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앞으로 과수원에서 일하는 로봇을 지금보다 더 자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농촌진흥청이 과수원에서 자율주행하며 제초, 운반, 방제 등 농작업을 사람 대신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농가 현장 실증을 거쳐 빠르게 보급, 확산할 수 있도록 상용화 촉진에 나섰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자율주행 기반 제초로봇./사진=농진청
이승돈 국립농업과학원장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자율주행 기반 과수원용 농업 로봇 핵심기술 확보에 성공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 농촌은 도시보다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력 손실을 대체할 기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농촌 인력의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농기계 사용 비중은 늘고 있으나 고령 농업인이 불규칙한 노면이나 경사지에서 농기계를 조작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또 필수 약제 살포에 따른 시간 소요와 약제 피해 위험성, 농자재 운반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등으로 많은 농업인이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농진청은 사과, 배, 복숭아 등 과수원에서 고정밀 위성항법장치(RTK-GNSS)와 레이저 센서(LiDAR), 영상장치 등을 사용해 설정된 경로를 주행하며 제초, 운반, 방제 등 농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개발했으며, 이들 로봇을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개선해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장애물 있으면 멈췄다가 작업... 농업 로봇 안전성 높여
레이저 센서를 활용해 제초로봇 1.5m 이내에 과수, 작업자 등 장애물이 있으면 10cm 내외에서 정지한 후 장애물이 치워지면 다시 제초를 시작하게 했다. 또한, 제초로봇 하부에 접촉식 정지 장치를 붙여 로봇이 물체와 닿았을 때 바로 정지할 수 있도록 했다.
제초로봇과 운반로봇은 공압 스프링과 같은 완충 장치를 적용해 지면에서 받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굴곡진 노면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자동 셔틀 기능을 탑재한 운반로봇./사진=농진청
농업인 대신 로봇이 작업장-집하장 오가며 일손 보조
산업체와 함께 방제로봇의 구동 방식을 엔진에서 전기로 개선했다. 방제 중 약제가 떨어지면 보충하는 위치까지 로봇 스스로 이동해 약제를 보충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한 것.
운반로봇은 평소에는 작업자를 따라다니며 수확물이나 농기구 이송 등 농작업을 수행하다가 작업자가 필요에 따라 현재 위치에서 집하장 등 지정한 위치로 로봇을 보낼 수 있도록 셔틀 기능을 탑재했다. 수확 중인 작업자가 셔틀 기능을 켜면 사전에 지정한 위치로 로봇이 움직여 수확물 이송 등 업무를 수행한 후 다시 작업자가 있는 곳까지 돌아오게 된다. 이는 작업자가 작업을 멈추고 집하장까지 오가는 시간을 줄여준다.
스스로 약제를 보충하는 방제로봇./사진=농진청
사람 손 거치지 않고 로봇끼리 알아서 약제까지 보충
제초로봇은 물건을 싣고 이동하는 운반로봇의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상부에 공간을 확보했다. 운반로봇의 경우, 로봇 간 연계 작업에 활용하기 위해 방제로봇에 필요한 약액을 경유지까지 옮겨 주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 기술은 방제로봇의 약제가 곧 떨어진다는 알림이 오면 약액을 싣고 출발해 방제로봇이 지나가는 길에 약제를 보충할 수 있도록 약액을 옮겨 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추가하면 방제로봇이 약제를 보충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과 이동에 드는 배터리 사용량을 줄여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농진청은 농업 로봇을 상용화하고, 농가 생산성 향상이나 안전사고 최소화 등 농작업 편이성을 검증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2027년까지 총 5년에 걸쳐 농업용 로봇 현장 실증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농촌 주산단지 거점을 기반으로 아주심기, 제초, 방제, 수확 등 재배 전 과정에 다수‧다종의 로봇이 투입된다. 현재 디지털 자동화, 로봇 농작업, 병해충 예찰과 수분 스트레스 관리 등과 관련된 로봇이 함양(양파), 당진(벼), 거창(사과), 옥천(복숭아), 연천(콩), 김제(밀) 등에 투입돼 효과를 검증 중이다. 여기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과수뿐만 아니라 식량과 채소 분야에서도 무인 농작업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농진청은 내년부터 신기술 시범 보급 사업을 추진해 농업 로봇 기술을 보완·개선할 계획이다. 제초로봇은 7개소, 운반로봇은 5개소에 적용된다. 전동화된 방제로봇은 2025년 현장 실증연구, 2026년 3개소에 적용할 계획이다. 핵심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각 로봇에 관한 산업재산권은 이미 확보해 둔 상태다.
이와 함께 농업 로봇이 다른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도록 기관 간 협력도 추진한다. 우선 지난 5월 한국수자원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는 정수장 주변의 넓은 녹지를 관리하는 데 제초로봇을 투입,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이승돈 국립농업과학원장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인공위성, 빅데이터, 로봇 기술 등 다양한 첨단기술을 융합해 농업에 활용하고 있다”면서 “아직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에 비해 미흡한 부분이 있다. 국내 실정에 맞는 기술개발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인구감소로 일할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식량 안보를 지키려면 로봇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며 “앞으로 농업‧농촌에 필요한 로봇을 개발하고 농가에 빠르게 보급, 확산해 농가 소득 증대, 편이성 제공 등 농업인 삶의 질 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번에 개발된 로봇들이 힘든 일을 꺼려하는 젊은 세대의 농업인을 농촌에 유인하는 요인도 될 수 있는 만큼, 농촌인구 소멸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