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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LG 오지환, MVP의 품격...‘선대 회장’의 유지 이어져야

2023-11-16 08:00 | 문수호 부장 | msh14@mediapen.com

LG트윈스가 29년 만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프로야구 정상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된 오지환 선수가 기자회견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던 중 자연스럽게 야구 사랑이 깊었던 구본무 전 회장이 회자됐다.
 
오지환 선수는 MVP로 선정되면서 지난 1997년 구본무 회장이 구입한 롤렉스 시계를 선물 받았다. 당시 구본무 회장은 트윈스가 우승하면 MVP에게 줄 롤렉스 시계를 구매했고, 29년 만에 LG가 우승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오지환 선수는 누구라도 탐낼만 한 롤렉스 시계를 받고 “구본무 선대 회장님의 유품을 내가 차고 다니거나 할 수 없을 것 같다”라며 “받더라도 구광모 회장님께 반납하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사실 오지환 선수는 한국시리즈 직전 미디어데이에서 당당하게 MVP가 되어 롤렉스 시계를 받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막상 우승하고 MVP가 되자 구광모 회장께 선대 회장의 유품을 반납하겠다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화제의 롤렉스 시계는 1997년 당시 구본무 회장이 8000만 원을 주고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단종된 제품으로 물가 상승 요인과 희귀성, 시계에 담긴 사연을 고려하면 가치는 몇 배 이상 뛰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오지환 선수는 누구라도 욕심냈을 만한 것을 취하지 않고, 구본무 회장에 대한 존경을 나타냄과 동시에 LG트윈스 이름 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선택을 한 셈이다. 

이쯤에서 LG트윈스 선수들도 존경하는 구본무 회장의 유지가 잘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난 2월 김영식 여사와 구본무 회장의 두 딸들은 구광모 LG그룹 현 회장을 상대로, 구본무 회장이 남긴 재산을 재분배하자는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이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18년 구본무 회장 별세 당시 구광모 회장은 ㈜LG 지분을 상속받았는데 이는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구본무 회장의 배려였다. 결국 이를 재분배하자고 소송을 낸 LG 가문의 세 모녀의 주장은 사실상 경영권을 빼앗겠다는 의도가 없는지 의심스럽다.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상속에 대해 말을 바꾼 만큼,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이 또한 말이 바뀌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기업들은 대부분 오너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며, 오너의 문화적 가치관이 기업의 문화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아시아 기업들은 대부분 오너 체계로 이뤄져 있는데, 창업주 이후 2세 및 3세로 넘어가는 승계 과정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창업주의 자손들이 가업 승계 경쟁에 뛰어들면서 소송이 난무하고 그룹이 쪼개지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장수 기업들은 저마다의 승계 철학이 있다. 특히 공통적으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물을 후계자로 만드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후계자가 갖춰야 할 필수 조건과 경영철학을 내세우고 있으며, 1937년에 창업한 일본의 토요타의 경우 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 중 적임자가 번갈아 가며 CEO를 맡고 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결국 오너 일가라도 경영능력이 검증돼야 CEO를 맡을 수 있다는 점이다.

토요타가 사원들로부터 신임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경영악화로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하면서 수장이었던 오너 일가 역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사임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토요타의 독특한 CEO 검증시스템은 파벌 다툼을 막고 회사의 구심력을 높이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일본 내 경쟁회사인 닛산이 파벌싸움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전통적 승계 구조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 바로 LG 가문이었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LG 가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 중 하나는 LG그룹 자체의 성장이다. LG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분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으로, 그룹 차원의 승계 원칙을 만들고 모두가 이를 지켜온 것이 오늘날 LG그룹 전통의 초석이 됐다. 이는 GS, LS, LX 등 그룹 내에서 많은 계열 분리를 거치면서도 LG가 75년이 넘도록 경영권 분쟁이 없었던 이유이며, 모두가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선대 회장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하고 승계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10월 5일 진행된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1차 변론기일에서는 ‘구본무 회장의 ㈜LG 지분을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한다’는 취지를 담은 메모가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장자 상속의 전통은 구본무 회장의 뜻이기도 하지만, 가문의 어른들이 모두 인정한 일이기에 아무런 소음 없이 구광모 회장이 승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실 장수 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종국에는 모든 기업들이 나라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세 제도는 상속세가 높아 지분 100%를 가진 오너 기업이 3대를 거치면 보유 지분이 16%밖에 남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에 달하고 대기업은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상속할 때 평가액 20%를 할증과세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기업은 상속세로 인해 종국에는 경영권을 잃거나 자손 간 승계 경쟁으로 회사가 쪼개지거나 하는 경우만 남는다. 글로벌 대기업 또는 장수 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렇기에 100년 기업을 앞둔 LG그룹의 전통이 가족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제 3자로서도 보기가 불편할 따름이다.

오지환 선수는 깊은 사연이 담긴 값진 롤렉스 시계를 선대 회장의 유품이라며 구광모 회장에게 반납할 뜻을 밝혔다. 선수와 직원들도 존경하는 구본무 회장의 유지를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저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국내 대기업의 전통마저 훼손하는 일이다. 세 모녀로부터 시작된 소송인 만큼, 본인들 손으로 소송을 속히 끝내주길 바랄 뿐이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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