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헛다리짚은 서울시 보고서, “공동체는 원래 없었다”
서울시가 '도시 이웃'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했다는 보고서가 최근 화제다. 지난 2월 20~69세 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다. 서울시민들의 도시 이웃 관계에 대해 밝힌 ‘서울시민 마을생활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 58%는 동네 이웃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낸다. 응답자의 68%는 현재 이웃 관계에 대해 '지금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답을 했다. 매일경제신문은 이와 관련하여 『사라진 공동체…충격의 `이웃사촌 보고서`』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공동체가 원래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사라졌다”는 문제의식인데, 이것이 사실일까.
공동체는, 넓은 의미로는 어떠한 관계를 갖는 인적 결합체로 가족이나 촌락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단체를 가리키며, 좁게는 혈연이나 지연 또는 공동의 이해관계나 목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본적 사회집단을 의미한다.1) 즉, 둘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모든 모임이 공동체인 것이다. 공동체는 인류의 역사 이래로 물과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해왔다.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개념이며, 한국사람의 특질인 정(情)을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서울시 보고서가 밝힌 ‘이웃사촌’식 공동체와는 궤를 달리한다. 서울시 보고서가 언급한 ‘이웃사촌’ 관계는 공동체의 매우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는 도시가 아니라 농촌의 전형적인 특질이다.
▲ 박원순 시장은 2012년 마을공동체 관련 토론회 자리에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들은 결국 공동체가 붕괴되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마을공동체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에서의 마을 공동체 사업은 삶의 질을 생각하기보다는 아파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고, 더 좋은 자동차를 탈 것인가 관심을 모았던 시대로부터 큰 변화의 첫 출발”일면서 “풀뿌리가 중심이 되는 사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
과거 서울시에서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를 살펴보자. 지난 30년간 서울시 일반가구 중 자가로 주택을 점유하고 있는 가구는 다섯 중 둘에 불과(38~44%, 가장 최근 수치는 2010년 기준으로 41.1%)하다. 최근 20년간 서울시민의 인구이동률은 16~23%(1992~2012년 기준)이다. 이는 모든 서울시민이 4~5년에 한 번씩은 이사했음을 의미한다.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서울시에 있는 주택 중 다세대의 비중은 다섯 중 셋을 넘고 있다(60~62%, 2007~2012년 기준).2) 경기도의 도시지표도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은 한국에서 규모의 경제가 가장 크게 실현된 도시공간이다. 산업화 이후 지난 50년간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러 혹은 자녀교육을 위하여 모여들었다. 자가 주택을 영위하기 힘든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이사를 해가며 거주지를 옮겼다. 경기도는 서울에 거주할 경제력이 없는 이들의 대안이었다. 수도권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경기도 곳곳에 일자리가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더욱 많은 인구가 지방에서 경기, 인천으로 몰렸다. 서울과 경기도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매우 이동성이 높은 채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시공간’이다. 수도권 56개 지자체 중, 도시가 아닌 군은 3개(가평군, 양평군, 연천군)에 불과할 정도이다.
수도권 주민들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현대판 노마드다. 가족이나 개인, 가구 단위별로 이주한다. 본인 명의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비중도 다섯 중 둘 뿐이다. 거주 수요는 높지만 거주할 땅은 좁아 다세대 집적주택(아파트 등)이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이웃사촌식 ‘공동체’ 문화는 형성되지 않았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각 가구의 개인들은 가족 단위로만 생활하고 이동할 뿐이다. 유목성과 역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웃사촌을 매개로 하는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3년간의 시정을 통해 ‘마을공동체 육성’을 지역정책으로 정착시켰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의 주된 캐치프레이즈는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웁니다. 마을기업과 청년일자리를 지원합니다. 청소년과 어른들이 한데 모여 놀며, 세대 간 소통이 이루어지고, 마을에서 관계로 맺어지는 가족을 지향합니다”이다./사진=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
한국 사회 전체를 돌아보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특질은 이웃사촌 ‘공동체’로 조직되지 않은, 분산적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점이다.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였을 뿐이지 교육과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공동체라 일컬을 오해를 사는 몇몇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 ▲17~19세기 조선시대의 ‘동리’는 주민들의 생활공동체가 아니었다. ‘동리’는 인간 주거의 집적을 의미하였을 뿐이며 수리, 영림, 교육 등의 공공재를 생산하는 주체는 아니었다. ▲‘두레’는 장기간에 걸쳐 농촌경제를 지배해 왔던 노동조직-집단작업조직-공동노동의 형태였지만, 이 또한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생활공동체가 아니라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동원하는 방식이었다.3)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에서의 ‘마을’ 개념도 이와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여 각 마을이 경쟁적으로 인프라 구축 및 생산활동에 나서도록 촉진했던, 권위주의적 제도의 일환이었다. ▲19~20세기 ‘보부상 조직(보부상단)’은 출입이 자유로운 가난한 상인들의 상호부조와 의례기능의 단체였다. 상인들 사이에서도 이웃사촌에 대한 ‘공동체’ 의식은 전무했다.
시민들이 이웃사촌 ‘공동체’를 선호하고 바랄까
도시는 익명성을 기초로 한다. 이는 바로 옆 이웃과의 익명성이다. 이는 개인 프라이버시 및 여가시간과 직결된다. 동네 이웃이 자기 가족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삶의 질을 함께 공유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든 아이들 교육에 따른 사정이든 기본적으로 유목민적 거주 성향을 보인다. 도시인이면 누구나 익명성에 익숙해져 있고, 개인 혹은 가족이라는 단위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불편해 하거나 터부시 하지 않는다.
게다가 각 지역에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자생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민들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생겨나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는 커뮤니티는 수천만 개에 달한다.4) 커뮤니티의 연결고리는 혈연, 지연, 학연, 취미, 종교 등이며, 그 단위는 전적으로 ‘개인’이다. 커뮤니티는 종속적이거나 지속적이지 않다. 본인 의사에 따라 언제든 참여 여부를 정할 수 있으며, 커뮤니티의 운영에는 정해진 기간이나 짜여진 예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커뮤니티는 사교용으로서 개인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장이다.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 간의 비정기적이며 일상적인 친교의 자리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유물이었던 반상회-통반 체계는 그 명맥이 끊겼고, 현재 아파트 단지마다 있는 부녀회는 소수의 경제적 지대추구 커뮤니티로 전락했다. 주상복합아파트에 갖춰져 있는 공동공간에서 주민들 간의 네트워크모임은 거의 열리지 않으며, 거주민 각자의 개인적인 사교모임 초대공간으로 쓰인다. 지역 내 동종업계 중소 자영업자들은 서로 간에 분산적인 영업 행태를 보이며, 협동 없이 경쟁을 펼친다.
시민들이 이웃사촌 ‘공동체’를 선호하고 바랄지 의문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그리고 경기도와 같은 신도시 지역 주민들 사이에 ‘이웃사촌과의 공동체’라는 의식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사람들 사이에는 누구나 보편타당하게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공동체’ 의식만 존재할 뿐이다. 한국사람의 특질인 정(情)을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혈연․학연 등) 말이다.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사촌을 염두에 둔 공동체 문화는 원래 없었다. 도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농촌, 시골이라면 모를까.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1)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서울통계(http://stat.seoul.go.kr/index.jsp), 서울통계연보(1992~2012년 기준) 3) 이영훈. ‘경제민주화’의 한국사적 배경. 2012.10.17 4) 네이버카페 975만개, 다음카페 1천만개가 운영 중이며 그 외에 페이스북, 트위터, 디씨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의 외연은 다양하다. 온라인커뮤니티가 아닌 오프라인커뮤니티는 추정 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