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서울의 봄'이 제45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의 영예를 안은 지 4일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국민들의 불안과 혼란이 극도에 이르며 격랑에 휩싸인 4일 새벽, '2024년판 서울의 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밤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1979년 10월 이후 45년 만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초유의 사태다.
이날 윤 대통령은 심야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대한민국 국가재정을 농락했다"며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
계엄령은 쿠데타와 내전, 반란, 전쟁, 폭동, 국가적 재난 등 비상상태로 인해 국가의 일상적인 치안과 사법권 유지가 불가하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과 같은 국가 원수 또는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 동의를 받고 군을 동원해 치안 및 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선포하되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하며,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그 해제를 요구 시 이를 해제해야 한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시민들이 국회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 및 군 병력과 대치하며 "계엄 해제" 등의 구호를 외쳤다. 치열한 몸싸움도 벌어졌다. '서울의 봄'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일념에서였다.
이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귀국의 뜻을 밝힌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도 언급한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다. 지난달 29일 열린 제4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서울의 봄'이 최우수작품상과 함께 남우주연상(황정민)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당직자와 시민들이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을 하려는 계엄군과 충돌하는 모습(오른쪽). /사진=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김상문 기자
지난해 11월 22일 개봉 당시,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만큼 역사적 사실의 이해와 의식을 높였다는 호평이 이어지는 한편 일부 반발을 낳기도 했다. '좌빨 교육'이라는 속된 말까지 등장했지만, 오락성과 대중적 공감을 인정받은 '서울의 봄'은 누적관객수 1311만명을 동원하며 팬데믹 이후 프랜차이즈가 아닌 단일 작품 중 가장 강렬한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서울의 봄'의 학습 효과는 컸다. 정치계와 시민들은 헌법적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비상계엄의 문제점을 꼬집고, 적극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총과 헬멧,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한 군인들에게 국회 보좌진이 "실탄이 들었냐", "소속이 어딘가"라고 캐묻는가 하면, 시민들이 국회에 도착한 군 버스 앞을 막아서며 "비상계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의 손에 들린 수많은 휴대폰 카메라가 현장의 급박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기도 했다.
비상계엄해제요구안이 가결된 뒤 국회 본청 본회의장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모습. /사진=김상문 기자
이처럼 국민과 정치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하자 윤 대통령은 4일 새벽 4시 27분쯤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안을 의결한 뒤,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해제를 선포했다. 반국가 세력 척결을 이유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약 6시간 ,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지 3시간 반 만이었다.
이날 모두가 되새길 수 있었다. 서울의 봄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21세기 서울의 밤에서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많은 이들의 행동이 이어졌다. 아픈 역사이지만 이를 통해 배웠고, 부당한 명분에 대응하려 힘을 모았다. 간밤에 벌어진 일로 말미암아, 역사적 트라우마와 상처는 우리들 스스로 치유해나가야 함을 통감했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