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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로비오·수퍼셀이 주는 교훈, 한국의 선택은?

2015-08-09 07:0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7일 마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예술인이 본 사익, 사익이 예술을 발전시킨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공익’은 좋은 것이고 ‘사익’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경제 체제에 전혀 맞지 않는 낭설이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사익추구이며, 사익을 바로 보고 개인의 사익 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공익적인 일이다. 예술인들은 사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사익이야말로 예술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신성한 힘이라고 생각하는 솔직한 예술인 6명이 뭉쳤다.

발제자로 참석한 윤서인 작가(만화가)는 핀란드의 슈퍼셀 사례를 소개했다. 윤 작가는 “핀란드의 ‘준공기업’이었던 노키아는 경제가 어려워지자 애국하는 마음으로 필요 없는 인력을 고용하고, 조직을 늘렸다. 그러다 보니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공기업스러운 경영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세계시장의 흐름에도 뒤쳐져 사업부가 통째로 MS에 인수되고 말았다”며 공익의 허점을 지적했다.

윤 작가는 이어 “이때 등장하게 된 것이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수퍼셀이다. 수퍼셀은 거창한 공익을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 아닌, ‘우리 한 번 해보자’는 사익이 만들어낸 ‘대박기업’”이라며 “수퍼셀의 2014년 매출이 1조 8천억 원으로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기업이다. 핀란드를 넘어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수퍼셀이 어설프게 공익을 위해 일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윤서인 작가의 '노키아의 몰락이 수퍼셀의 신화로 이어지다 -핀란드의 사익 이야기'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 윤서인 만화가
1. 노키아의 흥망성쇠

150년 전 핀란드 남서부의 작은 펄프회사로 출발해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며 세계를 주름잡던 거대기업 노키아. 인구 540만 명의 작은 나라에 존재하던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거대기업의 역할은 어마어마했다. 2000년엔 핀란드 전체 국내 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했고 2003년에는 핀란드 법인 소득세의 4분의 이 노키아로부터 걷혔다. 나라의 국부가 이 한 회사의 퍼포먼스에 의해 이루어질 정도였다.

이 시절엔, 노키아와 핀란드의 관계는 전 세계 다른 어느 곳의 국가-기업 관계 보다 끈끈했다. 핀란드가 곧 노키아였고 노키아가 곧 핀란드였다. 노키아가 하는 일은 나라를 위한 일이었고 핀란드의 인재들은 노키아에 취업하는 게 꿈이었으며 540만 인구 중 13만 명 이상. 계열사까지 수 십만명이 노키아나 노키아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 하였으니 그 영향력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노키아의 역할엔 공익이 강조되었다. 노키아는 더 이상 하나의 회사가 아닌 핀란드 자체였다. 노키아가 점점 커지면 커질수록 인재들은 모두 노키아가 데려갔고 청년들은 노키아 취업이 목표이자 당연한 코스였으며 핀란드는 다른 기업이 싹트고 자라기 점점 힘든 환경이 되었다. 노키아는 나라를 위해 취업을 더 늘렸고 필요 없는 조직이 많아지고 경영은 방만해졌으며 의사결정은 느려졌다. 마치 대한 민국 공기업스러운 경영이 이어지면서 세계시장의 흐름에도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천년만년 갈 것 같던 이 거대회사가 2010년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미국, 한국 회사들에 밀려 비틀대기 시작하더니 2013년 거짓말처럼 쓰러져 모바일 사업부가 통째로 MS에 인수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던 노키아가 쓰러진 것은 핀란드에게는 가히 국가적 재난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커다란 거대자본의 회사도 혁신과 노력을 하지 않으면 딱 10년 만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만다. 지금의 노키아는 구조조정을 거친 후 크게 작아진 채 새로운 통신회사로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 앵그리 버드.
2. 핀란드의 분위기

핀란드는 원래 냉전시절 구소련의 대유럽 교역창구 역할로 안정적으로 먹고 살던 나라였다. 그러다 90년대 초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큰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때 획기적으로 떠오르며 국부를 가져다준 회사가 바로 노키아였다. 그러나 이 회사가 무너지면서 나라엔 다시 90년대 초 수준의 경제위기가 닥쳤다. 2013년 핀란드 정부가 지급한 실업급여는 41억5000만유로(5조6000억 원)로 90년대 이후 최대였다. 평균 실업수당 역시 2008년엔 하루 55유로에서 67유로로 늘었다. 노키아에서 높은 연봉을 받던 고급 인력이 일자리를 잃고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끝을 알 수 없는 경제위기가 닥쳤다.

이즈음 핀란드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 스마트폰 게임이었다. 노키아가 무너진 후 2009년부터 창업 생태계와 관련한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젊은 학생 들을 주축으로 스마트폰 게임 창업 열기가 일기 시작했다. 각 대학은 관련 학과나 프 로그램을 적극도입하기 시작했다. 노키아 등의 대기업으로 향하던 R&D 성과를 중소 기업에 연결해주는 ‘이노베이션 밀’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스타트업에 아이디어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헬싱키 공대와 미술디자인대, 경제대를 통합한 거대 학교인 ‘알토대’ 가 출범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수 많은 벤처창업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대학 로고(A!) 부터 참신한 이 대학 학생들은 ‘창업의 여름’ 행사와 ‘창업의 사우나’ 조직 등을 만들어 창업 열기를 확산시켰다. 핀란드 정부는 기술혁신투자청(TEKES), 벤처캐피털펀드 핀베라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일부터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네트워크까지 지원했다.

정부의 지원은 철저하게 시장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졌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책임지는 지원이 결코 아니었다. 개개인이 자율성을 키우고 경쟁력을 갖춰야만 받을 수 있는 지원으로 스타트업에게 동기부여를 주었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쓰러지고 만다는 위기의식이 노키아를 통해 온 국민에게 자리 잡았다. 방만하고 무리한 경영을 하던 대기업이 쓰러지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3. 로비오의 등장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업은 학생들이 대박의 꿈을 꾸면서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쫒기 시작했고 이쯤 떠오른 회사가 바로 로비오였다. 바로 노키아를 쓰러뜨린 그 스마트폰 에서 오히려 대박을 터뜨리며 스타트업이 바로 핀란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증명한 회사다. 노키아의 종말이 핀란드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 시작한 것이 다.

로비오는 2003년 미카엘 헤드 등 헬싱키 기술대학 학생 3인이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2009년까지 무려 51개의 게임을 내놓았지만 모두 실패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반전, 2009년 출시된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 버드’가 쭉쭉 성공을 거두면서 60 개 국가의 앱스토어에서 1년 이상 1위를 지키는 등 세계적으로 큰 대박을 터뜨렸다.

스마트폰의 성능에 집중하던 시대에 단순함이라는 ‘역발상’의 힘은 컸다. 미카엘 헤드는 “휴대폰 게임은 시간 떼우기용으로 간단히 즐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복잡해선 안된다”며 “로딩 시간도 최소로 줄여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등 고용량 게임을 아이폰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화제가 되던 시기에 역주행의 코스를 택한 것. ‘쉽고 단순하게’ 라는 로비오의 전략은 적중했다. 앵그리 버드는 도산직전의 작은 스타트업 로비오를 폭발적으로 발전시켜 기업가치를 무려 12억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무엇보다 나라의 미래 먹거리의 본보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컸다.

4. 우후죽순 각자의 이익을 쫒기 시작하다

로비오의 성공은 벤처업계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다. 2010년 이후 노키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창업한 신생 기업만 300개가 넘었다. 노키아 같은 대기업에 취업을 원했던 대학생들은 이제 스타트업 창업을 매우 당연하고도 쿨하게 여기게 됐다. 핀란드는 이제 대박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벤처 대국이 되어갔다.

이 즈음인 2010년 6월 헬싱키에서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일카 파나넨등 6명의 게임 전문가가 모였다. 그 회사가 바로 오늘 소개할 ‘수퍼셀’ 이다. 이들은 1년간의 개발 끝에 2011년 가을, 앱스토어에 ‘클래시 오브 클랜’을 내놓는다. 가히 스마트폰 게임 시장의 아이콘이자 최고의 거인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클래시 오브 클랜.
5. 수퍼셀 이야기

2010년 창업, 2011년 첫 게임 출시, 2013년 매출 8000억, 2014년 매출 1조 8000억… 지금까지 출시한 게임 달랑 세 개. 직원은 글로벌 시장까지 모두 합쳐서 150명. 직원 1인당 매출 1위, 매출 증가율 1위, 순익률 50%, 현질율 1위, 하루 매출 50억원 이상, 대표이사 연봉 2000억. 이 만화와도 같은 판타지스러운 수퍼셀의 행보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시장의 최대의 리더인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지금 이들을 연구하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현재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1조 6000억으로 51%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되었고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사의 이름 자체가 ‘수퍼셀’이다. 아무리 회사가 커져도 작은 독립적인 ‘셀’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나 하나의 셀마다 7명~ 50명의 직원이 앉아 있다. 노키아의 몰락을 지켜본 CEO는 회사가 커진다고 해도 셀이 하나씩 늘어나는 형식을 취할 뿐 거대 조직을 늘여나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회사가 커지면서 공동체적인 책임을 졌던 노키아의 몰락을 경험으로부터 알게된 CEO의 의지이다. 게임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집착이 어마어마하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대 박행진을 벌이는 게임을 안드로이드에 무려 1년 6개월간을 출시하지 않았다.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다. 빠른 것 같지만 느리다. 그저 한 두개의 게임을 더 이상 할 게 없을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천천히 단단하게 평생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오는 회사다. 스마트폰 게임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시장 역시 이들의 공세를 피할 수 없었다. 한국 스마트폰 게임의 맹주 퍼블리셔인 카카오를 거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출시해 카카오 게임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냈다. 한달에 수십억의 광고를 퍼붓는 공세도 놀랍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쓴 광고비만 500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앵그리버드 이후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한 로비오는 최근 큰 어려움을 겪으며 대대적인 감원까지 단행했다. 모바일 게임의 짧은 수명을 또 한 번 증명한 셈이 되었다. 로비오는 최근엔 애니메이션과 오프라인 캐릭터 시장으로 변신을 시도 중이다.

그러나 수퍼셀은 모바일 게임은 유행에 민감하고 애니팡처럼 짧게 치고 빠진다는 통설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게임에 돈을 쓰는 걸 상상도 못하는 필자만 해도 3년째 하루에 8~9번을 꼬박꼬박 접속하며 50만원 이상을 결재한 무서운 게임이다. 잘 만든 게임 한편으로 노키아를 대체해 핀란드의 대표기업이 되었다.

수퍼셀에 이어 두번째로 세계시장을 석권중인 회사 역시 같은 북유럽권인 스웨덴의 ‘킹’사다. ‘캔디크러쉬사가’ 와 ‘캔디크러쉬소다’로 엄청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핀란드의 스타트업 혁신을 그대로 적용해 스웨덴 역시 최근에 많은 투자와 발전을 이루고 있다. 최근 MS에 25억달러에 인수된 ‘모장스튜디오’ 역시 스웨덴 게임사다. 핀란드와 스웨덴 북유럽 국가들의 스마트폰 게임 경쟁력은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6. 스타트업과 사익

스타트업은 사익의 출발점이다. 작게 몇 명의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모여 “우리 도 한번 해보자!” 라고 말하는 순간엔 이들에게 거창한 공익도 공동체도 이타심도 없다. 컴퓨터 딱 몇대 놓고 작은 방이나 창고에서 대박의 의지와 욕망에 불타는 이들이 국제적인 대형사고를 연이어 치고 있다.

저 멀고 먼 북유럽 헬싱키의 청년들 몇몇이 대한민국에 사는 필자가 3년간 하루 50 분의 시간을 투자하게 만들었다. 잠시 켜서 할거 한번 하고나면 할 것도 없는 게임. 끄고 나서 두시간정도 지나면 또 생각나는 게임. 이제는 일가친척 친구 팬들까지 다 모여서 두런두런 사는 얘기도 나누고 다른 클랜들과 전투도 하는 게임. 이 잘 만든 게임은 너무나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리니지나 여타 RPG 게임처럼 중독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는다. 아무리 부서진 마을도 켜자마자 회복되는 설정을 도입해 게임을 하며 생기는 마음의 분노조차 편안히 다스려지는 매력적인 게 임이다. 전세계 수억의 인구가 지금도 꼬박꼬박 하루에도 10번씩 이 게임을 켜고 있다. 개인들의 사익추구가 인류의 재미로 이어진 최고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윤서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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