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편향, 그에 따른 국정화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정은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론지었고 교육부는 이를 12일 발표했다. 애초에 다양성 및 자율의 존중을 기치로 내건 검정교과서는 출판사 종류만 다를 뿐 결국 반대한민국, 헌법가치에 반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6년 만에 환원되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이를 막기 위한 차선책’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교과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비뚤어지게 되어 있다. 국사학계가 자신들의 전공영역이라며 장막을 치고 역사기술을 독점하는 동안 우리 역사교과서는 진실과 동떨어진 질 낮은 국사교과서가 되고 말았다. 자유경제원은 전문가들과 함께 역사학자들만 모르는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12일 ‘국사학자들만 모르는 우리 근현대사의 진실, 국사교과서 실패’ 세미나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발표자로 참석한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국정 교과서 논쟁으로 본 학술 역사와 대중 역사
‘1777년의 가혹한 겨울이 시작되었을 때 영국군은 따뜻하고 편안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20마일 정도 북서쪽에 있는 도시, 밸리 포지에서는 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춥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밸리 포지에서의 겨울은 독립전쟁의 최저점이었다.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났다. 남은 병사들에게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일부로서 고통을 감내하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미국 초등학교에서 교재로 채택하고 있는, 버지니아 대학의 허쉬 교수가 편찬한 역사책에 등장하는 밸리 포지(Valley Forge)부분이다. 미국인들은 열 살 무렵 이 내용을 배운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잔인한 자연’과 그것을 이겨낸 선조들의 ‘고통의 감내’를 감동적으로 체험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일단 포지 계곡에서 보낸 겨울은 평상시보다 덜 추웠다. 미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겨울이기는커녕 예년 평균을 웃돌았고 절반 이상의 날이 아침에도 얼음이 얼지 않았다. 당연히 눈보라라고 부를 만한 폭설도 없었다. 그렇다면 병사들은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을까. 전혀 아니다. 식량과 의복 부족 그리고 월급 미지급으로 그들은 내내 불만 상태였고 약탈과 탈영과 폭동이 잇달았다. 오히려 잔인한 겨울을 보내야 했던 것은 2년 전 영국군이었다. 그들은 미국 동해안 일대를 강타한 400년만의 강추위를 견디며 꿋꿋하게 전투를 치렀다.
학술 역사와 대중 역사
대체 어쩌자고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태연하게 가르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학술 역사와 대중 역사는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는 대중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 대중 역사는 집단의 역사이다. 집단이 역사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라인홀드 니버는 개인은 가끔 이타적이지만 집단에서는 이타심을 발견하기 어렵고 문제가 국제 차원이 되면 집단은 오로지 순정 이기파가 된다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자국 이익 중심의 서술이 역사 교과서의 틀이 되는 까닭이다. 대중 역사를 편찬하는 이들은 자신의 업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설사 조지 워싱턴이 그리 현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데서 어떤 정치적 효용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회의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며 무절제한 비판을 근절해야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의 중심에 들어가서 민족적 사고의 양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믿음이다. 그런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민족적 정신을 분산시키는 해독적인 행위다.”
▲ 이미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을 하와이 갱단 두목으로 ‘조져’ 대한민국의 첫 발에 재를 뿌린 나라다. 여기서 더 가면 이 나라는 정말이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된다. 국정 교과서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것이 대중의 역사인지 학술 역사인지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조차 없기 때문이다. 논쟁할 거리가 아니다./사진=미래엔 국사교과서 현대사 첫 페이지. |
다소 파시스트적인 발상이 엿보이기는 하나 의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역사 교과서는 조지 워싱턴은 벚나무를 잘라내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이 이야기는 순전히 서적상인 메이슨 윔즈의 창작이다) 남북전쟁 때 백인과 흑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으며(6·25 전쟁 이전까지 백인과 흑인은 함께 싸운 일은 없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는 ‘개입’했으며(1972년 미 국방부 기밀문서 공개로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전쟁을 벌인 것으로 들통이 났다) 대다수의 미국 국민들이 이 전쟁을 강력하게 지지했다고(그럼 그 수많은 반전 시위는 다 외국인들이 벌였다는 말인가) 적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기적으로 조작된 역사의 압권은 링컨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링컨의 주옥같은 어록들은 생전에 링컨의 입 밖으로 나온 적이 없는 것들이다. “나는 성경이 필요 없는 양 잘난 척 하는 사람치고 훌륭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저는 그때 거기에서(게티즈버그를 말함) 저 자신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등등 하나같이 멋지지만 하나같이 추종자들이 지어낸 말들이다. 그는 기독교 신자였던 적이 없고 교단에 소속된 적도 없었으며 예배당에 발을 들여 놓은 일은 손꼽을 정도였다. 진실과 관련하여 그의 행동을 보자면 그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쪽에 가깝다. 허무한가? 대중 역사라는 건 이렇게 만들어진다. 링컨이 노예해방에 별 관심이 없었다거나 84세의 대법원장 로저 토니가 ‘대통령이 아니라 오직 의회만이 인신보호영장제도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의견을 내자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여 협박했다는 독재자다운 사건은 널리 알려진 것이라 생략한다.
우리 역사책은 어떨까. 별반 다르지 않다.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가 ‘김구와 덕률풍’ 이야기다. 민비 시해 며칠 후 한 청년이 인천에서 칼 찬 일본군 장교를 작살내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고종이 결재한 서류를 훑어보던 누군가가 살해 이유에, ‘분하여,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재가 요청을 올렸고 고종은 telephone의 첫 우리말 이름인 덕률풍으로 사형집행을 중지시켰고 그 날은 인천에 전화가 놓인 지 사흘 째 되던 날이었다 어쩌구저쩌구….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 개통일은 1898년 1월로 이 아름답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 고종이 친히 전화기를 들었다는 1896년에 이 땅에는 전화가 없었다. 당연히 고종은 김구의 사형집행을 정지시킨 일이 없다. 그리고 의분에 차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했다? 법무 대신 한규설이 고종에게 올린 상주 내용을 보면 희생자인 스치다는 일본 장교가 아닌 상인이었고 김창수(김구의 본명)의 죄명은 살인 강도였다.
▲ 대중의 역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역사는 밝고 명랑하며 올곧고 의로우며 정의롭고 힘이 넘쳐야 한다. 먼 역사가 아닌 가까운 기억까지 조작해서는 안 된다./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
김구는 조선 국법상 명백한 유죄였고 그는 죗값을 치르는 대신 인신 매매범 등 잡범들과 탈옥을 감행한다. 나라에 경제적인 피해도 입혔다. 당시 일본은 스치다 사건의 배상금으로 14만6000원(지금 돈으로 146억 원 정도)을 요구했고 이는 가뜩이나 심란한 국고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읽으시기에 불편 하실 거다. 그러나 김구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쯤에서 그만하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만들 것인가
실은 김구와 덕률풍 이야기는 나 역시도 가끔 글에 인용하는 미담이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대중의 역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역사는 밝고 명랑하며 올곧고 의로우며 정의롭고 힘이 넘쳐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정감사에서 이인호 KBS 이사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김구가 독립투사이기는 하지만 건국에는 공이 없다는 말에 이른바 진보에서 발끈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대중 역사라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한다. 먼 역사가 아닌 가까운 기억까지 조작해서는 안 된다. 김구에 대한 진보의 옹호 발언이 패착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이대로 가면 물론 그렇게 될 것이고 이전투구의 볼썽사나운 꼴이 펼쳐질 것이다. 그 상황이 개인적으로는 꺼려진다. 가뜩이나 ‘어른’이 없는 나라에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어른인 김구까지 정쟁의 희생물로 민낯을 드러내면 대체 우리 아이들은 누구를 존경하고 애국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배울 것이며 휴전선을 지키는 이유는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이미 건국 대통령을 하와이 갱단 두목으로 ‘조져’ 대한민국의 첫 발에 재를 뿌린 나라다. 그 재를 걷어내기는커녕 또 다른 인물을 시궁창에 처박자고? 그러면 안 된다. 여기서 더 가면 이 나라는 정말이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된다.
국정 교과서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것이 대중의 역사인지 학술 역사인지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조차 없기 때문이다. 논쟁할 거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