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기자] 수사기관의 감청(통신제한조치) 영장을 전면 거부했던 카카오가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협조하기로 하면서 이른바 '사이버 망명' 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장은 사용자 급감과 같은 큰 영향이 없을 테지만 시간을 두고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카오는 수사대상 외 익명처리 기능으로 종전과 달리 이용자 사생활 침해 정도를 최소화했다고 강조했지만 이마저도 실효성 논란이 나오는 상황이다.
'탈(脫) 카카오톡?'…당장은 영향 미미할 듯
지난해 검찰의 카카오톡 실시간 검열 논란이 불거진 이후 일각에서는 대화 내용의 해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산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이용자들이 무더기로 갈아타는 '사이버 망명' 현상이 확산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검찰이 사이버 검열 강화 계획을 발표한 직후 일주일 사이에 텔레그램의 일간 국내 이용자는 2만명에서 25만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줄곧 100위권을 맴돌았던 이전과 달리 국내 애플 앱스토어 무료 카테고리 다운로드 순위에서 카카오톡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카카오톡 이용자의 사용량은 변동이 없었고 오히려 '자연적인 증가' 상태를 유지했다.
텔레그램의 인기도 실제 사용량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호기심 많은 이용자의 단순 다운로드가 늘었을 뿐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사이버 망명이 수사당국에 대한 불신과 사이버 검열에 대한 시민의 우려가 반영된 의미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다소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 카카오 ‘사이버 망명’ 사태…재연 우려된다. /사진=카카오 로고 |
업계에서는 이번에 감청영장에 다시 협조하기로 한 카카오가 비판은 받을지언정 실질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데다 이미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메신저라는 요인도 작용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7일 "1년 만에 말 바꾸기를 한 카카오의 태도는 비판을 면치 못할 테지만 사이버 망명과 같은 현상이 다시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메시지의 서버 저장기간 단축, 비밀채팅 모드 도입, 투명성 보고서 발간 등 사생활 보호를 위한 일련의 노력이 이용자에게 잘 다가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익명처리 실효성 논란…대안은 '비밀채팅'
카카오가 감청영장 협조 방침을 밝히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단체대화방에서 수사대상 외 참여자를 익명 처리해 대화 내용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추후 익명 처리한 참여자가 범죄 관련성이 있어 자료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제시하면 당사자의 통신자료를 넘겨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사회단체 공동기구인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카카오의 익명처리 대책은 '조삼모사'일 뿐"이라며 "이용자를 보호하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카카오톡이 감청 협조를 재개한다는 것은 모든 이용자의 정보인권에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업계 한 관계자도 "익명처리는 사실상 형식적인 문제일 뿐 영장에 적시한 대로 다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용자 사생활을 지키려고 상당히 노력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크게 효과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이용자가 카카오톡 내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기능은 '비밀채팅'이다.
비밀채팅(개인·그룹) 기능을 이용하면 대화 내용 전체가 암호화되며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암호 키(key)가 서버가 아닌 사용자 스마트폰에 저장된다. 수사기관이 개별 사용자의 스마트폰을 압수하지 않는 한 대화내용을 검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비밀채팅방에서는 대화 참여자가 모두 메시지를 읽으면 이 메시지가 서버에서 자동으로 삭제돼 아예 남지 않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비밀채팅 기능은 모바일에서만 가능하고 PC에서는 쓸 수 없다.
카카오 관계자는 "PC 버전에는 기능을 적용할 계획이 없다"며 "공용 PC로 접속할 수 있는 등 비밀채팅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