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정부의 ‘가치’를 내세우는 외교전략에 대해 전직 외교장관들 사이에 이견이 제기돼 숙고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1일 국립외교원의 ‘글로벌 가치 연대를 위한 외교전략’ 세미나에서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은 최근 5~6년 사이에 미중관계가 적대관계로 바뀌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안보 논리가 경제 논리를 지배하게 된 달라진 정세를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안보 논리엔 기본적으로 가치가 전제돼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세력과 함께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제 네트워크, 기술 네트워크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자유질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들도 가치가 국가이익과 충돌하면 자기이익을 선택하기도 한다”며 “미국, 영국, 호주가 오커스를 만들었을 때 프랑스가 다른 길을 걸었고, 미국의 일방적인 아프간 철수를 볼 때 국가이익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치는 국내적으로 단합하고 국가의 기풍을 만드는 중요 요소이지 외교의 간판으로 내세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치를 전면에 내세울 때 기존 우호국가와 관계가 강화되는 것보다 중간 국가를 더욱 비우호국가로 만드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윤석열정부의 가치외교에 대해 윤 전 장관과 송 전 장관은 ‘가치와 이익이 대립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가치와 국익이 중첩되는 시대’라는 주장 및 ‘가치로 엮어진 거미줄은 국가이익이란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주장으로 맞선 것이다.
이와 함께 송 전 장관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비핵과 정책은 현실에 맞지 않고,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과거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 완성을 지연시키기 위한 외교를 펼칠 때와 2017년 핵무력을 완성한 이후는 다르다”며 “지금 북핵 문제에 있어선 그 이후의 세상에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 비핵화 정책을 펴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2023.9.1./사진=국립외교원 유튜브 화면캡처
이어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하니까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제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지금 고농축 우라늄 생산으로 핵무기를 만들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관계가 지금처럼 좋을 때 ‘살과 살이 부딪치는 외교’가 아니라 ‘뼈와 뼈가 부딪치는 외교’도 필요하다”면서 “핵연료 재처리와 농축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면 윤 대통령의 큰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직 외교장관들은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중국과 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제언 내놓았다. 한중관계에서 상호존중의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이견이 없었으며, 특히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한국이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윤 전 장관은 “중국과 우호관계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한국정부가 먼저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면서 “상대가 상식에서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해올 때 무대응 하지 말고 분명한 선을 그어서 상대방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없으면 국민의 대중외교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불필요한 반중 감정이 커진다”며 “지금 80% 이상의 국민이 중국을 싫다고 답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 전 장관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에 대해 말할 때 목소리의 본질이 같아야 한다. 본질이 다르면 한국이 설 땅이 없어진다”면서 “한미일 협력체와 한중일 협력체를 병립시키는 노력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이 한중일 관계 개선에 힘을 쓸 때 미국이 의심스럽게 볼 수도 있지만 중국과 소통할 필요성에 대해 미국을 설득하는 외교적인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20년 가까이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관계의 안정적인 관리 방안은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양국간 국민교류가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또 충돌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이를 방지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