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삼성물산 간의 합병결의를 위한 주주총회가 결국 '합병찬성'으로 결론났지만 우리는 그 직전까지 수많은 시나리오들을 볼 수 있었다. 삼성측과 엘리엇매니지먼트측의 주장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드러났고 판결도 이어지고 있다.
김선정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자유경제원에 기고한 칼럼에서 "사정이 이러하니 이 시점에서 사실문제나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정리하며 "이 사건을 통하여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사건에 대한 개별적 판단을 넘어선 일반론적인 교훈을 얻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제도에 대한 보완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불식하려는 노력이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없다면 한국은 기업사냥꾼들의 사냥터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 김선정 교수는 <장자> 외물편의 '학철부어' 고사를 인용하며 한국인들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했다. 아래는 김선정 교수의 칼럼 전문이다. |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의 취약성 문제이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일은 기업들이 튼튼한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질병은 인체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발병하기 마련이다. 자강불식의 자세가 필요하다.
틀림없는 사실은 이 시대는 갈수록 건강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슬람기업의 샤리아가 주목받는 이유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커지고, 주주가 다양화되고, 주주의 의식이 깨어가는 상황에서 단순히 최다주주라거나 proxy contest에서 이길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으로 기업을 끌고 가기 어렵게 되었다. 이번에 엘리엇에 대응하며 보인 고뇌와 노력이 많은 한국의 기업들에서 지배구조개선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M&A사냥터가 된 한국의 자본시장에서 먹잇감(target company)이 되지 않는 길이다. 동아일보는 해외자본에 의한 주주행동주의가 국내기업의 지배구조개선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경제전문가 40인 중 5%가 매우그렇다, 42.5%가 그렇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하였다.
법제도 정비, 중요하고 시급하다
한국 기업의 생존을 위한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이번 물산사태의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이런 유형의 일들이 연이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은 확실시된다. 7월 13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내기업에 대한 행동주의해지펀드의 공격이 더 거세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25%가 매우 그렇다, 67.5.%가 그렇다고 답변하였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황금의 땅 엘도라도가 되어 버릴 것은 뻔하다. 이미 KT&G 사건으로 한국 법원에 친숙해졌고, 외환은행 사건으로 워싱턴에서 득의만만하게 중재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투기자본들은, 물산 사건에서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쟁점을 찾아내 한국법원에서 시간차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만해도 엘리엇의 합병무산기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예측불능의 후속공격이 이어질 것이고 이에 대한 소모적인 대응은 기업을 상처투성이로 만들 수도 있다. 삼성물산은 과거에도 한차례 외국자본의 공격 앞에 노출된 적이 있었고, 이미 많은 외국자본이 한국기업에 대한 공격채비를 이미 마쳤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국회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적대적 M&A방어책의 입법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입법시 유의사항
대응법제의 논의에서는 몇 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다. 우선 단순한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책만 강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칼 아이칸은 KT&G를 M&A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엘리엇도 마찬가지이다.
▲ 삼성물산은 과거에도 한차례 외국자본의 공격 앞에 노출된 적이 있었고, 이미 많은 외국자본이 한국기업에 대한 공격채비를 이미 마쳤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투기자본은 무엇 때문에 행동하는가? 돈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만 존재할 뿐이다. 주주가치, 기업의 존재이유,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은 아예 없다고 이해된다. 초원에서 임플라를 공격하는 사자처럼 그들은 매우 치밀하고 냉혹하다. 백수의 왕 사자라는 도도함도 보이지 않는다. 투기자본의 목표인 돈 앞에 그들은 소수주주들에게 겸손하기까지 하다.
어떤 식으로 기업을 사냥하느냐는 것은 그들의 기동성, 의외성, 전략성 때문에 다양하게 설계된다. 이 번 주총에서 엘리엇이 합병찬성으로 돌아 설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시나리오가 등장하는 것도 돈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는 그들의 행태에서 비롯한 추측이다. M&A도 그들이 탐욕을 실현하는 여러 다양한 선택지중 하나의 경로일 뿐이다. 어찌보면 경영과 책임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는 M&A 보다 외곽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경영관여를 하는 편이, 언제고 떠날 채비를 하는 데에 더 유리할 수 있다.
투기자본은 모든 법조항이 다 화살인양 활용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 법제도 적대적 매수합병에 대한 대응책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의결권대리행사, 자기주식의 처분, 주주제안권, 합병비율의 공정성, 주총특별결의 요건,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등 여러 경로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생각해 볼 기회이다.
신규순환출자 금지, 금융사 의결권제한 등이 생각난다. 만일 물산이 합병에 실패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기업의 현안을 해소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검토해야 할 법들이 드러난다.
둘째, 기관투자가의 역할에 대한 평가와 함께 관련 법제의 정비도 필요해 보인다. 상법과 자본시장법뿐만 아니라 금산분리 등과 관련된 금융법, 최근 통과된 금융회사의지배구조에관한법률 등이 전반적으로 조명되었으면 한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기관투자가가 수탁자로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중대한 시점에서 국민연금도 내부의 투자위원회와 외부인사로 구성된 주식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관계가 모호해서 다소 혼란이 야기되었다고 한다. 하위규범 또는 기관 내의 자치규범도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셋째, 재벌에 대한 미움 때문에 일을 망쳐서는 안 된다. 포이즌 필 조항 도입하고자 했던 2010년 상법개정 등 그동안 적대적 M&A 대응 법제의 입법과정은 거대하고 잔인한 적과의 치열한 전투를 앞두고 적의 면전에서 자중지란을 벌이는 형상이었다. 법제도는 그 존재이유가 분명하지만 늘 악용의 소지가 있다.
우리는 그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여 더 이상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소위 국민정서상 미움의 '덧’, 경제민주화의 환상을 벗어나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국회에서 연기금의 합병지지를 비판하는 의견이 공공연히 개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산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또 원점에서 지루한 논쟁으로 “구더기 무서워 평생 장은 못 담가 먹는” 상황이 반복될까 걱정이다. 한국 기업의 일부가 밉지만 그렇다고 투기자본이 예쁠 리도 없다.
기업에 대한 미움과 그 대기업을 기업사냥의 들판으로 내모는 일은 별개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다 근원적이고 실제적인 토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도그마에 빠져 코끼리 다리 만진 장님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최근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복수의결권주식만하여도 그렇다. 이것은 기업의 상황에 따른 선택지에 불과하다. Google, Facebook 등 세계적 기업들이 복수의결권을 통하여 창업자의 독재적 지위를 확보하며 증시에 상장하였다. 그러나 Amazon은 복수의결권주식의 발행 없이 상장하였다. 법 속에 각 기업은 다양한 선택을 통하여 발전하고 경쟁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 지금도 국회에서 연기금의 합병지지를 비판하는 의견이 공공연히 개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산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또 원점에서 지루한 논쟁으로 “구더기 무서워 평생 장은 못 담가 먹는” 상황이 반복될까 걱정이다. /사진=연합뉴스 |
그런데 우리 상법은 10년 이상 논의만 하고 있다. 심도있는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악용사례만 들어 항상 그 자리를 맴돌며 공방하고 있다. 1주1의결권만이 경영권승계를 막을 수 있다는 깊이 생각해 보면 오해임을 알 수 있다. 왜 대다수국가가 허용하는 법제도가 우리에겐 이렇게 멀기만 한가? 복수의결권주로 상장한 Google이 창업자의 경영권유지로 인하여 도산했는가? 오히려 그 창업가정신을 소액주주와 사회도 칭송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Sulzberger 재단은 단지 0.6%의 지분으로 100%의결권을 행사하는데 그 수단은 복수의결권이라고 한다.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주주의 요구로부터 벗어나 언론기업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특정가문의 지배’가 필요하다는 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만일 한국에서 이런 구조를 갖춘 기업이 있다면 무조건 공공의 적으로 치부될 것이다.
주주가치의 실현
기업들은 이 기회에 주주가치의 실현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 중 일부는 소액주주들을 과소평가하고 방만 경영과 불건전한 지배구조를 방치해 온 사실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이번 물산사태는 외국인지분이 절반을 넘어선 상장기업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애국심으로 기업을 방위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자본시장에서 IR활동이 단지 자본을 조달하고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활동으로 국한되는 것이 실정이다. 주주가치의 실현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무엇이 주주가치인가에 대하여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평판이익의 확보
이번 사태는 법리공방에 못지 않는 여론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엘리엇은 필요한 때에는 법조항과 법리를 내세우고, 불리할 때에는 비법률적인 주장으로 호소하고 있다. 엘리엇측은 세계최대의 의결권자문기구인 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ISS)를 우군으로 만들었고, 한국법원의 판결이 공정하지 못하면 ICSID로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위헌소송까지 준비한다고 한다.
최근 정부의 행위나 법률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결, 지자체나 산하기관의 결정이나 하위법규범까지 ICSID에서 다루는 경향이 있는 점, 한미FTA협상 막바지에 쟁점이 되면서 ICSID 분쟁해결시스켐의 유불리가 다투어졌던 사례에서 보듯이 워싱턴에 소재하는 World Bank 산하의 이 기구는 외형상 중립적 중재기관일 뿐인데 엘리엇은 마치 중재판정부구성으로 보나 영어가 모국어인 점으로 보나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식의 선전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 한국의 소액주주들이 일방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여론도 반드시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 기업에 대하여 공보다는 잘못을 탓하는 비판적 여론도 문제지만 기업들도 늘 진심어린 사회공헌을 통하여 원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합병성공'이 끝 아니다
이번 물산사태는 합병에 성공한다고 하여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기업과 국회는 어려운 일을 통하여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법제도에 대한 보완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불식하려는 노력이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없다면 한국은 기업사냥꾼들의 사냥터가 될 것이다.
사냥감이 모두 포획된 후에는 백방의 노력도 소용없게 된다. 법제정비 논의의 소중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를 주려고 법을 고치나라는 생각에서 한 발 나가야 할 때이다. 시간이 급한 일이다.
국회는 한국기업을 보면서『장자』외물편의 학철부어(涸轍鮒魚)같은 생각을 했으면 한다.
『내 어제 이리로 올 때, 도중에 누가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 속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다. 내가 그놈을 보고, "붕어야, 왜 그러느냐" 하자, 붕어가 말하기를, "저는 동해의 파신(波臣)입니다. 어디서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저를 살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좋다. 나는 지금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가서 시장[西江]의 물을 터놓아 너를 맞아가게 하겠다. 그래도 되겠느냐?" 하였다. 그러자 붕어가 화를 내고 안색을 고치며 말하기를, "저는 제가 있어야 할 물을 잃어, 지금 있을 곳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찌감치 건어물(乾魚物) 가게로 가셔서 저를 찾으십시오"라고 하였다.』/김선정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