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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보수로 보기 어려운 다섯 가지 이유

2015-06-26 09:10 | 이원우 차장 | wonwoops@mediapen.com

 

   
▲ 이원우 기자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결코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흔히 보수(保守)의 가치를 ‘자유와 책임’이라고들 말한다. 둘은 ‘AND’의 관계다. 멋대로 취사선택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보수 정권으로 알려져 있다. 딜레마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정부는 언젠가부터 중대한 국정의 고비마다 책임을 회피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보수 정권으로 알려졌을 뿐 전혀 ‘보수답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정부의 이러한 모습마저 감싸주려는 이른바 ‘보수’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구르지 않아 이끼가 끼어버린 돌의 악취가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인간의 후각은 위대해서 어떤 고약한 냄새에든 결국엔 적응해 버린다. 지금의 보수가 딱 그런 상태다.

지금은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하는 자신의 코를 의심해 볼 시간이다. 현재의 박근혜 정부가 왜 보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으며 받아서도 안 되는지를 짚어볼 때다. 근거는 많다. 2014년 봄부터 본격화된 박근혜 정부의 다섯 가지 중대한 책임회피에 대해 짚어보도록 한다.
결코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2014년 5월 - ‘해경 해체’ 선언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을 절망에 빠지게 만든 세월호 사태는 반(反) 정부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이 무렵 박근혜 정부가 지나치게 심한 공격을 당한 건 사실이다.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은 가능하겠으나 그것이 정권퇴진 구호로까지 이용된다면 ‘또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지나친 움직임에 박근혜 정부가 엉뚱한 방식으로 ‘응답’ 했다는 점이다. 참사 한 달 후인 5월 19일 돌연 ‘해양경찰 해체’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졸지에 해경은 국민안전처 소속 해양경비안전본부가 됐다. 본부 인원은 40% 가까이 줄었지만 업무량은 그대로다. 조직명에선 ‘경찰’이 빠졌는데 조직원들은 여전히 경찰 신분이다. 해양 경찰관들의 집합을 해경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상황이다.

문제는 해경이 ‘해체’라는 초강수의 제물이 될 정도로 세월호 사태에서 무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고 직후 선체 밖으로 나온 172명 전원을 50분 동안 성공적으로 구조한 것은 다름 아닌 해경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해경보다 유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결국 이 정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해경에게로 돌려버린 셈이다. ‘문제는 있었으나 내 책임은 아니’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책임회피성 대응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2014년 6월 - ‘문창극 총리후보 사퇴’ 방관

어려운 상황은 여름까지 이어졌다. 6월 초 총리 후보로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무려 공영방송 KBS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몇 년 전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는 것. 문맥을 훼손한 짜깁기 보도였지만 이는 엄청난 탄력을 받으며 ‘문창극=친일파’ 여론을 확산시켰다.

이 사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문창극의 발언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문 후보가 자진사퇴를 한 바로 그 날 아침에도 종편 채널들은 문창극 ‘사퇴’를 주장하고 있었다.

결국 문 후보는 6월 24일 자진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장에서 문 후보는 조부 문남규 선생에 대한 얘기까지 하면서 자신이 결코 친일파가 아님을 강변해야 했다. 사퇴문의 뉘앙스에선 억울함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설령 문제가 있었다고 한들 청문회를 통해 시비를 가리면 될 일이었다. 그걸 위한 청문회가 아닌가? 그런데도 이 정부는 문 후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퇴하는 모습을 끝내 방관하고만 있었다. 문창극 사태는 ‘원칙’과 ‘여론’이 갈등을 빚을 때 이 정부가 후자를 선택한다는 비밀을 만천하에 들켜버린 계기가 되고 말았다.

2015년 4월 - 세월호 참사 1주년에 남미 순방

박근혜 정부가 ‘할 일’을 했던 순간도 물론 있었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체에 정부(법무부)가 맡은 역할은 컸다.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던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이 이 정부에서 탄력을 받은 것도 우파 입장에선 ‘업적’으로 남을 일이다.

다만 이 사안들은 이미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난 정권에서 해결됐어야 할 잔여과제가 뒤늦게 처리된 감마저 없지 않았다. 그리고 정작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이 정권은 다시 한 번 정면승부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1주년을 맞는 2015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결코 시급성이 크다고 보이지 않던 남미 순방을 결행했다. 외교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사정’으로 움직이는 것이 긴 하지만, 안 그래도 박 대통령의 행보에 시비가 많은 시점에 굳이 남미 순방을 떠난 건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오이 밭에서 샌들을 고쳐 신은 것이다.

세월호 1주년 시점에 평범한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그리 대단한 일들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적들이 뭐라고 곡해하건 진심을 담아 자리를 지켜주는 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참사 1주년 대국민 발표문을 내고 팽목항까지 방문한 대통령에 대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결코 적진 않다.

문제는 그러한 대통령의 성의가 굳이 그날 감행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는지 끝내 의문으로 남는 남미 출국으로 상당 부분 휘발돼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떠나는 대통령의 뒷모습은 왠지 조금 다급해 보였다.

   
▲ 미국은 슬슬 한국에 대해 ‘무임승차자’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원하는 것만 얻어가면서 아쉬울 때만 친구라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2015년 6월 - 미국 방문 연기

세월호 1주년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던 남미 순방을 고집했던 박 대통령은 2015년 6월, 상당히 중요해 보였던 미국 방문을 돌연 연기했다. 원인은 메르스. 일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결정의 뒷면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무책임’이 숨어 있다.

한국 언론들이 국내 이슈에 매몰된 사이 한미일중(韓美日中)을 둘러싼 외교전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부각되는 건 한국의 애매한 태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상찮은 시선이다. 국내 언론들 대다수가 이 문제를 간과하거나 모른 척 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에서 미국만 지나치게 손해를 보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현재의 한미동맹은 ‘한반도 내에서의 대북 동맹’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학교 밖에서는 한 번도 만나지 않는 친구처럼 한반도 밖에서는 효력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동맹. 이걸 과연 온전한 관계라 할 수 있을까?

최근 미국이 강조하는 글로벌 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이라는 말 안에는 중견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적극적인 태도를 요청하는 미국의 의중이 담겨 있다.

미국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한국은 중국과 미국을 ‘G2’라는 저울에 올려놓고 비교 중이다. 주한미군은 감축하면 안 된다면서 한국군은 감축하는 이중플레이도 도마 위에 올랐다. 분쟁 국가이면서도 GDP의 2.7% 정도만을 국방예산에 할당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4~5%를 투입하고 있는 미국이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도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미국은 슬슬 한국에 대해 ‘무임승차자’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원하는 것만 얻어가면서 아쉬울 때만 친구라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근거로 순방 일정까지 취소했을 때 일각에선 ‘한미동맹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을 회피하고 싶어서 핑계를 댄 게 아니냐’는 고약한 농담까지 나왔다고 한다. 알고 보면 한국 정부가 먼저 요청한 방미였다.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 5-6월호에선 결국 “한반도를 비핵화 하는 조건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반도를 중국과의 ‘완충지대’로 만들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미 한국을 친중(親中)으로 보고 있거나 최소한 ‘박쥐’로 판단하고 있다. 이 정부는 한미동맹에 대해서마저도 어중간한 자세로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6월 - 메르스 사태에서 ‘민간’을 질책

방미 연기를 비판하는 건 메르스 사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국민들 다수가 불안함을 느꼈다면 청와대가 적절하게 대응했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마저 응분의 책임을 회피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을 충북 오송 국립보건연구원으로 불러 질책한 일이다.

송 원장이 대통령 앞에서 고개 숙인 사진이 정말로 ‘사죄’ 장면을 촬영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사진 한 장만으로 사태 전체를 관통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오해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다만 이날 박 대통령이 삼성서울병원의 ‘방역관리 소홀’을 지적한 건 사실이다. 정부가 민간병원 원장을 오산까지 불러 질책해도 된다고 믿는 건 대체 몇 년도 마인드인가. 14번 환자를 소홀히 다룬 삼성서울병원을 탓하기에 앞서 첫 번째 환자의 전염성을 과소평가한 건 보건 당국이다. 1과 14중 어느 것이 더 앞선 숫자인지 청와대만 모르고 있다.

적어도 보수 진영만은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정부가 쓰러지길 바라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나 많다는 게 근거다.

이는 세상을 오로지 정쟁의 틀로만 바라보는 사고방식의 표출이다. 이 논리로 임기의 절반을 버텨왔지만 더는 곤란하다. 현 정부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할 일은 원칙에 입각해 냉철한 판단을 해주는 일이다. 대통령은 5년이지만 원칙은 영원하므로.

앞으로도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들을 잘 수행해 내길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다. 그러나 지킬 건 지키고 책임질 건 책임진다는 ‘보수적 조건’에서만 그렇다. 현재의 상태는 어떠한가? 2015년 6월의 박근혜 정부가 보수 정권이라는 건 한낱 루머에 불과하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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