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노 관장 측이 SK그룹에 전달했다고 주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과세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됐다.
과세 당국이 과세 대상으로 보고 본격적으로 움직일 경우 6공화국의 비자금의 실체도 드러날 전망이다. 또 조사 결과에 따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재판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가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17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지난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과세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영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강 후보자에게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의했고, 이에 대해 “시효가 남아있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김 의원은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비자금 메모를 토대로 이 자금이 징세 대상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강 후보자는 “시효나 관련 법령을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강 후보자는 노태우 비자금 관련해 조사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노 관장과 최 회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주목받게 됐다. 노 관장 측은 모친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근거로 1990년대 초 SK(구 선경) 측에 300억 원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는 ‘선경’ 300억 원 외에도 가족 등에게 각각 배정된 604억 원이 더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 돈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보고 SK그룹을 성장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이에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0억 원을 재산분할하라고 판결했다.
강 후보자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904억 원의 자금에 대해 시효·법령 등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6공화국의 불법 통치자금과 관련된 추가 과세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은 약 4600억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중 기업들에게 뇌물로 받은 2682억 원은 모두 추징됐지만 나머지 금액은 확인되지 않아 환수되지 않았다.
비자금으로 확인돼도 국고 환수는 공소시효가 지나는 등 어렵지만 증여세 과세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모에 기재된 자금이 불법 비자금으로 확인되면 증여세 등 징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과제척기간’이 남았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다.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증여세를 포탈한 경우 해당 재산의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과세할 수 있다. 과세 당국이 노 관장 측이 주장한 메모를 인지한 시점인 2심 판결일(2024년 5월 30일)을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로 보면 징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당국이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904억 원에 대해 과세 절차에 착수하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 또 비자금이 실제로 SK그룹 측으로 흘러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최 회장 측에서는 6공화국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는데 조사 결과에 따라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