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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필기구의 혁신 모나미 153 볼펜과 송삼석의 집념

2015-07-12 07:3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모나미153볼펜’을 주제로 한 기업가 연구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회는  조이라이드 윤서인 작가가 맡았다.

필기도구라고는 붓, 연필, 만년필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50년 전의 이야기다. 모두 다 가난했고 부족한 것 투성이었던 그 시절, 필기구도 다를 바 없었다. 볼펜은 해외에서 수입한 고급 필기구로, 잘나가는 전문가들이나 쓰던 ‘럭셔리’한 도구였다. 일반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할 물건이었다.

불편했지만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했던 차에 등장한 모나미153볼펜은 가히 혁신이었다. 광신화학공업사(현 모나미)의 송삼석 대표의 작품이다. 윤서인 작가는 “볼펜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잉크범벅의 불편을 감수하며 열악한 필기도구를 사용하던 그 시절, 모나미153볼펜의 등장은 혁신이었다”며 “버스 한 번 탈 돈으로 간편하고 오래오래 쓸 수 있는 신개념 필기구를 살 수 있는 점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이어 “모나미는 모나미153볼펜 이후 사인펜, 플러스펜, 네임펜, 보드마카 등, 우리에게 익숙한 필기구를 만들었다”며 “한 기업인의 혜안으로 전 국민이 편안한 필기를 하게 됐다. 필기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렇다. 기업하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반기업정서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아래는 윤서인 작가의 연구보고서 전문이다.


한국 필기구의 혁신 – 모나미 153볼펜

1. 열악한 필기구로 고생하던 시절


1950년대를 거쳐 60년대 초반까지 당시 우리나라에는 필기도구가 붓, 연필, 잉크를 찍어 쓰는 펜, 만년필 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주로 연필을 썼는데 지금처럼 부드럽게 써지는 연필이 아니었다. 조금 쓰다보면 잘 안 써져서 연신 침을 발라야 했고, 결국 힘을 주어 쓰다가 종이가 거친 흑연에 의해 찢어져버리는 등의 고생을 시키던 조악한 연필이었다.

잉크를 찍어 쓰는 펜이나 만년필을 사용하던 회사원 공무원 선생님들도 고생하긴 마찬가지였다. 이거 써본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한 지 안다. 펜은 잉크를 찍어 쓰다 보면 글씨 굵기가 고르지 않고 잉크가 많이 쏟아져 나와 노트에 번지기 일쑤다. 또한 책상 위에 둔 잉크병도 곧잘 넘어졌다. 무거운 잉크병도 부담스러웠다.

만년필 역시 지금의 만년필이 아니다. 고급 파커 만년필은 전문가 기자들이나 쓰는 물건이었고 대부분의 만년필은 지금으로 치면 몇 천 원 짜리 저렴하고 조잡스러운 플라스틱 만년필이었다. 이 만년필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잉크가 쏟아져 양복이 시커멓게 물든 경험이 지금의 노년층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어쩌다 잉크 한번 채워 넣으려면 온 손이 잉크 범벅이 되었다.

   
 
볼펜이 없던 시절은 정말로 불편했다. 그렇다고 당시 볼펜이 없었던건 아니었다. 저 멀리 해외에서 발명되어 나름대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1938년 헝가리의 신문기자 비로 라슬로가 만년필이 너무 불편해서 처음으로 윤전기 잉크를 넣고 촉에 볼을 단 것이 볼펜의 시초.


영국의 사업가 마틴이 이 특허권을 사서 1946년 처음으로 수성잉크를 넣어 제대로 모양이 잡힌 ‘볼펜’이라는 걸 판매했고 이걸 쓰던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인 프란츠 제이크가 물에 번지지 않는 유성잉크를 처음으로 주입 1950년대에 들어서 볼펜의 완성형 제품이 세상에 나왔다.

이때의 볼펜은 한 자루에 무려14만 원 선으로 만년필보다도 비쌌는데 이걸 이탈리아의 ‘마르셀빅’이 특허를 사들여 개당 천원까지 단가를 낮춰 지금도 세계 볼펜시장의 최강자인 ‘BIC 볼펜’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볼펜을 서민 필기구로 전환시켰고 50년대 후반 저렴한 가격까지 업은 볼펜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다.

우리나라엔 이런 세계적인 추세와는 다르게 볼펜의 대중화가 늦었다. 볼펜은 해외에서 수입한 고급 필기구로 어디 잘나가는 기자들이나 전문가들이나 쓰던 럭셔리한 도구였다. BIC이나 파커사의 Jotter볼펜이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쓰였는데 워낙 시장도 적고 판로도 없어서 대중화가 되지는 못했었다.

가난했던 그 시절 뭐든 부족하고 열악했듯 필기구 역시 마찬가지로 열악했다. 볼펜을 쓰지 않는 대한민국은 학업은 물론 사무업, 교육업 등등 모든 면에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가지 못하는 불편한 나라였다. 모든 국민들은 간편하고 잘써지는 볼펜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잉크범벅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고 있었다.

2. 광신 화학 공업사

대한민국엔 1960년 송삼석이 창업한 회화구류 전문업체 ‘광신 화학 공업사’가 있었다.
송삼석은 서울대 상학과를 나온 수재였다. 대학 시절 6.25를 겪으면서 인민군에 붙잡혔다가 겨우 탈출하기도 하고 국토를 종단하며 걸어 도망 다니기도 했다.
 
파란만장하게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후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1960년 창업한 회사가 바로 광신 화학 공업이었다. 이 회사는 초창기엔 그저 일본에서 문구류를 수입해 판매하였다. 하지만 회사가 좀 돌아가자마자 수입판매에 그치지 않고 자체 기술로 처음 생산한 게 모나미 물감. 이어 두 번째로 생산한 제품이 왕자파스였다. 당시 왕자파스와 모나미 물감은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상품으로 미술시간과 사생대회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면서 창업 단 2년 만에 자리를 잡아나갔다. 초창기부터 상당한 기업가 정신이 있었던 인물로 보인다.

   
▲ 송삼석 회장
그러던 중 1962년 5월 16일 서울 경복궁에서 국제산업박람 회가 열렸다. 광신화학공업은 수입원인 우치다 요코(內田洋行) 측과 공동으로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공동 부스에 앉아 있던 송삼석은 우연히 일본 업체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안주머니에서 처음 보는 필기도구를 꺼내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직원은 잉크를 찍지 않고도 끝없이 뭔가를 적었다. 충격에 빠진 송삼석. 이것이 볼펜과의 첫 만남이었다. 문구류 사업을 하던 송삼석은 바로 이 볼펜을 한국에 도입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송삼석은 일본 직원에게 볼펜을 한번 써봐도 되겠냐고 했다. 볼펜을 써본 송삼석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펜도 다 있구나. 이때 송삼석이 썼던 볼펜은 일본의 ‘오토’사 제품이었다. 송삼석은 이 볼펜을 국내에서 만들기만 한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당장 도입을 시도하였다.

1962년 당시의 우리나라 1인당 GNP는 87달러, 거의 세계 최빈국이었다. 당장 먹을거리를 걱정하던 최빈국에 볼펜 심지에 들어가는 베어링이나 굳지 않으면서 흘러내리지도 않는 잉크 제조기술 등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송삼석은 이 일본 직원이 한국에 ‘계산기 10대를 팔고 오라’는 임무를 띠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며 그가 계산기를 팔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를 고맙게 여긴 일본 직원은 송삼석을 자신이 다니는 우치다 요코사 사장에게 소개해주었다. 우치다 요코사 사장이 송삼석을 다시 오토사에 소개했고 이 만남이 대한민국 볼펜사의 시작점이 되었다.

당시 일본의 오토 볼펜은 일본 볼펜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선두 기업이었다.
송삼석은 오토사 사장에게 볼펜 제조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오토 볼펜은 처음엔 난색을 표했으나 삼고 사고초려를 하며 열과 성을 다해 요청하던 그의 열정과 노력을 가상히 여겨 유성 잉크 제조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송삼석은 세계 볼펜들을 꼼꼼히 분석해 이 잉크를 볼과 접목시켰고 6각형의 저렴한 플라스틱 봉에 탑재하여 드디어 153 볼펜을 만들어 냈고 꿈에 그리던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이 때가 1963년 5월 1일 이었다.

3. 모나미 153 볼펜의 탄생

송삼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볼펜 시제품을 만들고는 직원들에게 이름을 공모했다. 직원들은 모나미 물감이 인기가 좋으니 그대로 ‘모나미’ 로 쓰자고 했다. 프랑스어로 ‘나의 친구’인 모나미가 볼펜 이름과도 어울린다고 봤다. 그래서 일단 이름은 monami로 정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monami 뒤에 숫자를 좀 붙여보면 어떻겠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다.

직원들은 ‘1963년에 탄생했으니 모나미 1963으로 하자’ ‘5월 1일을 넣어서 모나미 501로 하자’ ‘행운이 숫자인 7을 집어넣어서 모나미 77로 하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송삼석의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그렇게 아이디어가 오가던 중 한 남자 직원이 “모나미 153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송삼석은 153… 153…을 반복해서 되뇌어 보았는데 어? 이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며 이 숫자가 머리에 딱 잡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153의 의미를 되물어보니 그 직원은 쭈뼛쭈뼛하며 “사장님 사실은 화투를 칠때 나오는 ‘153 갑오’가 생각나서 말씀드려본 것입니다.” 라고 말했고 다른 직원들은 허허 웃으면서 농담으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됐다.

   
 
그런데 송삼석은 153이라는 숫자가 너무나 낯익었다. 이상하다… 그저 화투에서나 보던 숫자가 아닌데… 저 숫자를 어디서 보았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평소에 읽던 성경을 찾아 요한복음 21장 11절을 찾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 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53은 153마리의 물고기를 뜻하는 숫자로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면 큰 성과가 돌아온다는 의미인 것이었다. 송삼석은 바로 이거다! 하고 외쳤다. 그렇게 모나미 153 볼펜의 이름이 지어졌고 송삼석은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하나님은 내게 153이라는 숫자를 통해 기업인이 일생을 통해 반드시 지켜야 할 상도를 일깨워 주었다”고 썼다.

모나미153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숫자 뒤에 쓰여 있는 0.7은 글씨의 굵기가 0.7mm라는 뜻이다. 송삼석은 당시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15원이고 신문 한 부 값이 15원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펜 한 자루의 값을 15원으로 정했다. 153에는 가격이 15원이고 광신화학공업의 3번째 제품이라는 뜻도 포함됐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버스 한 번 탈 돈으로 간편하고 오래오래 쓸 수 있는 신개념 필기구를 살 수 있는 점이 주효했다. 출시하자마자 학생, 회사원 할 것 없이 불티나게 팔리며 큰 성공을 가져왔다. 모나미 볼펜153의 대성공은 아예 회사 이름까지 바꿔놓았다. 송삼석은 1967년 광신화학공업을 ‘모나미 화학공업’ 으로 변경했고, 1974년에는 볼펜 이름을 따 아예 ‘㈜모나미’ 로 바꿨다. 국내에서의 큰 성공을 기반으로1970년대 후반 모나미 볼펜은 선진국인 미국에 수출까지 시작했다. 주문자 상표부착방식(OEM)으로 모나미153을 500달러어치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모나미 볼펜153은 미국에서 ‘monami 153 Pen-Tech’라는 브랜드로 팔렸다.

   
 
모나미가 만들어낸 필기구는 볼펜153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인펜, 플러스펜, 네임펜, 보드마카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필기구들이 대부분 모나미가 만들어낸 히트상품들이다. 현재 모나미는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하는 중견 문구회사가 되었다. 모나미는 문구 생산뿐만 아니라 문구 유통업까지 사업 분야를 확대해 2012년 모나미 매출액은 1,848억원. 이 중 모나미 볼펜 153의 매출액은 10~11% 정도다. 최근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으로 이 볼펜을 잘 쓰고있지 않지만 여전히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훌륭한 필기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모나미 153 볼펜의 가치

송삼석은 1997년 모나미를 장남 송하경에게 물려주었다. 송하경 사장은 말단사원으로 출발해 과장·차장을 거쳐 이사를 지냈다. 현재 송삼석은 회장으로 있다. 1963년 당시 월 70만 자루 나가던 153볼펜은 1970년 월 300만 자루, 1980년에는 월 700만 자루까지 판매가 치솟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용도의 필기구가 등장함에 따라 판매량이 슬슬 줄어들었고 모바일 시대까지 찾아오면서 이제는 추억의 볼펜 정도로 느껴지지만 그래도 언제나 ‘볼펜’ 하면 153 볼펜. 대한민국 사람들 머릿속에 ‘볼펜의 전형’으로 각인이 될 정도로 153 볼펜은 대한민국 볼펜의 역사이자 상징이 되었다.

지금 꺼내 봐도 모나미 153 볼펜은 정말 놀라운 물건이다. 1963년 5월 1일 시장에 처음 선보인 이후 현재까지 같은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꾸준히 애용되는 제품이 또 있을까.
당연히 한국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모나미153볼펜은 육각주모양의 몸체, 원추모양의 촉 덮개, 간편하게 작동되는 조작노크, 스프링, 잉크 심 등 총 5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결한 외양과 더불어 더도 덜도 없이 딱 필요한 것만 갖춘 구조로 기능적으로도 완벽한 수준이다.

   
 
모나미 153 볼펜의 가치는 혁신에 있다. 한 기업인의 혜안으로 전 국민이 편안한 필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필기도구의 역사를 완전히 진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송삼석 회장이다. 특히 누구나 저렴하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타깃을 한 것이 이 볼펜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관공서회사, 학교 할 것 없이 어딜 가도 너도나도 모나미 153 볼펜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학생들이 이 볼펜대에 몽당연필을 끼어서 쓰는 것은 물자가 귀한 시대의 자화상이 되었다.

그냥 언제나 흔한 친구 같은 콘셉트. 다 닳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 본 적이 별로 없이 그냥 대충 쓰다가 잃어버리는 볼펜. 우리 주변 보통 사람들의 인생과도 같은 볼펜, 이것이 이 기업가가 만든 가장 빛나는 가치이다. 필자는 어릴 때 이 볼펜을 분해해 다섯 부품들을 이용해 스프링놀이, 총놀이 등을 하기도 했다. 모나미153 볼펜은 볼펜을 넘어 하나의 문화이다.

현재의 모나미는 잘 버티고는 있으나 미래를 보면 사실 좀 힘든 상황이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오프라인 볼펜 수요는 점점 더 줄고 있으며 문구 시장 전체도 많이 위축되었다. 모나미는 한정판 프리미엄 모나미 153 볼펜 출시 등으로 럭셔리 문구 시장을 개척해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모나미의 향후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조이라이드 윤서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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