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핵무기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산업과 기술을 잃어버린 스탈린주의적 세습독재국가.’ 1977년 국무장관직을 그만두기까지 미국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끼친 헨리 키신저는 북한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최근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무기를 보내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밀착을 과시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고 ‘왕따 동맹’이란 말이 나온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았던 김정은이 외교무대에 다시 등장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대립 중인 푸틴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을 향해 있는 푸틴의 시선은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면 사라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정은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고립의 길’로 퇴보하고 있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중국, 베트남이 시장경제를 택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보면서도 ‘극단적 자립경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는 탈북민보다 ‘용기’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대개 굶어죽기 싫어서 탈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때 자녀가 선진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해 북한을 떠났던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의 자유도 없이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돼있지만 자식을 살리기 위해, 성공시키기 위해 사선을 넘는 북한주민들도 존재하는 나라가 현재 북한이다.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의 경제정책을 보면 국영경제를 유지하면서 그 관리 방법을 개선해서 분권화 및 시장화를 시도하는 개혁 방향을 탐색한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북한당국의 개혁 지침은 모호했고, 김정은은 사실상 개방을 두려워했다. 그러던 중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김정은은 2021년 8월 8차 당대회를 기해 ‘경제사업에 대한 내각 책임·중심제’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정책이 퇴조했다고 평가한다. 과거 중국과 베트남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정치적·이념적 통제를 완화하고, 핵심 경제 부문에 대해 통제하면서도 개혁을 확대한 끝에 경제성장을 이룬 길을 북한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으로 인해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있는 것이 큰 제약이 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를 고수하는 한 산업과 기술, 무역을 배제한 극단적 자립경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군비행장 및 해군기지를 방문해 세 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선물받은 모자를 쓰고 있다. 2023.9.17./사진=뉴스1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 1990년대 33만명이 아사하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도 붕괴하지 않았던 것이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견디고 있는 것이 북한 당국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자립경제 구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북한은 무역 의존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에 강력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포기를 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포기해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조사가 시작된 2007년부터 매년 외부의 식량지원이 필요한 국가 명단에 포함돼왔다. 2021년에도 외부의 식량지원이 필요한 45개 국가 중 하나이다.
이런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10살 남짓 어린딸 김주애가 군 관련 행사마다 동행하면서 벌써부터 후계자설이 돈다. 김주애든 아니든 김정은은 4대 세습을 꿈꾸는 것 같고, 그렇다면 김정은이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정권이 지금의 북한일지 궁금하다.
중국에서 경제개혁과 사회 개방을 추진한 덩샤오핑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도 국제기구에 가입하고, 기존의 세계질서 규칙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한 세대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국가가 됐다. 지금 집권 3기를 이어가면서 1인 집권 전체주의를 강화하는 시진핑도 민주주의를 극구 피하면서도 법적 절차가 투명한 사회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김정은이 대중 무역의존도 95%를 깨고, 경제발전을 위해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남한을 비롯해 세계가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탈북민 송환을 비롯해 핵개발을 포기한다면 아직 30대 후반 젊은 지도자 김정은에게 기회가 남아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