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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
'일촉즉발'의 순간이 잦아지면 인간의 감각은 필연적으로 둔감해지게 마련이다. 최근 며칠은 좋은 예이다. 25년 전 같으면 마트의 라면과 생수가 동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2년 전이던 2013년 봄, 북한이 3차 핵실험이 끝난 후에도 전쟁의 위협은 지금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때와 차이가 뭘까?
대북확성기 방송이 북한에게는 이다지도 치명적인가? 그렇다면 한국은 당시 왜 확성기를 틀지 않았나? 여름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린 주말, 갑작스런 남북 최고위급 회담의 직접적 발단 원인은 간단했다. 북측이 타이머를 걸었기 때문이다.
최후통첩(Ultimatum)이란 행동을 담보로 해야만 그 중차대함이 인정받는다. 북한이 확성기 타격시점을 공개하고 나선 것은 일종의 복선이다. 공격 선언을 지켜도 문제, 지키지 않아도 문제인 딜레마의 상황을 자초한 것은 중의적인 의미가 함축됐다. 그만큼 조급하거나 고도로 의도적이거나. 정서적 조급함과 이성적 신중함은 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이 둘이 결합되면 그 속내를 알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딱 지금의 북한 모습이다. 협상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남북이 각각 테이블에 무엇을 꺼낼지는 초등학생도 알 만큼 뻔하다. 문제는 서로 요구할 목록이 상호 호혜적이지 않다는 거다. 전형적인 투쟁적 협상일 수 밖에 없다. 투쟁적 협상이란 양측의 목표가 갈등상태인 것을 말한다. 남측의 사과요구, 재발방지 약속과 북측의 발뺌, 대북확성기 철거, 5.24조치 해제는 상충한다. 그나마 인도주의적 사업인 이산가족 상봉만이 덜 충돌적이다. 북한은 이마저도 정치적인 지렛대로 이용해 왔기에 이번에도 긍정적 합의에 이르긴 난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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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3군 사령부를 방문,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이번 협상의 구체적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상황적 맥락을 일으킨 핵심사건(목함지뢰, 확성기 설치 등)은 협상 개시의 계기일 뿐이다. 그 자체가 협상을 이끌어 가는 추동력이 될 수는 없다.
첫째, 북한의 전략적 실수(오판). 시계열적으로 원인을 추적하는 자기회귀적 분석이다. 목함지뢰같은 저질 게릴라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대북확성기 타격을 언제 하겠다는 시간선언만 하지 않았더라면…. 현장 실무급의 즉흥적인 상황대응으로 인해 평양에서 급수습에 나섰다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분석이다.
둘째, 의도된 북한의 전략적 계산. 현재까지의 상황전개가 실은 북한이 고도로 기획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목함지뢰라는 작은 트리거(trigger: 상황을 촉발시키는 결정적 요인)로 최고위급이 만나는 큰 그림을 갖고 있었다는 추론이다.
셋째, 임기응변적 우연한 전개의 연속. 목함지뢰도, 대북확성기 조준타격 시점발표도, 김양건-황병서가 협상장에 나오게 된 것도 어찌 하다보니 그만 이렇게 판이 커지고 말았다는 우연설이다. 전략적 오판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행위자의 의도성이 줄고 상황발생의 환경적 즉흥성이 보다 강조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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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된 대북확성기./사진=KBS 캡처 |
진실은 어쩌면 이 셋이 뒤엉켜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제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북확성기만 사라지면 협상성공일까? 휴전선으로부터 10km, 최대 24km까지 들린다는 대북방송에 도대체 북한군이 몇 명이나 노출된다고 평양의 2인자가 판문각까지 내려와야 했을까? 따라서 협상의 목적을 탐색하는 일이 보다 중요하다. 협상 결과야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협상과정이나 의도도 귀납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목적은 간과되기 십상이다.
북측의 협상 목적은 그들의 의도와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핵심 척도가 되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어떻게 봐야 할까? 잠재된 두 가지 가능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 협상 이벤트가 현대화 지능화된 북한 대남 통일전선의 변형이자 작전일 수 있다. 남한사회의 관심을 순식간에 끌어올려, 내부의 자중지란을 유도하는 단초를 심는 작업이라고 말이다.
둘째, 협상자체가 목적이다. 본디 협상이란 상호 주고받을 조건이 맞아야 '딜'이 성립한다. 현재로선 남과 북이 서로 흥정이 가능한 요소가 거의 없다. 이 구도를 깨려면 최고위층이 만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으로선 잃을게 없는 ‘신의 한 수’. 기존 대남 실무라인과 별도의 고위급 채널 하나를 공식화하는 정책옵션을 쥐게 됐다. '와이 낫'(why not?)의 상황이 남측에게도 나쁘지는 않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고민은 하나다. '힘(power)'의 문제이다. '현실정치는 현실주의적일 수 밖에 없다'(A real world remains the realist world)는 제3세대 현실주의(공격적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셰이머의 경구만이 진리이기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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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이 각각 테이블에 무엇을 꺼낼지는 명약관화다. 문제는 서로 요구할 목록이 상호 호혜적이지 않다는 거다. 전형적인 투쟁적 협상일 수 밖에 없다. 투쟁적 협상이란 양측의 목표가 갈등상태인 것을 말한다. 남측의 사과요구, 재발방지 약속과 북측의 발뺌, 대북확성기 철거, 5.24조치 해제는 상충한다. 그나마 인도주의적 사업인 이산가족 상봉만이 덜 충돌적이다. 북한은 이마저도 정치적인 지렛대로 이용해 왔기에 이번에도 긍정적 합의에 이르긴 난망할 것이다./사진=YTN 캡처 |
동북아 국제정치의 큰 손(미, 중, 러, 일 등)들이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물리적 힘에서 관계적이고 환경적인 힘까지 힘에 대한 정치적 정의는 다양하다. 어떤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힘을 보는 무게중심도 달라진다. 그러나 한마디로 힘에 내재된 공통의 대표적 특징을 꼽자면 '상대가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일을 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라는 것이다.
공격적 현실주의에 따르면 가능한 한 막강한 힘의 추구는 국제정치 구조 안에서 당연한 전제이기도 하다.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 자국민 2만여명을 모아놓고 후지산 부근에서 자위대 전력전술 기동 시범을 선보였다. 중국의 9월 3일 전승절은 그야말로 대국굴기 중국이 동북아의 패권국임을 과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어셰이머 교수의 관전법이라면 이 모든 일들은 세계 권력구조 속에서 자국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당연한 노력일 뿐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동북아 근현대사 속에서 새로운 패권국이 출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제까지 미국은 직접 개입보다는 그 지역의 또 다른 강대국(일본)에게 잠재적 패권국(중국)을 억제할 부담을 전가시키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물론 이것이 미국에게만 고유한 현상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대목에서 전혀 다른 '상상'을 해본다. 태생적으로 대립적일 수 밖에 없는 체제이지만 강대국들이 득실거리는 동북아 역학 속에서 이제는 남북이 안보문제를 외연화하는 발상의 전환은 불가능한지 말이다. 안보의 대립을 휴전선이 아니라 한반도 바깥에 둠으로써 남북 간 안보협력이라는 희대의 개척지를 개간할 수는 없을까.
이는 통일과는 다른 차원의 논의다. 물론, 북한의 인권상황이라는, 외면할 수 없는 아킬레스 건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낙후됐을지언정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과 남한의 최첨단 국방력이 지정학적 맥락에서 협력할 수 있다면 그 힘은 일본과 중국에게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에 충분할 테다. (당장 현실가능성이 없기에 상상이란 단서를 달긴 했으나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평화조약은 실상 이 길로 나아가는 단계다.)
65년 전 남북은 흘릴 수 있는 모든 피를 쏟았다. 이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서로 힘을 찾고, 맺고, 키우는 거다. 이 힘에 대한 ‘딜’을 시도하는 협상이라면 좌-우를 떠나 일단 지지하고 지켜볼 용의가 있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