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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약대생들이 행정고시를 보는 까닭은?

2015-07-10 07:09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김흥기 교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한 대학교의 행정고시 1차 합격자 중 절반 이상이 의대와 약대생이라고 한다. 의대생과 약대생은 각각 의사와 약사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수학하는 학생들인데, 이들이 갑자기 행정고시를 본 이유는 무엇일까?

확인 결과 행정고시 1차 시험 합격자에게 학교 측에서 한 학기 등록금 면제 혜택을 주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약 500만원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면제 받기 위해 행정고시에 응시하는 것이다.

의대생과 약대생이라고 해서 행정고시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단순히 등록금을 위해 1차 시험만 보는 것이 문제이다. 의대생과 약대생이 주로 응시하는 행정고시 기술직의 경우 2차 시험의 결시율이 25%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등록금이 지급되는 1차에만 응시하고 준비하지 못한 2차에 불응하는 것은 본인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때문에 1차 시험에 낙방하여 2차 시험까지 준비했으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지원자들은 이 사실에 분노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한 학기 등록금을 위해 다른 이들의 기회가 사라졌다. 혹자는 경쟁과 능력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규정자체가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 한하여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것이고, 반드시 2차 시험까지 응시해야하거나 공부해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역시 ‘의느님’이라면서 공부적성이 강한 그들을 존경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이고 존경받을 만한 일인가?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의과학자 육성 지원사업’ 먹튀 사건과 올해 초 논란이 된 경찰대 학생들의 로스쿨 양다리 사건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도덕적 해이 문제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는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교육부는 2008년부터 ‘의과학자 육성 지원 사업’을 시행했다.

   
▲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소위 ‘사자 돌림’의 전문직에 대한 동경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직업으로부터 기대되는 평생기대소득(소득의 양과 안정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의대와 치대 학생 가운데 의과학 연구자(과학자)로 진로를 결정하면 등록금과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들어간 세금은 총 79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의과학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수천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의 혜택을 받았던 학생들의 44.3%가 진로를 이탈하여 일반의나 전문의가 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4월 보도된 경찰대 출신의 로스쿨 진학 역시 논란이 되었다. 이들은 세금으로 교육을 받고 편법으로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양다리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 문제는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제도를 만들면 곧바로 제도의 허점을 노린 편법이 횡행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 가지 사건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첫째, 미흡한 제도 및 운영이며 둘째,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도둑보다 장물 취득한 자를 더 엄격히 다루는 것은 제도 자체에 허점이 있으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지급한 지원금은 국민의 세금이 재원이다. 정부는 제도를 시행하기 전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교 역시 다른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마련된 재원을 무분별하게 집행함으로써 발생되는 역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마땅히 누릴 자격이 되더라도 내가 누리지 않고 절실히 원하는 사람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의식 있는 행동이다. 오히려 더 배우고 똑똑한 의대와 약대, 경찰대 학생들이 좋은 머리를 악용하여 가진 것 없어서 못 배우고 가난한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본인이 누리는 혜택이 온전히 본인만의 공이 아니며 공동체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소위 ‘사자 돌림’의 전문직에 대한 동경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직업으로부터 기대되는 평생기대소득(소득의 양과 안정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높은 연봉을 받기위해선 그만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위에 열거한 전문직은 강한 업무강도를 버틸 수 있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신뢰)를 갖추고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게 되는 날을 기대한다. /김흥기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 '태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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