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야, 우리 얘는 2022년생인데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금융당국 때문에 은행들 대출 조건이 계속 바뀌는데, 특례대출도 바뀔지 모르니까 서둘러. 매물은 잘 살펴봐."
# 여의도 직장인이 붐비는 평일 밤 8시.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나오는 30대 직장인 A씨의 어깨가 무겁다. 부인과 슬하 자녀 1명을 둔 A씨는 고금리 시기를 전세로 버텨왔다. 전세 만기 도래에 맞춰 내 집 마련을 구상했던 A씨는 집값동향과 금리만 저울질하다 내 집 마련이 늦어졌다. 늑장부리다 최근 패닉바잉 열풍으로 집값이 예상보다 크게 치솟은 까닭. 그는 정책모기지 상품인 '신생아 특례대출'을 고려 중이지만, 자녀 나이가 대출신청조건(2023년 1월생부터)에 근소하게 벗어나면서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금융당국이 폭증하는 가계대출에 대응해 은행권 대출을 전방위적으로 조이면서 최근 은행들은 무주택자와 기주택처분조건부 1주택자 등 실수요자에게만 주담대를 내어주고 있다. 하지만 서민층은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에 따른 대출한도 제한과 높은 대출금리 등을 이유로 대출신청을 망설이는 모습이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금융당국이 폭증하는 가계대출에 대응해 은행권 대출을 전방위적으로 조이면서 최근 은행들은 무주택자와 기주택처분조건부 1주택자 등 실수요자에게만 주담대를 내어주고 있다. 하지만 서민층은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에 따른 대출한도 제한과 높은 대출금리 등을 이유로 대출신청을 망설이는 모습이다.
이와 반대로 대표 정책 모기지 상품인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은 DSR 대신 상대적으로 느슨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적용해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최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디딤돌대출 등 정책모기지를 축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시사해, 대출정책이 바뀌기 전에 실수요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디딤돌대출과 신생아특례대출, 버팀목전세자금대출 등 정책모기지는 전방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대출은 '신생아특례대출'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29일부터 7월 30일까지 반년 동안 신청된 액수는 7조 2252억원(신청건수 2만 8541건)에 달한다.
유형별로는 주택 구입자금 대출 신청액이 5조 4319억원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 중 대환대출 신청액은 2조 4538억원에 그쳤다. 대부분 주택구입목적인 셈이다.
해당 상품은 대출접수일 기준 2년 내 출산(2023년 1월1일 이후 출생아부터 적용, 임신 중인 태아 미포함)한 무주택 세대주 및 1주택 세대주(대환대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부부합산 연소득이 1억 3000만원을 넘기면 안 되며, 순자산가액은 4억 69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주거 전용면적이 85㎡ 이하이면서 담보평가액이 9억원 이하인 주택이라면 신청할 수 있다.
대출금리는 특례금리가 적용되는 기본 5년간 연 1.60~3.30%에 불과하다. 가령 최고소득구간인 1억원~1억 3000만원인 부부가 30년간 대출을 받더라도 금리는 최초 5년간 연 3.30%에 불과하다. 여기에 청약저축통장에 가입된 대출자라면 연 0.3~0.5%p의 우대금리 혜택도 누릴 수 있어 2% 후반대의 금리까지 노릴 수 있다. 보금자리론 금리가 연 2.95~4.25%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매력적이다.
대출한도는 최대 5억원 이내로 담보인정비율(LTV) 70%(생애최초 LTV 80%, DTI 60% 이내)까지 적용할 수 있다. 대출기간은 10~30년 중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허들'로 작용하는 각종 조건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중에서도 핵심인 신생아에 대한 국민 기준이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만 2년'으로 규정하다보니 2년이 지난 직후부터 대출대상에서 제외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사실상 '감지덕지'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올해 1~7월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모기지로 활용된 자금은 25조 5000억원에 육박해 전체 주담대의 80%에 달했다. 사실상 가계부채를 끌어올리는 주범인 셈이다.
이 와중에 정부 내에서도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어 정책모기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실제 박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를 시중금리 변동에 맞춰 조정하되 대상을 축소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책모기지를 공급하되, 금리로 수급을 조절하겠다는 셈이다.
반면 진현환 국토교통부 1차관은 지난 6일 한 TV 프로그램에서 "정책 모기지 부분도 추가로 검토할 게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발언했다.
금융당국도 최근 가계부채 관리를 엄중히 하겠다는 시그널을 내놓으면서도, 정책모기지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지난 11일 '8월 금융권 가계대출 동향' 자료에서 "확고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 하에서 주택시장 과열이 지속되거나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할 경우, 현재 추가적으로 검토 중인 관리수단을 적기에, 그리고 과감하게 시행하겠다"며 "은행 등 금융회사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대출관리에 만전을 기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반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정책모기지·전세대출 제한에 '신중론'을 취했다. 정책모기지는 무주택자와 저소득층 등에 대한 정책적 목적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지난 2021년 대출 중단 사태와 은행별 총량 규제 등까지는 가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생아대출은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보니 정부가 한시적으로 마련한 대책인데, 까다로운 조건에도 수요가 몰리고 있다"며 "내 집을 최대한 저렴하게 마련해야 하는 실수요자와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 당국 간 바라보는 시각차가 뚜렷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로선 정책모기지의 기준완화를 기대하는 건 다소 무리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