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민주화 항쟁 후 가속화된 흐름…문화-법조-교육계도 병들어
▲ 조우석 문화평론가
사람들이 요즘 크게 궁금해 하는 것이 ‘박원순 게이트’의 향방이다.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인 서울시장 박원순의 아들 박주신을 둘러싼 병역 의혹이야말로 거대한 정치적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당장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권력형 비리의 가능성이 높다.
박주신이 척추 MRI사진을 찍었던 세브란스 병원도 뭔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고, 병무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규정을 위반했다. 물론 몸통은 서울시인데, 시장의 아들 문제에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된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정말 희한한 것은 따로 있다. 이 나라의 언론 말이다.
공판 결과에 따라 대권주자 박원순이 정치적 파산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에 빠져있다. 그래서 박원순 게이트는 동시에‘언론 게이트’이기도 하다. 몇 차례 내 견해도 밝혔다. 침묵의 카르텔 배경에는 고질적인 정치적 좌편향이 있다는 분석이었다.
“지금은 뉴스를 재는 가치판단에서 어젠더 세팅까지 몽땅 좌편향의 안경을 걸친 구조다. 그걸로 세상을 바라보니 좌파 인사들의 행태나 추문은 공격거리가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하거나, 혹은 외압에 굴복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눈먼 언론의 시대가 열린 셈일까?”(미디어펜 5월28일자 칼럼‘박원순 아들 병역의혹에 전매체가 침묵하는 이유’)
강남좌파와 비슷한 속물적 리버럴리즘이란 것
▲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이 척추 MRI사진을 찍었던 세브란스 병원도 뭔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고, 병무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규정을 위반했다. 몸통은 서울시인데, 시장의 아들 문제에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된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정말 희한한 것은 따로 있다. 이 나라의 언론 말이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에 빠져있다. 그래서 박원순 게이트는 동시에‘언론 게이트’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오늘 나는 왜 이런 좌편향의 구조가 만들어졌나를 한 번 더 따져고고 싶다. 정교하게 말하면, 그건 한국언론이 ‘속물적 리버럴리즘’이란 바이러스에 집단감염된 결과다. 속물적 리버럴리즘이란 강남좌파와 비슷한데, 우파적 가치,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나머지 생겨난다.
그래서 민주화세력 내지 양심세력 따위로 위장한 좌익에게도 헛된 관용을 베푸는 정치적 바보짓을 반복한다. 그런 망국적 흐름을 민주주의이자, 정치적 올바름인양 착각하는 오염된 지식정보의 쓰나미가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 언론-문화-교육계 전체를 덮쳤다.
지금 386세대를 포함해서 거의 전세대가 이 악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후 30년 전후, 방어적 민주주의 전선이 거의 무너져 내렸다. 그 결과 적과 동지의 구분이 안 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지금이다. 구조가 이해되시는가?
때문에 북한의 사이버 테러에 맞서는 국정원의 정당한 활동을 좌파 언론과 야당 새민련은 민간인 도청 의혹으로 둔갑시킨 채 연신 난도질이다. 얼빠진 야당의원 한 명은 북한에 대한 해킹조차 불법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기회에 한 정치학자의 묵직한 발언을 들려드리고 싶다.
“우익이 이처럼 무력감을 나태내고 있는데, 좌익의 체제전복 활동을 억제하는 국가기구도 무력감에 빠져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혁명적 좌익과 간첩들이 날뛰고 있어도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체포하려는 노력이 별로 전개되고 있지 않다.… 국가보안법과 같은 체제유지를 위한 법적 장치나, 대공기관들이 좌익의 선동에 말려든 야당과 언론에 의해 비난의 집중포격을 당하고 있다. 정부도 그런 비난에 영향 받아 체제전쟁에서 정부는 거의 무장해제에 가까운 상태에 접근했다.”
정치학자 양동안 교수의 26년 전 지적을 기억하라
▲ 차기환 변호사가 22일 본인 트위터 SNS를 통해 밝힌 ‘박원순․박주신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재판 내역. /사진=차기환 변호사 트위터(https://twitter.com/kwchah) 캡처
좀 공감이 되시는가? 이번에 문제가 된 국정원 해킹 사건에 대한 언급으로 착각하실 지도 모른다. 아니다. 놀랍게도 무려 26년 전의 발언이다. 서울올림픽 다음해인 1989년에 나온 단행본 <한국의 정치현실>(삼화출판사)에서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했던 말이다.
실은 ‘속물적 리버럴리스트’에 대한 분석도 그의 책에서 차용한 것인데, 그런 좌편향의 물결이 무려 30년 가까운 흐름이라는 점에 주목하시길 바란다. 반(反)대한민국 성향의 좌익분자를 관용하는 게 좋다고 부추겨온 지식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이런 목소리에 묻혀 공권력이 무력해질대로 무기력해진 채 2015년 여름 지금을 맞았다.
그 결과 국정원 해킹에는 온 세상이 난리를 치고, 좌파 정치인 박원순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에는 막상 입을 꽉 다무는 게 우리의 현주소이고, 이 나라 언론의 얼빠진 정신구조다.
재확인하지만 이 나라 언론이 속물적 리버럴리즘에 오염됐다는 증거로 양동안 교수의 발언만큼 확실한 게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좌익언론의 불장난도 위험천만하지만, ‘제도권 범털’인 주류 언론의 배신도 심히 역겹다. 지금의 병든 언론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선 박원순 게이트는 절대로 풀지 못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세상이 뒤숭숭해요. 난리를 치는 언론과 야당을 좀 보세요. 메르스 과잉보도로 경제를 망가뜨리더니 이젠 국정원 해킹 문제로 밤을 샙니다. 무기력한 정부는 유승민의 ‘배신의 정치’ 등 내부갈등에 헛심을 써야 하는데, 국회는 의원 숫자를 늘려 국회독재 몸집을 더 키운다는 심산이고…. ”
얼마 전 만난 40대 변호사 한 명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속내를 밝혔다. 그가 볼 때 지금은 딱 월남 패망 전의 무책임-무기력한 상황이다. 공감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낙관적 신심도 필요하다. 공권력 마비를 넘어 국가이성의 실종이라도 제대로 된 명의(名醫)를 만나면 병을 고칠 수도 있다. 지혜를 모을 때가 지금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