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자동차 업계 내 화두는 '전동화'였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수요와 성장이 둔화되며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최근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까지 생겨났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의무화되면서 전동화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 과제로 여겨지지만, 정체기를 맞은 시장은 각 기업의 극복 과제로 꼽힌다. 미디어펜은 전동화 전환 현주소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재훈 기자]최근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벤츠의 전기차 화재가 사회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전동화 전환 과도기에 접어든 시기에 발생한 이번 사고는 전기차에 대한 공포증과 함께 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는 중국의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져 배터리 제조사 공개에 대한 이슈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1일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인천 서구 청라의 아파트 단지. 화재 발생 이후에도 주차장 사용이 어려워 주민들은 도로 갓길에 주차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박재훈 기자
이번 화재에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긴급회의를 여는 등 배터리 제조사 공개 의무화에 대한 물살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현대차를 필두로 BMW 등 수입차들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들불처럼 번진 배터리 제조사 공개…벤츠, 파라시스 탑재 트림 8종
이번 화재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역시나 중국산 배터리 탑재다. 정부는 지난 12일 범부처 긴급회의를 열고 배터리 제조사 의무화를 논의했다. 이에 가장 먼저 배터리 제조사를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한 브랜드는 현대차였다.
현대차는 지난 9일 제네시스를 포함해 총 13종의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기에 나섰다. 뒤이어 기아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현대차와 제네시스의 전기차 모델에는 코나 일렉트릭만 중국의 CATL의 배터리가 탑재됐으며 이외의 모델들은 모두 국내 배터리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배터리였다.
기아는 전기차 7종 중 레이EV와 니로EV 일부 모델에만 중국 CATL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내 배터리 제조사 공개 페이지./사진=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홈페이지
수입차 업계에선 배터리 제조사는 대외비로 삼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었으나 BMW코리아가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제조사를 공개했다. 이어 현재까지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 브랜드들은 제조사를 공개하거나 공개를 검토하는 등 소비자 불만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현재까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브랜드는 △BMW △벤츠 △볼보 △폴스타 △스텔란티스 △아우디 △폭스바겐 등이다. 토요타코리아는 14일 오후 중으로 유일하게 판매하고 있는 전기차 모델 렉서스RX의 배터리 제조사를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총 14종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는데 모두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폴스타도 폴스타4 출시 간담회를 통해 최근 형성되고 있는 제조사 공개 기조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함종성 폴스타코리아 대표는 "폴스타에 들어가는 배터리제조사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없고 폴스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투명성"이라고 언급했다.
더 뉴 EQE 350 4MATIC SUV./사진=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가장 먼저 제조사를 공개했어야 할 벤츠는 13일에 모델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벤츠가 공개한 8종의 차량, 16개의 트림에서 파라시스가 탑재된 트림은 총 8개 종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가장 먼저 제조사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도 문제가 된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모델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로부터 벤츠에 대한 신뢰도가 급감하고 있다. 최고가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10위권 내외의 생소한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최상위 전기 세단모델인 EQS에도 화재가 발생한 EQE와 동일하게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됐다.
현재까지 수입차 브랜드 전기차 중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브랜드는 벤츠가 유일하다. 현재까지 공개된 제조사를 공개한 브랜드들 중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비율도 벤츠가 가장 높다. 벤츠의 전기차 모델 중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비율은 80%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1~2대 주주가 중국 기업인 것이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벤츠의 1대 주주는 베이징차이고, 2대 주주는 TPIL로 독일의 심장으로 불리던 차에 중국산 심장이 대체된 것은 고객에겐 불만일 수 있다.
벤츠는 제조사를 공개하면서 "조사에 협력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근본 원인을 파악해 그에 따른 적절한 후속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지는 전기차 화재 우려…배터리사들의 입장은?
완성차업계만큼이나 이번 화재 발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업계는 배터리 업계다. 통상적으로 배터리를 납품하는 배터리 업체들은 제품을 완성차 업계에 넘긴 이후에 책임소재는 완성차 제조사 측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배터리사 자체적으로도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방안이 있다는 입장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특정 국가의 배터리라고 해서 화재의 위험성이 더 있거나 한 것은 아닐 뿐더러 현재 화재의 발생 원인이 배터리라고 규명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배터리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배터리 회사 측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더욱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배터리2024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 전시돼 있는 셀투팩 공법 목업./사진=미디어펜 박재훈 기자
배터리사가 배터리에 납품을 할 경우 마무리 과정인 패킹은 완성차 제조사 측에서 진행한다. 하지만 내부에 있는 파우치나 셀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적으로 작업을 진행한 배터리사에서도 책임소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소비자들의 경우 사전인증제가 아니다보니 어느 회사의 배터리를 사용했는지 보다 완성된 자동차를 보고 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에 불만을 완성차 제조사에 할 수 밖에 없다"며 "불량률과 결함이 생겼을 경우에 문제제기는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 사이에 조율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책임을 완성차 측에서 도맡아서 비난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고, 배터리 회사 측에서도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일례로 불량률이나 화재 발생건수를 공개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불량률 공개는 향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다. 최총적으로 배터리 패킹과 더불어 안정성을 위해서는 셀 단위의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현재 인증 범위를 배터리 팩 위주로 하고 있어 셀 단위의 사전 인증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제기된다.
사전인증제로 제도가 개선될 경우 배터리의 셀 단위에서도 어느 회사의 제품이고 어느 지역에서 제조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3일 국내 모든 전기차 제조사에 배터리 생산업체 및 배터리 제원을 자발적으로 공개할 것을 권고했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가 영업비밀처럼 취급되던 것이 소비자와 판매처 간 정보 비대칭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화재도 알려진 배터리 제조사가 아닌 파라시스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과 같이 소비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의 소방 시설 긴급 점검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