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정치부장]
‘古之君子(고지군자) 其責己也重以周(기책기야중이주) 其待人也輕以約(기대인야경이약)......(중략)今之君子則不然(금지군자즉불연) 其責人也詳(기책인야상) 其待己也廉(기대기야렴) (후략)......
옛 군자들은 자기를 책망할 때는 엄격하고, 남을 탓할 때는 너그럽다.
지금의 군자들은 그렇지 않아서 남을 책망할 때는 상세하고, 자기를 대할 때는 너그럽다.’
당나라의 문장가이자 정치 사상가인 한유(韓愈)가 쓴 ‘원훼(原毀)’의 일부다. 중국 송나라 말 황견이 주나라부터 송나라 때까지의 시문을 한데 모아 놓은 책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後集) 7권 육조당문(六朝唐文)의 16번째 편에 실려있다.
원훼(原毀)는 비방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한유가 당시 권력가들이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면서 자기 권력을 탐하고 다른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세태를 꾸짖기 위해 쓴 글이다.
과거 19세기 말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사회주의가 분출할 무렵,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모색하던 혁명가들 사이에서 ‘자아비판’이라는 것이 생겼다. 혁명가들 스스로 자신에게 더 엄격한 도덕성을 부여하고, 또 혁명 이론의 토대를 다지기 위한 정신과 이론 단련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1917년 10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국가 통치 이념이 되고, 이후 레닌이 사망한 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 치하에서 ‘자아비판’은 스스로를 단련하는 수단이 아니라 일종의 형벌이 됐다. 당성이 약하거나 공산주의에 소홀한 사람, 또는 반혁명 분자거나 스탈린 권력 체제에 반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 치하에서나 빨치산이 점령한 지역에서도 ‘자아비판’은 ‘반동분자’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형벌이 됐다. 원래는 스스로의 당성 강화나 혁명 정신 고취의 수단으로 학습되던 것이 형벌이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비판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범죄를 저지른 후 자백을 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자백은 처벌을 위한 과정이지만, ‘자아비판’은 이미 그 자체로 처벌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유의 지적처럼, ‘자아비판’은 권력자, 요즘으로 치면 정치인들에게 더욱 힘든 일이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들 상당수는 임기 내내 늘 ‘반성’과 ‘사과’라는 단어를 곁에 두고 살지만, 더 친근한 건 ‘비난’과 ‘비판’, 그리고 ‘책임 지우기’일 것이다.
제22대 총선이 끝난 지 열흘이 지나고 있다. ‘여당의 참패’라는 분명한 팩트를 짊어진 이번 총선은 사실 거의 엇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낸 지난 제21대 총선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당시 180석이라는 경이로운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야당’이 아니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의 길에 있지도 않았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 당시를 가만히 복기해보면, 패배한 국민의힘의 전신인 당시 야당 미래통합당은 반성과 사과로 총선 패배를 아파했다. 당은 풍비박산의 수준으로 망가졌고, 그 속에서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지도부들은 정치판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진정성이 없었다.
그런데 분명한 반성과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물이 4년 뒤 제22대 총선이다. 당시에도 겉으로는 사과와 반성이 난무하고, 변화의 다짐과 철저한 패인 분석 등의 단어들은 난무했지만, 4년의 시간을 지내도록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는 없었고, 결국 당내에서도 계파간 비난과 책임 떠넘기기, 스스로만 옳다는 아집이 실제 국민의힘에 팽배했다.
총선 패배 후 국민의힘은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이뤄지고 있는 걸까?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패배한 대통령의 바람직한 모습이 맞는 걸까? 지나치다고 해도 4년내내 해야 할 게 반성과 사과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거기다가 국민들은 1년 뒤 치러진 대선과 2년 뒤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을 책망하고, 국민의힘에게 권력을 넘겨줬는데, 그게 더 독이 된 모양이다. 국민의힘은 충분히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졌고, 또 거기에 더해진 절대 권력인 윤석열 대통령까지 가세해서 민주당을 심판하고 자신들의 손을 잡아 준 국민을 저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보다 더 심각했다. 2년의 권력 동안 오로지 자기 안주에만 급급했고, 국민들이 뭘 부족해 하고, 어떤 것을 불편해 하는 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재보궐 선거 등에서 분명한 신호를 보냈는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저 야당의 대표 때려잡기와 무시하기에 급급했고, 권력을 잡아놓고는 민생 파탄의 책임마저 야당에게 전가하는 볼썽사나운 짓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참담한 패배를 겪고야 말았는데 지금도 반성과 패인 분석은 뒷전이다. 당에서는 용산에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용산은 “선거는 당의 일”이라며 그 안에서 어떤 후진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 뒷집 지고 있던 어떤 지자체장은 연일 선거 총책임자를 비난하느라 신났고, 이번 선거의 총책임자는 저 혼자 책임진다며 사라져서 더 큰 그림이나 그리고 있다.
구심점 잃고 헤매는 당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아비판’ 보다는 ‘남 탓’이나 하며 그 다음 정치를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선거 전이나 당이 중요하지, 선거 패배 이후엔 그 책임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한 번의 총선으로 모든 것을 다 망친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언제나 누구 하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진 않는다. 21대 총선의 패배와 이번 총선의 패배는 다르다. 앞서 언급한대로 21대는 야당으로의 패배였고, 이번엔 여당의 패배다. 물론 야당이었을 때보다 여당이었을 때가 더 아프긴 하다. 하지만 여당은 여당의 힘이 있다.
흔히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국민들이 겨우 숨만 붙여줬다"고 표현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숨은 붙여줬으니 가쁘나마 열심히 숨을 쉬고, 숨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비판과 비난만으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반성하고 매일 사과하면서 스스로 인공 호흡기를 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아직 3년 더 여당이니 말이다.
[미디어펜=이석원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