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노사정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일년 여만에 노동시장 구조조정 대타협에 합의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3일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4인 대표자회의를 열어 핵심쟁점인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에 대해 합의했다.
하지만 핵심쟁점인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에 대해 노사간 충분한 합의를 거쳐 추진한다는 단서가 달려 미완의 개혁이란 우려가 높다. 그동안 정부가 목소리를 높였던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도 역시 정부와 노사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두루뭉술한 입장으로 정리돼 법제화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일단 큰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인다. 청년 고용절벽의 심각성과 국민들의 노동개혁에 대한 열망이 이번 합의에 크게 작용했다. “경제가 죽으면 노동자천국도 없다”는 유럽 좌파의 개혁 깃발에 대한 위기감도 남의 얘기는 아니었을 터이다.
▲ 금호타이어 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난달 17일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한 노조원이 대체인력이 투입돼 일부 가동 중인 공장을 떠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한국노총이 전날 밤 노사정 대표들이 합의한 대타협을 보고 하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금속노조 간부가 분신을 시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 열린 중집에서 회의 시작 후 1시간여쯤 지나 김만재 금속노조 위원장이 몸을 시너를 뿌리고 분신을 시도하려 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다른 금속노조 간부가 소화기를 뿌려 참변은 막았다. 이 자리에서 한국노총 금속, 화학, 공공연맹 등은 노사정 대타협을 결사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귀족노조에 대한 현주소를 읽게 하는 장면이다. 한국의 노동시장개혁은 귀족·강성노조의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전날 노사정위가 합의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변경요건 완화나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임금피크제도 결국 노조의 개혁 없이는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결국 한국의 노동시장 개혁은 귀족노조의 기득권 내려놓기와 막강한 파업권력의 수술 없이는 공염불임을 재삼 확인시켜 준 것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이른바 ‘5개 독소조항’으로 파업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파업 시 노조는 사업장 점거파업까지 가능하지만 사측은 대체근로조차 금지시키고 있다. 직장 폐쇄 요건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사측은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히 하는 반면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에는 제한을 두고 있다.
이를 악용 노조는 ‘파업 권력’을 넘어 ‘파업 횡포’를 일삼고 있다. 일방적으로 노조에 유리한 노조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황제 노조·귀족 노조를 상대로 개혁 운운 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도 웃을 일이다. 모든 협상이란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줘야 상생할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부가 아무리 나서서 노동개혁을 부르짖어도 아예 코빼기조차 안보이며 “할 테면 해보라”식이다. 어렵사리 대안이라도 내 놓을라치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나서는 정부위의 노조다.
절체절명의 노사정 협의가 진행되는 시점에도 5년간이나 국민혈세를 들여 살려 놓은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이 끝나자마자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나섰다. 평균 임금 9000만원이라는 대표적인 고임금 사업장인 현대자동차노조도 4년 연속 파업을 결의했다. 이들이 바로 한국의 노동시장을 좀비로 만드는 숙주다. 국가경제도 청년실업도 이들에겐 남의 이야기다. 협력사는 고사하고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도 이들의 안중에는 없다. 그야말로 파업이라는 방패를 무기 삼아 군림하며 착취하며 패악적인 ‘갑질’을 즐기는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노동개혁의 근본 출발점은 이제 명확해졌다. 파업권력에 취한 강성·귀족노조가 버티고 있는 한 일방해고 요건 완화나 임금피크제 도입도 쉽사리 넘을 수 있는 산이 아니다. 막강 권력을 휘두르는 노조와 지켜만 봐야 하는 사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해도 결과는 뻔하다.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마주 앉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선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무소불위의 파업권력부터 손봐야 한다. ‘5개 독소조항’의 수술 없이는 한국의 노동시장 개혁은 언제나 미완의 개혁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