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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화 키운 규제 덩어리 '건보제' 대수술해야

2015-06-25 11:0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절정국면을 넘어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의 의료분야에 많은 취약점들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은 물론이고 최고 수준 종합병원의 응급실이 감염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 일련의 사태에 대한 시장경제적 분석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김 소장은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정면으로 언급했다. 즉 건보제도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가격규제 덩어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의료수가만 인상하자는 제안이 나온다면 그건 미봉책일 뿐이라는 게 이번 칼럼의 요지다.

아래는 김이석 소장이 발표한 칼럼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독감보다 치사율이 낮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경제적 침체가 이어진다는 것은 뭔가 우리 사회가 비정상이란 반증이다. 무엇보다 먼저 메르스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정치적 반사이득을 얻기 위해 선전·선동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 다양한 형태의 과잉 대책도 금물이다. 위험에 대한 대비는 위험의 정도에 맞게 각 개인이 그 비용을 지불하고자 하는 수준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자동차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고 사람들이 출근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전염병에 취약한 우리의 의료체계 상의 문제점들은 마땅히 개선되어야 한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고, 우리나라 최고수준의 종합병원의 응급실이 감염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어렵게 하는 다인실 병실과 간병 문화 등도 도마에 올랐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런 사태를 빚게 된 이면에 의료서비스에 대해 제값을 내지 않으려는 “탐욕”이 있다고 갈파했다. “제값을 내지 않으려는” 탐욕에 부화뇌동한 “가격규제”가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의료수가 인상, 건강보험료 인상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경제 원리에 따른 해결책 제시이지만 불완전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멈추지 말고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왜”라고 물어야 한다. 과거에도 심장외과의 부족 문제나 지방중소도시 산부인과 부재 문제로 환자나 임산부가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확하게 위의 분석과 일치하는 의료서비스 가격 인상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실천되지 못했을까?

사실 수술의 난이도와 위험은 높은데 의료수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 의료 인력들이 이 분야를 피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사고가 날 때만 의료수가를 적정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가 실천은 따르지 못하는 일이 왜 반복되고 있을까?

이 문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강제보험인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가격신호를 왜곡시켜 의료소비자들로 하여금 “제값을 주지 않고 싸게 고급 의료를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일종의 덩어리 규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건강보험제도 아래에서 병·의원을 찾는 개인은 전체의료비용의 극히 일부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한다. 그 결과 자기 쌈짓돈으로 모든 비용을 낼 때에 비해 과잉수요를 만들어낸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의 재정은 악화되어 의료수가를 통제하지 않고는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건강보험료의 획기적 인상도 어렵다. 각종 이유로 소득세와 건강보험료를 면제 받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병원에 별로 가지 않으면서 이미 높은 부담을 하고 있는 청장년층에게 건강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병원에 자주 가야 할 고령인구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 의료가 성장산업이 되기 이전에 국민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대로 공급하기 위해서도 의료분야에 주식회사 형태를 허용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구상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그나마 건장한 청장년층이 한 번씩 가는 가벼운 감기 몸살은 이들이 건강보험료를 내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감당할만한 비용의 가벼운 질병까지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으로 삼으면, 많은 돈이 들 질병에 들 재원을 갉아먹는다. 의료수가를 인상하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내게 하든, 아니면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줄이든 자기부담 비중을 높여야 한다. 누가 이런 인기 없는 정책을 주도할 것인가?

이것이 그간 여러 번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실천이 따르지 못했던 이유다. 그래서 건강보험제도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가격규제 덩어리라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일부 의료서비스에 대한 의료수가를 인상하자는 제안은 피상적으로 그리고 단기적으로 하나의 해결책일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의료수가를 일률적으로 통제할 때 나타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서울의 5개 대형병원의 과적(過積)현상이다. 이들 병원의 응급실은 걷기 힘들 정도로 복도까지 병상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언제나 북새통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그것이 치마가 아니고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차이를 가져오는 의료서비스라면?

유명병원은 입원하기조차 쉽지 않아 몇 달 기다려야 한다. 유명한 대형병원의 응급실 풍경도 가격규제가 만들어낸 과잉수요 현상의 한 단면이다. 결국 대기 시간, 걷기 힘들 정도의 북새통 등 좋은 의료서비스를 상쇄시킬 불편한 요소들이 커져, 병원 간 의료서비스와 여타 불편요소를 종합한 서비스의 질이 가격과 엇비슷해질 때 사람들은 유명 병원에 몰리기를 멈춘다.

덩어리 가격규제로 볼 수 있는 적자 전국민 강제건강보험 제도가 적용대상을 확대하게 되는 저변에는 의료서비스는 여타 서비스나 재화처럼 '장터’에서 거래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생각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국민건강보험은 보험적용 대상을 줄여가기는커녕 오히려 확대할 것이다.

대선 때마다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 확대를 약속하는 공약들이 경쟁적으로 제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국민건강보험의 재정형편상 가격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게 되는 의료서비스의 종류는 점차 더 많아질 것이다.

그 피해자도 결국 국민에게 귀착될 것이다.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값을 주지 않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이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심장내과, 산부인과, 감염내과 등 국민이 필요한 서비스는 공급자가 없어져 높은 돈을 주고도 치료받지 못할 것이다. 전염병 예방과 안전 분야도 평소에는 비용 대비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아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료가 성장산업이 되기 이전에 국민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대로 공급하기 위해서도 의료분야에 주식회사 형태를 허용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구상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의료저축계좌, 민간 의료보험 시장의 확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국민 강제 건강보험을 개혁해 나가는 길만이 사회에 필요하지만 공급이 잘 되지 않는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공급하게 할 것이고, 나아가 의료분야를 부가가치가 높은 성장산업으로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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