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마친 이후 극동지역의 여러 도시를 돌며 각종 군사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16일엔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함께 극초음속미사일 ‘킨잘’ 등 전략무기를 시찰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의 러시아 행보를 상세히 보도하면서 북러 밀착을 선전하고 있다. 신문은 “두 나라 관계발전의 역사에 친선단결과 협조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고 했으며, 타스 통신은 러시아측이 김 위원장에게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1980년대 소련 방문 당시 관련 내용을 다른 잡지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보스토치니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옛 소련이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지금도 우리나라의 최우선 순위는 러시아와의 관계다. 이번 회담이 양국 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이번 9.13 북러 정상회담은 4년 전인 2019년 4월 25일과 확연히 달라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4년 전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북제재의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을 뿐 원론적인 차원에서 양국의 협력을 약속하는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김정은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함대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함게 구축함 샤포시니코프 원수함을 시찰했다고 노동신문이 17일 보도했다. 2023.9.17./사진=뉴스1
하지만 이번엔 회담에 배석한 러시아측 정부인사 면면을 봐도 다양한 분야에서 향후 협력이 이뤄질 것을 알 수 있다. 군사 분야뿐 아니라 무역경제, 과학기술, 운수(물류), 농업, 관광 분야를 담당하는 인사들이 배석했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두 나라가 과거 냉전시대 동맹을 넘어서서 전략적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임을출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러관계가 전통적인 친선관계에서 전략적 관계로 격상하고, 푸틴 대통령의 답방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기 이전에라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북러가 주로 극동지역에서 경제협력을 본격화할 수 있으며, 북한은 단기적으로 필요한 기술 이전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우주산업발전을 목표로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러시아가 북한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이는 결국 국제사회에서 두 나라가 처한 현실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현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러 밀착도 향후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과 군사협력을 도모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므로 지금 푸틴의 발언은 미국 등 서방국가를 견제하기 위한 심리전 또는 정치쇼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승수 통일연 국제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것은 4년 전 북러 회담과 다르다. 러시아는 ‘북한과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여기엔 러시아의 선전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고,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쟁 추이 등 변수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군 비행장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함께 러시아군의 각종 전략폭격기와 다목적 전투기, 추격기, 습격기를 비롯한 현대적 군용 비행기들을 돌아봤다고 노동신문이 17일 보도했다. 2023.9.17./사진=뉴스1
그는 “북러가 특히 군사 분야를 중심으로 밀착하고 있는 것엔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담겨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으며, 북러 정상회담 직전 러시아 외무차관이 한국정부가 원한다면 북러 회담 내용을 한국에게만 공개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에 대해선 “러시아가 한미일 안보협력체계에서 한국을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벌였다가 위기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함께 정치쇼를 하고 있다는 쪽에 무가게 더 실리더라도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동북아 정세에 파장을 일으킬 변수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첫째, 러시아가 진짜 북한에 고급 군사기술 및 첨단무기를 제공할지 여부는 우크라이나전쟁 추이에 달려있다. 둘째 북러 밀착에 중국의 연대 여부로 신냉전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15일 북러 밀착은 미국을 골탕 먹이려는 푸틴 대통령의 전략이라는 지적을 내놓았다. 바이든 행정부 초기 국가안보회의 러시아 선임국장을 지낸 안드레아 켄들-테일러는 “미국이 직면한 다른 도전과제들을 러시아가 실제로 증폭시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전에 필요한 탄약 등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미국에 위협적인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확대하려는 노림수가 보인다”고 말했다.
또 조성민 미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 교수는 8일 뉴욕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북러 간 협력은 중국이 각각 자국 편에 확실히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구속력 있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는 중국이 자국을 지원하지 않으면 북한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던진 것이며, 북한 역시 중국의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중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