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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특집] 이제는 청동에 새겨야 할 그 이름 '이승만'

2015-08-15 08:3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자유경제원은 13일 ‘해방 70년,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송복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복거일 작가의 기조강연에 이어 Session 1-‘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미’, Session 2-‘대한민국–시장경제를 택해 부국을 이루다’로 나뉘어 진행됐다.

세션 1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사회로 ‘대한민국 역사’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의 ‘건국의 역사적 의의와 현실’이라는 주제 발표에 이어 강규형 명지대학교 기록대학원 교수, 류석춘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원장,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장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션 2는 박동운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사회로 김학은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대한민국-시장경제를 택해 부국을 이루다’는 주제 발표에 이어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조우석 문화평론가가 토론을 펼쳤다.

자유경제원은 “해방 후 3년 만에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건국은 극심한 좌우 갈등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념으로 하는 근대국가를 세웠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며 “광복 67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아래 글은 복거일 작가의 '이제는 청동에 새겨야 할 이름, 이승만' 기조강연 전문이다. [편집자 주]

   
▲ 자유경제원은 13일 ‘해방 70년,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복거일 작가.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면, 우리는 먼저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유구히 이어진 역사의 작은 부분입니다. 널리 살피면, 생태계의 역사의 한 부분이고, 좁게 살피면, 조선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그리 중요하고 그 일에서 역사가 그리 긴요하므로, 폴란드 역사학자 콜라코프스키(Leszek Kolakowski)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처신이나 성공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역사를 배운다”라고. “처신이나 성공의 방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아는 일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정체성은 과거를 자산으로 삼아 미래를 창조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형성한 역사적 요인들을 이해하고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들을 자산으로 삼아 미래의 우리 모습을 또렷이 그릴 때, 비로소 우리는 정체성을 갖추게 됩니다.

우리가 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이므로, 우리 역사에선 지정학적 요소가 두드러졌습니다. 이웃 민족이나 국가가 갑자기 강성해지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만, 우리나라는 국제 환경이 급격히 바뀔 때마다 크게 부대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우리 역사는 우리 강역 둘레의 국제적 환경과 연관되어 해석되고 기술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정은 19세기에 유럽 문명이 동아시아에 거세게 닥친 뒤로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먼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동아시아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전통적 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 과정은 힘들고 더디었으며, 거의 모든 사회들에서 분열과 내전을 불렀습니다. 아울러,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는 것이 민족들과 국가들의 생존의 결정적 요소가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변신하는 데 이웃 나라들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근대화를 제때에 이루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습니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둘레를 살필 만큼 시야가 넓지 못했고 서양 문명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과정에 대해 깊이 탐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폐쇄적인 사회였고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적었다는 사실을 반영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생산되는 역사서들은 시야가 좁고 해석이 피상적이어서 우리 시민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실은 드물지 않게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을 방해하거나 왜곡된 지식을 제공합니다.

 

   
▲ 우남 이승만의 뛰어난 식견과 지도력은 대한민국의 탄생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남이 약소 민족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야멸찬 국제 질서의 맥락에서 힘이 약한 우리 민족이 독립하고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찾은 덕분에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 사회의 폐쇄적 및 지역적 전통이 워낙 확고했으므로, 그것에서 벗어나 외부지향적 태도를 지니고 세계적 맥락에서 현실을 살핀 지식인들은 드물었습니다. 그런 안목을 지닌 지식인들 가운데 으뜸은 우남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의 우세한 문명이 나머지 열세한 문명들을 압도하는 과정을 살피고 제국주의가 뒤덮은 국제 질서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구에서 얻은 지식과 통찰을 통해서 약소국인 자신의 조국이 살 길을 찾았습니다. 세계화가 많이 진행된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우남보다 더 널리 그리고 깊이 세상을 살피는 지식인은 찾기 어렵습니다.

자연히, 우남은 우리가 20세기의 세상을 보는 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남의 눈길을 따라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20세기 역사를 당대의 시각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이 사실은 우리가 우남의 삶을 연구할 때 그를 문명적 및 국제적 맥락 속에 놓고 살펴야 함을 뜻합니다. 그가 세상을 그런 차원에서 살피고 조선의 살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양 문명이 다른 문명들을 대치해서 인류 문명의 주류로 자리잡는 과정을 살폈고 강대국들이 모두 제국주의를 추구하던 당시의 국제 질서 속에서 이미 국제적 인식에서 사라진 조국이 되살아날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우남에 대해 깊이 연구해서 그의 생각과 역할에 대해 정당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은 채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기술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입니다.

우남의 뛰어난 식견과 지도력은 대한민국의 탄생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우남이 약소 민족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야멸찬 국제 질서의 맥락에서 힘이 약한 우리 민족이 독립하고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찾은 덕분에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한 나라가 태어나는 일은 워낙 거대한 현상이라서, 그것을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과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런 과정이 나름의 정당성을 지닐 경우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탄생에서 우남이 한 역할일 것입니다. ‘국부’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고 정당한 경우가 있다면, 바로 우남일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남이 우리가 정체성을 갖추는 데서 한 역할입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대로, 한 사람이나 한 국가의 정체성은 그들을 형성한 역사와 그들이 물려받은 유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이 물려받은 것을 자산으로 삼아 미래에 갖추고자 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정체성은 수동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남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로 채택하는 일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한 나라들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우남은 대한민국을 세웠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가 생각해낸 이념과 체제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현명하게 갖출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입니다.

우남의 업적은 “하늘을 덮을 만큼” 크고 그의 영향은 천추만세에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습니다. 지난 반세기는 우남에게 오욕의 세월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잊혔고 그의 허물은 터무니없이 과장되었습니다.

그런 왜곡된 평가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뒤틀리게 했습니다. 대한민국 덕분에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국민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성취를 폄하하는 지금 상황은 우남에 대한 의도적 폄하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는 개인적으로는 불의이며 사회적으로는 정체성의 왜곡입니다.

2백 년 전 영국에서 죽음을 앞둔 스물 여섯 살의 시인이 서글픈 마음으로 자신의 비명을 지었습니다. “여기 누워 있다 그의 이름이 물로 씌어진 사람이.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불멸의 작품들을 남긴 키츠가 스스로 지은 이 비명은 셰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언급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악행들은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그들의 덕행들을 우리는 물로 쓴다 (Men’s evil manners live in brass; their virtues/ We write in water.)”

다행히도, 키츠의 묘비엔 요절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한 셸리의 시구가 새겨졌습니다. “그는 그가 한때 아름답게 만들었던 아름다움의 한 부분이다. (He is a portion of the loveliness/ Which once he made lovely.)”
우남은 “그의 이름이 물로 씌어진 사람”입니다. ‘이승만’ 이름 석 자가 청동에 새겨져 그가 세우고 사랑한 대한민국의 중심에 우뚝 서도록 하는 것이 여기 모인 우리의 과업입니다. /복거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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