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주 4일 근무'가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긍정적 성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이른바 '주 69시간제'와는 반하는 방향이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노동리뷰에 따르면 민간 기업 사례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주 4일제 도입은 근로자 만족도를 높이고 삶의 질 향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업 측면에서도 채용경쟁률이 향상됐고 이직률은 감소했으며, 재무적으로도 성과가 있었다.
이는 고용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주 최장 69시간 근무'와는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주 69제 근무는 연장근로시간 산정 단위를 현행 1주에서 월·분기 1년으로 유연화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다. 국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고용부에 개편안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 6~9월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내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장시간 근로에 대해서는 여러 문제가 제기돼 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근로시간이 길고, 장시간으로 일하는 근로자 비중이 높은 탓에 업무 집중력과 시간당 생산성이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고용인력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52시간보다 연간 149시간 길고 독일보다는 연간 560시간 더 오래 일한다. 과거에 비해 근로시간이 단축됐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긴 수준이다.
과거부터 우리나라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GDP를 늘리는 데 주로 초점을 맞췄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소홀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제부터라도 이를 수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는 주 4일제 본격 도입을 위해 시범 운영 중이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61곳에서 주 4일제를 시행했고, 그 중 56곳이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업들은 주 4일제 도입 후 병가 일수가 65% 감소했고 직원 71%가 번아웃이 줄었다고 했다. 또한 2019년 일본 마이크로소프트는 주 4일제 실험에서 생산성이 40% 증가했고 직원 만족도는 92%를 기록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해 2월 근로자들이 시간 유연성을 통해 주 4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이 주 4일제 시행 이후 근로자 삶의 질과 기업 생산성 등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A기업 주 4일 근무제 도입 후 긍정적 변화./사진=한국노동연구원
서울에 위치한 IT기반 교육서비스업 회사인 A기업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모든 직원이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6개월 시범 운영 이후 전 직원이 금요일을 쉬는 주 4일제를 도입했고, 이후 자체 설문조사에서 '만족도'는 93.5%, '삶의 질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비율은 94.1%였다. '우리 회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겠느냐'는 문항에는 70% 이상이 긍정적으로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퇴사율은 주 4일제 시행 전 19.7%에서 6.2%(상반기 기준)로 감소했고, 매출은 2020년 546억원, 2021년 717억원, 2022년 782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주 4일제 도입 이후 직무 만족이 직무몰입으로 이어져 퇴사를 줄이고 매출 상승을 이끈 결과로 분석된다.
아울러 노사 합의로 주 4일제를 시범사업하고 있는 서울 신촌과 강남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간호사 사직률이 0%였다.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과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지난 12일 '주 4일제 시범사업 연구 결과 중간 보고회'를 열고 이 같은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한 간호사 중 17.4%가 사업 시행 전 이직이나 퇴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나, 시행 이후 10.0%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들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7.1점으로 직전 평가보다 1.8점 올랐고, 일과 삶 균형 점수도 3.7점에서 6.2점까지 상승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간호사 근무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의료사고 위험은 낮아지고 의료 서비스 질은 향상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의료·안전사고 위험성에 대한 응답은 72.8%에서 56.3%으로 16.5% 감소했고, 의료서비스 질이 향상되고 있다는 응답은 사업 전 55.4%에서 66.3%로 10.9%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주 4일제 도입과 정착을 위해서는 여러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규준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 4일제 도입은 단순히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로만 볼 수 없다"며 "인터뷰 등을 종합한 결과, 주 4일제 도입을 위한 성공 요건은 직원들의 공감대와 촘촘한 인사관리, 중간관리자 리더십, 커뮤니케이션의 투명성 담보 등 이 세 가지"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담보돼야 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각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고 무엇보다 각 개인마다 직무 파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 도입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책임연구원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 4일제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직무파악이 선행돼야 하고 근로자, 사업자, 정부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연구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