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당국이 미 실리콘밸리은행(SVC) 파산 사태 등 대내외 경제위기를 의식해 은행권을 대상으로 한층 강화된 대손충당금 적립 요구를 내놓았다. 이를 두고 은행권 감사를 맡고 있는 일부 회계법인이 기준치 이상의 충당금 적립이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은행들이 자체 기준치에 맞게 충당금을 적립하고 있음에도 당국에 의해 필요 이상의 충당금을 적립하며 순이익을 갉아먹고 있다는 시각이다. 은행권은 충당금이 장부상 손실로 잡히긴 하지만 활용되지 않으면 환입되는 만큼, 배임은 다소 과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감사를 맡고 있는 일부 회계법인이 은행들의 기준치 이상 대손충당금 적립을 두고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은행권은 충당금이 장부상 손실로 잡히긴 하지만 활용되지 않으면 환입되는 만큼, 배임은 다소 과하다는 입장이다./사진=김상문 기자
14일 금융권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 감사를 맡고 있는 일부 회계법인이 은행들의 기준치 이상 대손충당금 적립을 두고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시적 비용으로 잡히는 대손충당금은 국제회계기준 'IFRS9'에 따라 장부상 '손실'로 인식된다. 이에 은행들은 보유 대출채권 등에 대해 미래경기전망 등을 반영한 예상부도율(PD), 부도시손실률(LGD)을 바탕으로 예상손실을 산정해 객관적 모형을 구축해야 한다.
금감원은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하기 위해 예상손실 산정에 현재 경제·금융여건 및 미래경기전망 등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
문제는 예상치 이상으로 충당금을 적립할 경우, 수익을 의도적으로 줄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당국은 고금리 쇼크에 따른 연체율 급등, 대출채권 부실 등의 위기에 대응해 최근 은행권에 대손충당금을 자체 기준치 이상으로 쌓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31일 금융당국은 5대 금융지주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강조하기도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당시 "국내외 수많은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언제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고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며 "은행산업 손실 흡수 능력 제고를 위해 경기대응완충자본(CCyB)과 스트레스완충자본,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등 자본확충 3종 세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본원 임원회의에서 "최근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향후 부실가능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은행은 증가한 이익을 바탕으로 손실흡수능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업계에서도 코로나19에 따른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로 연체율 등 지표상 왜곡이 있고, 최근 일련의 고금리 쇼크도 겹쳐 대손충당금 적립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문제는 대손충당금 적립의 적정 기준이다. 은행들은 자체 기준에 따라 충당금을 쌓았는데, 최근 당국 수장들의 압박에 못이겨 충당금을 초과 적립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대손충당금 적립 잔액은 총 6조 4314억원으로 1년 전 대비 1조 734억원 늘었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지난 2020년 평균 148.06%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238.14%로 급증했다.
금감원은 충당금 적립과 관련해 업계·회계법인과 논의를 거쳐온 만큼, 이 같은 논란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은행이 산출한 예상손실과 향후 실제로 발생가능한 부실간의 괴리 가능성에 대해 은행 및 외부감사인과 의견을 교환해 왔다"며 "최근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로 향후 신용손실 확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은행의 대손충당금 결정 요소인 부도율은 대부분 금리 상승 이전의 차주 채무상환능력 정보 위주로 산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도율을 산정할 때 금리 상승 이전의 수치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만큼, 최근의 고금리 상황을 고려하면 충당금 추가적립은 당연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은행의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해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부과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 등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때 아닌 배임 논란에 대해 일각에서는 충당금 추가 적립 요구가 은행지주사 주주들의 배당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충당금 적립은 장부상 손실로 잡히지만, 실제 손실 계상에 활용되지 않으면 '수입'으로 환원된다. 은행으로선 나름의 '안전장치'를 세우는 것이지만, 주주로선 순이익의 상당 부분을 기준치 이상의 충당금 적립에 활용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이에 충당금 추가 적립이 건전성 강화 조치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배임으로 보는 건 다소 과한 해석이라는 평가다.
한 은행 관계자는 "충당금은 비용이 아니고 이슈가 해소되면 환입된다. 주주로선 추가 순이익만큼 배당을 해줬으면 하는데, 충당금을 기준치 이상으로 더 적립하니 배임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라면서도 "당국이 충당금을 더 쌓으라는 것은 혹시 올 지 모르는 위기에 대응해 '쿠션(충격흡수)'을 많이 만들어주자는 취지인 만큼, 주주들이 이를 배임이라고 까지 볼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