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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는 정치적 도구, 인성교육이 먼저다

2015-08-28 08:3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좋은학교운동연합, 자유교육연합, 자유경제원은 지난 8월 22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연속 기획 ‘대한민국 교육,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제1차- 인성교육법 시행에 비춰본 문제들>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2014년 12월 제정된 ‘인성교육법’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성숙한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입법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인성교육법의 내용은 무엇이고, 학교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높다. 이에 좋은학교운동연합, 자유교육연합, 자유경제원은 “이 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학교폭력·학생인권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해 보고, 현장의 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안산별망중 김상영 교사는 “인성교육법에 나타난 인성의 개념은 인성, 도덕, 시민의 자질 등과 혼재되어 있어서 인성교육법이 진정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인성교육에 대한 올바른 정립 없이, 당장 2학기부터 실시해야 하는 인성교육을 어떻게 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유경제원 전희경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윤세환 박사(전 경북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김상영 교사(별망중), 남궁간희 학부모 대표, 이태희 미국변호사, 이혁규 교사(군포고)가 토론자로 참석했다.아래 글은 이태희 변호사의 “‘인권’보다 ‘인성’이 먼저다‘” 토론문 전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라는 말처럼 많은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 인권은 말 그대로 ‘인간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신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바꿔 말해서 ‘인권’은 ‘인성’(人性, personality), 즉 ‘인간의 성품’을 기초로 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권은 건강한 인성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권’보다는 ‘인성’이 먼저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성품 또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책임감’이다. 따라서 진정한 인권은 책임감 있는 인성을 기초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그 누구의 인권도 제대로 지켜질 수 없을 것이다.

인권은 교도소의 죄수에게도 있고 병원의 환자에게도 있다. 학교의 학생에게도 있고 교사에게도 있으며 학부모에게도 있다. 그러다보니 상호관계에 따라 그 권리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인권을 위해서는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건강한 인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1차 목적은 인권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이다. 인성교육이 ‘주’(主) 고 인권 교육은 ‘종’(從)이다.

   
▲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우면동 우면초등학교에서 열린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에서 어린이들이 학교 폭력 예방 플래쉬몹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책임’이란 단어는 영어로 ‘responsibility’인데 그 어원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respondere’다. 즉 “너는 왜 그런 행동을 했니?”라는 물음이 교사나 동료학생으로부터 제기 되었을 경우, 문제의 학생이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당당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책임의식을 가진 학생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학생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잘못에 대한 책임은커녕 자신의 잘 못에 대해 야단치는 교사나 어른에게 반발부터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학생들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만이 중요할 뿐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 대한 구분에 관심이 없다. 선과 악에 대한 분별의식 조차 없는 ‘도덕 불감증’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교육을 ‘파이데이아’(paideia)라고 지칭했는데 어원적으로는 ‘paidos + agein’의 합성어로서 “아이를 인도 한다”는 뜻이다. 교육의 어원적 의미에 맞게 “인도 한다”는 뜻을 받아들인다면 학생들은 인도자의 ‘이끔’, 즉 ‘권위’를 따라야 한다. 교사가 학생을 야단칠 때 그 야단을 권위를 가진 강자의 폭력으로 간주한다면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담당할 수 없을 것이며 우리 학생들은 건강하고 책임 있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학생들의 인권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인권은 학생에게도 있고 교사에게도 있다. 따라서 학생과 교사 간의 권리가 서로 충돌할 경우 누구의 권리가 우선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법이 나오기란 여간 쉽지 않다. 때문에 학생인권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권리를 과도하게 인정할 경우 그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권위와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많은 혼란과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학교가 “배움과 교육의 현장”이 아닌, “갈등과 투쟁의 장소”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김학용 국회의원(새누리당)이 제출한『서울, 경기,강원 교육청 국정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을 기준으로 교권침해 발생 건수가 아주 큰 폭으로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 2011년은 경기도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첫 해이기도 했고,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놓고 큰 갈등이 있었던 해였다.

경기도를 살펴보면 조례 시행 이전인 2010년 교권침해건수가 130건에 불과했으나 2011년 665건에서 2012년 1691건, 2013년 1291건 등으로 어림잡아도 열 배 이상 급격하게 침해건수가 증가했다. 서울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교권침해건수는 685건에 불과했으나 2011년 이후부터는 줄곧 1300여건 넘게 발생하는 등 2배 이상의 교권침해사례가 발생했다. 심지어 조례가 제정된 2012년도에는 무려 1780건까지 치솟았다.

학교는 인권문제를 넘어 인성전반에 걸친 전인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곳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권의 목적과는 달리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와 책임” 등도 함께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마땅히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가”하는 문제보다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 대해 지켜야 할 예의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먼저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꾸중을 들을 때 학생인권조례에 의거하여 “어떻게 신고할까” 고민하는 학생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뉘우치면서 “내 잘못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반성하는 학생을 길러내야 한다.

현재 시행 중이거나 마련 중인 학생인권조례는 온간 좋은 말로 포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학생들의 전인적 교육과는 거리가 먼 “기존질서의 해체”라는 정치적 어젠더를 실현시키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라면 현재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폐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현재 추진 중인 강원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태희 미국 변호사·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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