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은 ‘해외칼럼’ 게시판을 통해 자유주의 시장경제 원리와 관련한 양질의 글을 요약․번역, 제공하고 있다. 본 글은 존 C. 굿맨의 기사(“Capitalism, Socialism, and the Pope”, September 27, 2015, 출처: www.independent.org/newsroom/article.asp?id=8534)를 요약 번역한 내용이다. 이 글은 경쟁과 적자생존에 관한 교황의 견해에 대해 실망스러움을 밝히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건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이며, 빌 게이츠와 같은 기업가와 다르게 사회주의 통치자는 ‘거래가 아닌 절도’를 통해 소득을 착취한다는 설명이다. 역자는 이희망 자유경제원 인턴이다. [편집자주] |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쿠바와 미국 방문, 그리고 이 두 나라를 화해시키려는 이전의 노력들은 세 가지 사실에 집중하게 만든다. 첫째, 쿠바는 개인이 국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는 두 공산주의 나라들 중 하나이다. 둘째,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지만(홍콩과 싱가폴이 그 명예를 차지했고 미국은 16위를 차지) 미국의 건국이념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선언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적 근원이다. 셋째, 공산주의가 더 나은 제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0세기를 바라보는 방법 중 하나는 20세기를 경제 시스템의 긴 논쟁의 시대로 보는 것이다.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하고 경제 번영의 길로 인도한 최고의 길은 무엇이었나? 자본주의였나? 아니면 국가주의의 변종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아니면 복지 국가였나?
20세기 초반에는 적어도 왜 논쟁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성인들은 개화된 정부가 시장을 능가할 수 있다고 믿었고, 모든 국가가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례 없는 대학살이었다. 지난 세기 동안 약 1억 7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정부에 의해 학살되었다. 이는 전쟁에 희생된 사람의 수의 6배를 넘는 수치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상자들 대부분 신실한 신자(명목상으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기여한 사람들)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그 세기가 끝날 때쯤 논쟁도 끝났다. 사람들은 자유 시장 때문이 아닌, 나쁜 정부로 인해 가난으로 끝없이 신음해야 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여러 나라를 민영화, 규제 완화, 국제무역의 자유화와 더 자유로운 시장에 눈 돌리게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 1970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 빈곤율 추이./자료=자유경제원 해외칼럼 게시판 |
이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최악의 빈곤층(1$ 미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80%가 최근 40년 동안 근절됐다. 전례 없는 이야기다.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회장 아서 브룩스(Arthur Brooks)는 묻는다: 과연 무엇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나? UN? 미국의 원조? IMF? 중앙계획? 아니다. 해답은 국제화, 자유 무역, 국제 기업가 정신의 번창이다. 즉, 경제번영의 원인은 미국의 제도, 자유기업 시스템이었다.
당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마리아인 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자유기업 시스템을 지지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전에 저술했듯, 이 이슈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견해는 실망스러우며. 이는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의 의견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Evangelii Gaudium(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모든 것들은 경쟁과 적자생존 법칙에 의해 좌우되고, 힘이 있는 자는 힘이 없는 자를 먹고 산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소외 받는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 당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 시장에 의해 촉진된 경제성장이 반드시 정의와 포괄성(inclusiveness)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는 낙수효과론을 아직도 변호한다. 사실 검증된 적이 한번도 없는 이 의견은 경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선량함과 지배적 경제 시스템의 신성한 원리에서 저속하고 어수룩한 믿음을 나타낸다.
200년 이나 앞서, 아담 스미스는 대단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시장 경쟁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해야 하는 경쟁이다. 가장 성공적인 경쟁자는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가장 잘 부응하는 사람이다. 전 세계의 자선단체들은 시장(market)이 한 시간 이면 충족할 수요 조차도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충족하지 못했다.
시장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타심과 개인 이익을 융합한다. 개인 컴퓨터 혁명을 개척한 빌 게이츠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있다. 그의 성공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이타적으로 최대를 위한 최고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일까? 시장의 아름다움은 빌 게이츠의 동기부여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하든 거의 같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자발적 교환은 두 집단 모두에게 이득이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는 새로운 동업자는 더 많은 상호이익적인 교환을 위한 기회이다. 하지만 제로섬인 상태에서는 오히려 위험하다. 한 사람의 이득은 어떤 이에겐 손실이다. 무료 빵 배급 라인의 한 사람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국유 주택을 다른 사람이 가질 수도 없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건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다. 그리고 빌 게이츠와 달리 사회주의 통치자는 거래가 아닌 절도를 통해 소득을 착취한다.
Fidel Castro(쿠바의 정치가)의 이전 경호원인 Juan Reinaldo Sánchez는 “공산주의 지도자는 왕처럼 살며, 중세의 지배자와 루이 15세를 넘나들며 나라를 운영했다”고 한다. 쿠바의 평민들이 최저 수준의 소득으로 살아가며 쇠퇴하는 경제 속에서 시달릴 때, Castro는 개인소유의 요트와 돌고래, 거북이 농장이 딸린 호사스러운 캐리비언 휴양섬을 가지고 있었다. 아바나에서 그는 지붕에 볼링장, 농구장과 모든 시설이 갖춰진 의료 센터가 있는 거대한 집에 살았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모든 것들은 경쟁과 적자생존 법칙에 의해 좌우되고, 힘이 있는 자는 힘이 없는 자를 먹고 산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소외 받는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 당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지막 방문지인 필라델피아에서 신자 가족들 1만8000명을 상대로 가정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사진=YTN영상캡처 |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 “교황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한 걸 알고 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축복해준 가장 좋아하는 생각이나 구절들을 원하는 책략을 통해 회칙의 용어로 만들었다는 것을 내부 인사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로마가 과학(경제학과, 기후과학)에 관심을 가지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다. 기후 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정부가 행한 모든 것들은 최저소득계층에게 매우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행동을 부추기는 것은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교황은 오히려 더 고통이 될 뿐이다. 그리고 20세기가 분명하게 보여주듯, 경제학에 대한 나쁜 생각은 손해를 끼치기도 하며, 나쁜 정치경제학은 목숨을 빼앗는다. /존 C. 굿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