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2월 26일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부지런히 파리를 향했다. 반(反)프랑스 동맹과 라이프니치전투에서 패해 퇴위를 선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때이다. 파리까지 가는 길은 막힘없는 고속도로와 같았다. 루이18세의 명령에 따른 진압군이 길목마다 파견됐지만 나폴레옹을 만난 옛 전우들은 속속 우군으로 전향했다. 파리가 다가오면서 루이18세를 둘러싼 왕당파의 분열로 그를 막아설 세력은 남지 않았다. ‘엘바섬의 악귀’가 ‘프랑스 황제폐하’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열이틀에 불과했다.
생성형 AI라는 신세계를 선도하는 ‘오픈 AI’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Chat-GPT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샘 올트먼(Sam Altman)이 17일 이사진 6명 중 4명의 결의로 축출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 휴전협정이 논의되는 긴박한 시기였지만 글로벌 리더들의 눈과 귀는 ‘오픈 AI’ 본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중동지역 분쟁이 현재의 글로벌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라면 ‘오픈 Al’ 사태는 미래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이기에 그렇다. 그런 인식은 ‘오픈 AI’를 탐내던 글로벌 기업들을 자극했고 각국 정부 역시 국가 안보차원에서 비상한 관심을 표명했다. ‘오픈 Al’의 현재 시장가치는 900억 달러(약 117조5400억원)이지만 미래 사회를 모델링하는 창조기업으로서 향후 가치는 무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을 찾은 샘 올트먼은 한국 기업과 함께 AI칩 개발을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올트먼은 실각 5일 만인 21일 CEO로 복귀했다. 올트먼의 퇴출 소식에 즉각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영입 의사를 밝혔고 올트먼 역시 합류 의지를 표명했다. 올트먼이 MS에 둥지를 틀고고성능AI 연구팀(advanced AI research team)을 이끌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픈 AI’를 비롯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기술과 자본의 결합으로 인해 생성형 AI 업계의 판도는 MS의 완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평가는 시장 독점이라는 새로운 위기감을 몰고 왔다. 여기에 ‘오픈 AI’ 구성원의 90%에 이르는 직원들이 올트먼이 복귀하지 않으면 올트먼과 함께 MS로 이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이사진을 압박했다. 사면초가에 몰린 ‘오픈 AI’ 이사진은 와해됐고 올트먼의 복귀와 함께 새로운 진용이 들어섰다.
올트먼의 복귀로 진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외신은 이번 사태의 승자는 MS라는데 입을 모은다. 130억 달러를 투자해 ‘오픈 Al’의 가장 큰 투자자이기도 한 MS가 해임된 올트먼에게 재빨리 피난처를 제공함으로써 백기사의 명분과 신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새로 구성된 ‘오픈 AI’ 이사진에 친(親)MS계 인사를 심었기에 실리 역시 챙겼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언론과 경제계는 올트먼을 ‘쫓겨난 창업자이자 AI영웅’으로 미화했다. 또 ‘오픈 Al’ 이사진을 생성형 AI산업의 걸림돌(혹은 Bad Cop)로 낙인찍었다. 특히 AI업계는 올트먼이 ‘오픈 Al’ 의 주식을 한 주도 갖지 않은 점을 들어 그를 동정하며 미래기술의 수호자로 떠받드는 경향까지 보였다. 올트먼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줌으로써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신격화했다. 과연 이러한 이분법이 맞는 것일까?
그렉 브록만 오픈AI 공동창업자는 21일 “다시 돌아왔다(we are so back)”는 글과 함께 오픈AI 직원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X(옛 트위터)에 공유했다.
우선 ‘오픈 Al’의 성격과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픈 Al’의 출발은 AI산업의 확장이나 시장 장악에 있지 않다. 10여년의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개발 쟁투에서 인류를 보호하겠다는 공익적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조직 자체가 미국 델러웨어주에 등록된 비영리단체이다. 따라서 이사진 역시 비영리단체 대표 3인, 샘 올트먼을 비롯한 공동창업자 3인 등 6인으로 구성됐다. 최종 목표 역시 인류가 안전하고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반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개발에 두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회의 현안 중 하나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입법(立法)에 골똘하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AI는 인류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점은 올트먼 조차 인정하고 있다.) 또 ‘오픈 Al’는 출범 강령으로 “오픈AI의 수혜자는 투자자가 아닌 인류”라고 명시하고 있음도 성격을 짐작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당초 ‘오픈 Al’ 이사진이 올트먼을 해고한 사유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디지털 전문 언론인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오픈 Al’ 이사진들은 자신들의 기술이 AI기술을 안전하게 조정하고 AI기술의 위험을 예측해야 하는데 올트먼이 이와관련 불투명했다고 밝힌 점이다. 다분히 올트먼이 사업을 위해 안전성을 불투명하게 처리했다고 추측도 가능하다. 올트먼의 퇴출을 주도한 이리야 수츠케버가 “이사회는 인류에게 혜택을 주는 일반 인공지능을 구축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뉴욕매거진은 올트먼과 인터뷰 기사에서 “나쁜 사람들이 나쁜 인공지능을 만들기 전에 좋은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분야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하튼 프로젝트’에 나설 때 스스로를 설득한 논리였음을 상기하게 한다. 현재 핵무기는 영화의 상상력을 빼면 복잡한 기술과 상호 견제 그리고 겹겹의 보안체계로 통제 중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뛰어넘는 파괴력으로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를 통제할 법안 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오히려 올트먼을 축출한 이사진의 행위가 영웅적 결단이자 인류를 구할 경고음일지 모른다.
역사적 사실을 미루어 ‘오픈 Al’는 그들의 태생적 규범대로 인류가 안전하고 공평하게 통용할 수 있는 일반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개발하고 선을 넘는 AI기업들을 감시하는 역할이 적격이다. 엘바섬을 탈출해 재집권에 성공한 나폴레옹의 권세 또한 100일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인 나폴레옹법전은 대륙법의 효시로 지금까지 인류에 봉사하고 있음을 본다. 또 그가 뿌린 계몽주의의 향기는 이후 유럽의 시민사회를 열었다.
올트먼의 이름 역시 AI의 태두로 오랜 시간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올트먼의 이름은 'AI의 상업화가 아닌 통제되고 절제된 AI유산'을 남긴 것으로 평가돼야 한다. '오픈 AI'가 비영리단체로 존속되길 희망한다.
미디어펜 부사장=김진호
[미디어펜=김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