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동개혁이라는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간 대타협을 통한 노동개혁이 불발로 되자 이른바 정부의 플랜B가 등장하였는데, 이 플랜B가 지지부진하자 급기야 당정차원에서 노동개혁을 전 방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물론 노사정간 쟁점으로 되고 있는 노동개혁의 핵심 어젠다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관련한 가이드라인 및 저성과자 해고 기준 가이드라인 제정 시행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는 60세 정년연장 의무화 규정 시행에 따른 신규 청년고용 위축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이고 후자는 지나친 고용경직성으로 인한 기업의 경쟁력 저하 및 고용 위축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또 모두 법제도 개선을 이용하지 않고 현행법제도와 판례법 등 지배적 룰에 기초한 지침 또는 가이드라인이라는 행정해석 도구로 마련하자는 비교적 가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벼운 개혁을 담은 노사정 대타협마저도 결렬된 것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개혁 논의 전개 내용을 얼핏 보면 우리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노동시장 개혁 과제와 내용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향후 굉장한 숙제를 가져올 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하나는 얼마나 우리 노동시장 실태에 기초한 개혁 어젠다인가? 다른 하나는 개혁 수단으로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과 같은 행정해석으로 이들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다.
우선, 근래 우리 노동시장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이슈는 임금 이슈라 할 수 있다.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 고용형태 간 임금격차, 통상임금 확대 소송, 파격적 최저임금 인상 논란 등은 모두 임금을 급상승하게 하고 나아가 임금격차를 더 높이도록 작용하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임금급상승과 임금격차 문제 등은 얼핏 보면 각각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아 발생시키는 문제인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우리사회의 연공임금체계관행에서 비롯하는 것들이다.
가령 본디부터 대기업의 높은 자본장비율이나 부가가치생산성은 당연히 대중소기업간에 지불능력에 따른 임금 격차를 초래하기 마련인데, 이를 더 부채질 하는 것이 바로 연공임금체계관행이라 할 수 있다. 또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연공임금체계관행은 대기업일수록 유노조일수록 순수호봉임금체계가 많이 보유되고, 중소기업일수록 무노조일수록 호봉임금 보유 사업장이 없거나 있더라도 연공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말하자면 대중소기업간에는 본디부터 지불능력의 차이가 있는데 이에 더 부가하여 높은 연공임금성의 반영으로 더욱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과 임시근로 등 고용형태별 차이의 경우에도 근속년수에 따른 연공성 때문에 더욱 격차가 심한 것으로 보이는 효과도 있다.
▲ 노동개혁과 같은 거대 담론에 부합하는 어젠다 세팅은 임금체계 개편으로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전사업장 내지 모든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임금조정이 아니라 적어도 생산성과 괴리가 큰 문제로 되는 대기업과 공기업 유노조 부문의 연공임금을 개편하자는 타깃을 정확히 하고 임금체계라는 본질을 개선하자는 것으로 에이밍을 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
말하자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여러 문제들의 근원에는 연공임금체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대기업과 공기업 유노조 부문을 중심으로 심한 연공임금 요소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의 확대재생산 문제가 심각하다. 연공임금이 심한 부문의 근원적 개혁은 임금체계 개편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연공임금체계 개편의 결과는 단기적으로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서 현행법상 근로자집단의 동의가 필요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법리와 노동조합 측에 불리한 단체협약 개정이라는 장애가 커다란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라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유효하다는 판례법리가 있어 왔고, 60세 정년연장 시 연공임금 상승으로 신규채용 주저를 우려하는 기업들에게 정년연장 시 임금피크제 도입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신규고용만큼은 종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정부의 희망인 것이다.
말하자면 60세 정년연장이 전격 시행됨에 따라 연공임금 관성으로 기업의 임금부담이 생김에 따라 신규고용이 주저되고 무엇보다 청년층의 신규고용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므로 늘어나는 정년연장분에 해당하는 임금조정으로 신규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평을 넓게 보면 거대담론인 노동개혁 어젠다로써 임금피크제를 잡은 것은 애초부터 개혁 에이밍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년연장으로 인한 신규고용 주저 문제가 단순히 임금의 연공성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과 공기업 유노조 영역의 고임금 구조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고임금 구조의 프레임이 임금의 연공성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임금피크제는 대기업 공기업 유노조 부문의 정년연장 문제에 대응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부문에 대한 연공형 고임금 구조는 정년연장 뿐만 아니라 기업규모 간 임금격차, 고용형태별 임금격차,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화 문제, 최저임금 수준의 파격적 인상 담론 문제 등 곳곳에서 파생적 문제를 몰고 다니고 있는 핵심 진원지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수많은 제조현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용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 영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연공임금과 거리가 먼 시급제 임금관행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설령 연공임금체계관행을 보유한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극히 미미한 연공성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부문에서는 연공임금에 의한 부담보다는 오히려 만성적인 인력수급난에 시달리고 있고,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도 미미하며, 정기상여금의 부재로 통상임금 소송의 영향에서도 무관한 것이 많고, 최저임금 수준 인상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개혁과 같은 거대 담론에 부합하는 어젠다 세팅은 임금체계 개편으로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전사업장 내지 모든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임금조정이 아니라 적어도 생산성과 괴리가 큰 문제로 되는 대기업과 공기업 유노조 부문의 연공임금을 개편하자는 타깃을 정확히 하고 임금체계라는 본질을 개선하자는 것으로 에이밍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임시방편적인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후세대도 공존할 수 있는 개혁에 걸맞은 내용으로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어젠다 세팅을 해야 하고, 임금체계 개편 대상도 전체 근로자가 아니라 고임금구조의 연공임금체계를 가진 대기업과 공기업 유노조 부문으로 타깃을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임금체계 개편이 쉽지 않으므로 정권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추구하여 완성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고도의 개혁이 불가능하여 부득불 임시방편인 임금피크제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은 법령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행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법리에 의하면 과연 2016년 60세 정년시행에 즈음하여 60세 이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사안에 대하여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물론 필자는 우리나라의 임금연공성이 글로벌 기준과도 크게 벗어 나있고 특히 연공임금관행을 보유한 일본보다도 높은 연공성을 보유한 이례적 사례에 해당하는 것을 감안하면 60세 정년이전부터 임금피크제를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만일 사법부에서 60세 정년연장을 시행하기 전 현재의 정년시점부터 임금피크가 아니라 60세 정년이 의무화 된 시점에서 종전 정년시점부터 임금피크를 하는 사례에 대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가이드라인을 믿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 중 상당부분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게 된다. 말하자면 임금피크제를 가이드라인 제정과 같은 방식으로 할 경우 제2의 통상임금 소송 사태가 우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피크제 추진 전략을 가이드라인 제정 방식이 아니라 적어도 입법으로 추진하되, 다만 추진방식은 노사정간 협의의 장을 고려하여 60세 정년연장의 충격에 대비한 몇 년간 한시적 입법으로 추진하는 방식을 검토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시적 입법으로 시행되는 임금피크제는 전사업장과 전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공기업 유노조 부문의 고임금구조의 연공임금에 한하여 시행하는 것으로 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고임금 연공구조가 아닌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에 대하여는 임금피크제 적용에서 제외됨을 분명히 하여 대부분의 근로자를 임금조정이라는 오해로부터 해방시켜 주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임금피크제가 결국 전근로자의 임금삭감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자리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재 추진 중인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 제정에 대한 타협도 아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만일 이것이라도 성사된다면 다행이라 여겨야 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가이드라인 운영으로 제2의 통상임금 소송 사태와 같은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완적 조치를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 홈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