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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상법 개정 우려…민주당 '속도 조절' 속내는?

2024-12-19 15:57 | 박준모 기자 | jmpark@mediapen.com
[미디어펜=박준모·진현우 기자]재계가 상법 개정에 대해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법 개정 정책 토론회에서도 여러 부작용에 대해 알리면서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에 대한 반대 의견을 확실히 전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상 속도 조절에 나선 상태다. 재계 내에서는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절충안이 마련되길 기대하고 있다.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 정책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재계, 상법 개정 정책 토론회서 부작용·우려 언급

19일 더불어민주당이 개최한 상법 개정 정책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재계 측과 찬성하는 투자자 측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직접 사회자를 맡아 토론의 진행을 이끌었다. 

재계 측에서는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정연중 심팩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우려를 전달하며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먼저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사법 리스크 증가로 인한 경영 활동 위축, 기업가 정신의 후퇴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며 “상법은 100만 개 이상 되는 비상장 기업까지 적용이 된다.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중견기업들이 더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장 중소기업들은 시총이 작아 100억~200억 원 정도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중소·중견기업일수록 연구개발에 투자할 돈을 경영권 방어에 쓰게 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 부회장은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비상장 기업들의 상장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위축되고, 결국은 기업 경영을 법원에 맡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연중 심팩 CFO도 중견기업의 고충에 대해 설명했다. 심팩은 프레스 기기를 생산하는 연 매출 6000억 원대의 중견기업이다. 

정 CFO는 “중견기업들은 시총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데 심팩의 경우 현재 2500억 원 수준이며 PBR은 0.34배에 불과하다”며 “현재 PBR을 적용할 경우 75억 원, 현재 환율로 약 500만 달러만 있으면 경영권을 충분히 흔들 수 있다. PBR이 낮은 중견기업들이 행동주의펀드들의 가장 쉬운 타깃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한다면 주주의 이해와 회사의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 이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도 2019년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차 그룹의 경영권을 노린 사례를 들어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런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김 부사장은 “당시 당기순이익 1조6000억 원에서 배당비율 53%를 책정했는데 엘리엇은 주당 2만2000원, 전체 주식수로 계산하면 5조8000억 원을 배당으로 요구했다”며 “장기적인 미래 비전보다 오직 배당 확대를 위한 단기적 이익 실현을 추구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은 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상법 개정만으로는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으로 안 돌아올 것 같다”며 “결국 펀더멘탈을 키누는 방향으로 같이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SK하이닉스는 주가가 지난해보다 올랐고,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보다 하락했다” “똑같은 이사회 구성 방침과 운영 방침 경영 철학을 갖고 있지만 차이가 난 이유는 하이닉스는 HBM이라는 결과물이 있었고, 이노베이션은 업황이 세계적으로 좋지 않았다. 결국 주가를 좌우하고 주식시장 전체가 좋아지는 것은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재계는 이번 토론회 외에도 꾸준히 상법 개정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이에 민주당이 상법 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 재계의 우려를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 정책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민주당,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을 듯…연내 처리 가능성 ↓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강조했던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 가능성은 멀어지는 분위기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상법 개정안을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이 대표의 ‘중도 확장’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 가능성은 12.3 비상계엄 사태 및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와 맞물려 점차 옅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한국거래소를 찾은 이 대표는 “주주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지배경영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정기국회 내에 상법 개정을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날 민주당 상법 개정 정책 토론회 좌장으로 나선 이 대표는 상법 개정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대표는 “기업들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는 기회”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기업 활동이 매우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주주들이) 기업을 믿고 자본 시장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3일 비상계엄이 터진 이후 사실상 국회 일정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에 집중되면서 관련 상법 개정안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재계가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 신중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는 지난 16일 전문가들과 함께 상법 개정과 관련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부터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에서는 뒤늦게 상법 개정 관련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이 처리되기도 했다.

앞서 황정아 민주당 대변인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 계획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직 구체적이지 않고 더 논의해 봐야 한다”며 “아직 시한을 정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사실상 민주당 내부에서 상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속도 조절이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될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상법 개정은 ‘집토끼’를 지키는 전략인데 집토끼를 위해 논쟁을 일으키면서 상법 개정을 추진할 상황이 아니라고 볼 것”이라고 봤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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