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펜실베이니아주 대통령선거 유세 중인 13일(현지시간) 총격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78)은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쥐고 들어올려 파이팅을 외쳤다.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그의 얼굴은 귀에서 흐른 피로 물들었고, 그 뒤로 성조기가 나부꼈다. AP 소속의 20년차 베테랑 사진기자 에번 부치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미국은 물론 세계를 뒤흔들면서 11월 대선 구도를 바꿀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 등 그동안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유력인사들이 트럼프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 피 흘리는 트럼프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쇼핑몰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대부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매니지먼트 설립자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엑스를 통해 “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전 대통령의 피격사건에 대해 미국 연방수사국(FBI)는 “암살 시도”라고 밝혔다. 사실 정치인 암살에 대한 동정표가 작동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트럼프의 경우 숱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거에 없애는 효과도 보는 듯하다. 게다가 총성이 울리던 순간 마침 연설자료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린 덕에 치명상을 면한 행운이 회자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연설 중 총격을 받은 모습. 이 사진을 찍은 에번 부치 AP 기자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뒤 워싱턴에서 벌어진 항의시위 사진으로 2021년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2024.7.14./사진=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엑스 화면 캡처
총알이 머리를 명중하는 대신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해서 치명상을 피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위기의 순간에도 즉시 연단 아래로 몸을 숨기는 등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피격 하루만에 예정대로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혼자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등 건강한 모습을 과시했다.
이렇듯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피격사건 직후 귀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서 ‘세기의 사진’을 만들어냈다. 이는 고령으로 인지력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대선 맞상대인 조 바이든(81) 현 대통령과 뚜렷하게 비교되는 효과를 낳았다. 치명적인 순간을 철저하게 승리를 위해 연출한 트럼프의 기지 덕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 2400명의 대의원들을 통한 투표에서 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될 예정이다. 후보 수락연설은 18일에 이뤄진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전당대회 둘째 날 연설자로 내세우는 등 여유를 보이면서 통합 행보에도 나설 예정이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측은 선거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동안 트럼프를 공격할 때 사용했던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란 말도 사라질 전망이다.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이 네거티브 공세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데다, 암살에서 살아남은 경쟁자를 거칠게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에서 대선후보 교체론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동안 트럼프를 이겨본 경험 등이 고려돼 바이든의 몇 차례 말실수로 후보사퇴를 종용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의 공세를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를 촉발한 원인으로 간주하는 음모론이 커질 경우 바이든 진영의 셈법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보인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