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백혈병 근로자 피해보상 논란이 과연 어떻게 처리될까? 무려 8년을 끌어온 이 사안이 해법을 찾을 것인가. 이 사안을 중재해온 민간 조정위원회가 “삼성은 공익재단에 1000억 원을 기부해 피해자 보상을 하라”는 권고안을 지난달 말 내놓자 업계가 술렁였다. 금액이 너무 컸던 탓인데, 10일 뒤 삼성의 발표도 놀라웠다. 사내기금 1000억 원을 기꺼이 조성하되 사내 기금으로 운용하겠다는 화답이었다. 그런데도 진통은 거듭되고 있다. 제3의 개입세력 ‘반올림’의 강성 반대태도 때문이다. 이들은 1000억 원을 사내 기금이 아닌 별도의 기구를 세우자는 복잡한 해법을 내세워 합의를 방해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미디어펜은 이 사안에 대한 성찰은 물론 한국경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구하는 칼럼을 2회 내보낸다. <편집자 주> |
▲ 조우석 문화평론가 |
지금은 이름조차 낯설지만, 부산의 동명목재는 한때 아시아 최고의 목재회사이자 세계 3위권 기업이었다. 1965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10위 기업은 금성방직, 경성방직, 대성목재, 제일제당, 대한제분 등의 순인데, 맨 앞자리를 차지했던 게 그 회사였다.
그때 참 대단했다. 동명목재는 수백 수천천 명 여성근로자들이 원목을 다듬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동생들 학비 마련을 위해,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험한 일을 자청했던 개발연대의 풍경이었는데, 작업환경이 열악해도 문제가 안됐다. 화학접착제 등 공해물질이 널려 있었지만, “우리는 다르다”는 자부심 속에 종업원 숙련도는 세계 최고였다.
수출산업의 귀감이었고, 월급도 올랐지만, 거기까지였다. 동명목재 옆에는 회장 돈으로 지어줬다는 소문 속에 커다란 절이 생겨났다. 그러려니 했는데 1970년대 말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때마침 공장의 화학접착제가 발암물질이고, 산업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흉흉한 말도 들리기 시작했다. 안전사고도 잇따랐다. 사람들은 점차 화를 내며 회사 측에 보상을 요구했다. 이들은 수출전사라고 하는 영예로운 호칭에 만족하던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분위기는 꼬여갔다. 노사 불신이 커지던 그때 세계시장의 원목가격이 급등했다.
왜 반세기 전 동명목재의 실패를 반복하려 하는가?
목재산업이 사양길이란 소문도 걱정이었는데, 끝내 날벼락이 떨어졌다. 당시 등장한 신군부는 동명목재에 대한 신용공여를 거절했고, 1980년 이 기업은 파산했다. “우량기업의 꿈을 겨냥한 혁신이 뒷받침됐더라면”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미 물거품이었다.
세월이 흘러 2011년 초, 창업자 아들이 동명목재의 부동산 일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때 부산경제의 거인이던 이 회사의 뒷모습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생각해보면 목재 가공업이 사양업종이란 말도 잘못이었다. 핀란드의 목재산업이 지금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건 뭔가? 동명목재는 자멸했다.
▲ 삼성전자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을 보상하기 위해 조정위가 제안한 권고안을 일부수용한다고 밝혔다. 1000억 원을 기부하여 사내기금을 조성하여, 이를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상하겠다는 해법이다. (사단법인으로서의) 공익법인 설립은 실제 보상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가족대책위는 신속한 보상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일색이며, 반올림은 즉각 삼성전자를 비난하고 나섰다./사진=미디어펜 |
삼성전자 백혈병 근로자 피해보상 논란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동명목재를 떠올렸다. 물론 단순비교는 어렵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최우량 기업이고, 동명목재는 반세기전 국내 최고였을 뿐이다. 피해자 보상 문제가 좀 골치 아프지만, 이걸로 삼성전자가 흔들린다는 징후 역시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구조는 같다. 외려 사안은 복잡하게 꼬였는데, 결정적으로 또 다른 협상 주체이자 백혈병 문제를 이슈화했던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란 제3 개입세력의 존재 때문이다. 반세기 전 동명목재에 이런 개입세력은 없었다.
삼성전자의 1000억 원 사내 기금 조성안을 걷어찬 것도 반올림이다. 이들이 내놨다는 4일 성명이란 것도 으름장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공익 법인을 통한 사회적 의제 해결이라는 조정안의 핵심 내용을 정면 거부했다. 신속한 보상이란 기만이며, 이런 식이라면 기약 없이 표류할 것이다” 반올림은 왜 이리 마치 점령군처럼 굴까?
내용은 더 기막히다. 자기들이 요구하는 이른바 공익법인에 삼성은 조건 없이 1000억 원을 기부한 뒤 개입도 하지 말라는 막무가내 주장이다. 이 안을 따를 경우 공익법인은 무소불위의 공룡으로 커갈 게 뻔하고, 삼성-하이닉스 등 반도체산업 전체를 쥐락펴락할 것이다.
공익법인은 피해보상이 끝난 뒤에도 ‘영생’할 조짐이다. 출연금의 30%인 300억 원까지 운영비로 펑펑 쓰다가 돈이 모자라면 반도체협회에 기금 추가를 요구할 수 있다. 각종 명목으로 새 사업을 벌이며 불가사리 조직을 내내 유지할 수 있다. 그럼 기업은 봉인가? 맞다. 돈만 뜯긴 뒤 자신을 공격하는 조직 앞에 무릎을 꿇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 7월 23일 오후 3시 삼성전자와 삼성직업병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가족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서대문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직업병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미디어펜 |
문화일보는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서럽게 운다”는 속담을 들어 반올림 등이 곡쟁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도 “반올림의 열정은 인정하지만 자칫 조직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건 얼마 전 한국경제의 사설이다.
“기업 돈을 무슨 공돈인 양 여기고, 이를 기회로 삼성전자에 대한 상시 간섭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을 펑펑 쓰겠다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같은 것을 하나 더 만들려는 것인가.” (7월31일자 ‘삼성전자 백혈병 조정위의 정말 심한 조정안’)
상당부분 좌파로 채워진 감시기구 설립, 찬성 못한다
사업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발병자와 가족의 보상을 위해 시작했던 논의가 엉뚱하게 매년 수백 억 원을 쓰는 상설 감시기구로 귀결되고, 이 기구는 상당부분 좌파인사로 채워진다? 이쯤 되면 반올림과, 조정위 권고안이라는 게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도 피할 수 없다.
세월호 국민혈세를 펑펑 쓰면서 정부-유가족 관계를 악화시키는 특별조사위원회, 싸구려 민족감정을 들쑤셔 한일관계를 파탄 내려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또 있다. 제주 강정마을 문제에 개입해 현지주민을 제치고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으름장 놓는 좌파 시민세력도 그런 부류다. 누가 이들을 곱게 볼까?
있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사회갈등에 끼어들어 본질을 왜곡시키는 장난을 치는 게 이들이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내세운 反대한민국 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물론 그건 산재 피해자를 대변하는 가족대책위의 입장과도 다르다. 가족대책위는 삼성전자가 밝힌 1000억 원 사내기금 마련과 직접적인 보상조치에 바로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렇다면 무려 8년을 끌어온 이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자명하다.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 그게 최선이다. 실은 1000억 원 기부 자체가 무리다. 산재(産災) 신청자 중 노동 당국과 법원이 인정한 근로자는 단 7명인데, 1000억 원 보상액이라니….
삼성이 끌려 다니지만 말고 기회에 명쾌한 보상 기준을 만들어달라는 게 업계의 암묵적인 여론이었다. 그게 당연한 게 아닐까? 앞으로 직업병 관련 문제가 불거지면 누구라도 삼성 수준의 보상을 요구할 것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누가 이런 풍토에서 누가 비즈니스를 하고 기업을 하려할까?
반기업정서가 하늘을 뚫고, 서로를 못 뜯어먹어 난리인 이게 과연 정상적인 기업환경인가? 그리고 왜 정부는 조정역할을 못한 채 8년째 수수방관인가? 그걸 심각하게 되물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반세기 전 허무하게 무너졌던 부산 동명목재의 비극을 왜 지금 우리가 되풀이하려 하는가?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