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다.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일부 정치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은 서슴없이 윤 대통령을 친일주의자로 점 찍었다. 비분강개한 이들은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사진은 팩트(fact)를 내세운 페이크(fake)임이 드러났다. 공개된 다른 각도의 사진을 보면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그 앞에 나란히 선 기시다 일본 총리는 태극기를 향해 고개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양국 정상이 양국 국기 앞에서 예의를 갖춘 외교 의식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가 가진 상식의 눈으로 바라봤다면 논란거리가 아니었으나 편향적 정파성에 길들여진 우리 뇌는 한쪽으로만 작동했다.
비슷한 흔적을 화제의 신간에서 찾을 수 있다. 각종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는 ‘나는 대한민국의 검사였다’라는 회고록이 말밥이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저자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부제가 말하듯 저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지휘했다. 끝내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된 이 사건에서 여론을 가장 자극했던 꺼리가 있다. 2억 원이 넘는 고가의 명품시계 세트를 논두렁에 버려졌다는 방송보도였다. 노 전 대통령이 측근으로부터 2억 원이 넘는 명품시계 세트를 받아 논두렁에 버렸다는 자극적 이야기가 국영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이내 “논두렁으로 명품시계 찾으러 가자”는 비열한 슬로건이 생산됐다.
수많은 논란과 본질 그리고 역사의식을 뒤로 하고, 여론의 뜨거운 시선이 쏠렸던 이 장면을 담담하게 들여다보자. 상식적으로 2억 원을 호가하는 물건을 논두렁에 버릴 사람이 있을까. 선물을 준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의 평생 친구로 온갖 외풍에도 버틴 인물인데, 그에게 돌려주면 그만인 게 아닌가. 증거를 인멸할 요량이면 드라마가 코치하는 강과 하천이 널리지 않았나. 이러한 판단이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이해력·판단력 및 사려분별”, 즉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이 아니던가.
현재 사건 관계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라 급급하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회고록에서 논두렁에 버렸다는 이야기를 국영방송 사장에게서 들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당사자로 지목된 K씨는 국회에서 “검찰로부터 들었다”며 발뺌했다. 들은 사람은 있는데 말한 사람이 없는 전형적인 마타도어다.
이제 우리의 정치중독 정도를 진단해 보자.
앞서 윤 대통령의 사례에서 처음 사진을 접하자 분노하고 욕하고 나아가 정권의 정체성과 퇴진까지 거론했어도 무방하다. 정치가 만능인 시대를 살면서 그 정도는 우리가 안고 가야 할 몫이다. 그러나 사실이 밝혀졌어도 오히려 양국 정상이 나란히 고개를 숙인 장면이 조작됐다고 주장하거나 “윤석렬은 그러고도 남는데...” 라는 미련이 남는다면 정치중독이다. 더욱이 “사실관계는 모르겠고, 그랬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치를 끊어야 할 때다.
논두렁 시계를 접하면서 대통령이 친구한테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는 양태를 비판하고 진보정권도 별수없다고 욕하는 수준은 용인해야 한다. 정치가 만능인 시대를 살면서 그 정도는 우리가 안고 가야 할 몫이다. 그러나 “그때가 언젠데, 이제 사실을 뒤엎으려 하냐”고 주장하면 정치중독이다. “노무현이면 그러고도 남는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정치를 끊어야 할 때다.
담배중독처럼 정치중독은 수많은 유해물질을 내포하고 있다. 담배가 폐암, 심장병, 만성폐쇄성질환 등을 일으키듯 정치중독은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다. 담배가 태아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치듯 정치중독은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위협할 게 분명하다. 중독은 끊어야 한다.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미디어펜=김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