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내세워 개인 의견 묵살 안돼…표현의 자유 억압이나 마찬가지
표현의 자유는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관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학생회 사건에 대하여

故 백남기 농민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며

2015년 말에 시작돼 그 다음 해인 올해까지 몇 차례에 걸쳐서 이어진, 아마도 다음 다음 세대 즈음부터는 한국현대사 교과서에 실릴 지도 모르는, 민중총궐기는 '범국민행동'이라 불릴 만 했던 가공할 규모의 사건이었다. 이 집회에 참가했다가 물대포에 맞고 넘어져 사경을 헤매다, 결국 9월 25일 세상을 등지고 만 故 백남기 씨에 대한 추모 물결 역시 거세다.

이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일부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이라는 주장을, 다른 쪽에서는 '폭력 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정당한 처사'라는 주장을 내놓으며 여전히 갑론을박 중이다. 공권력에 의해 개인이 상해를 입거나 어떤 손실이 발생할 적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논박이다.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사실 관계가 어찌됐든, 필자는 이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비는 바이다.

사실 필자가 쓰려고 하는 글은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취지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 벌어진 한 해프닝에 한 가지 의문점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라고 본인의 소속을 밝힌 대학생 정은이 씨는 지난 26일, 보수 언론 <뉴데일리>를 통해 故 백남기 씨의 죽음에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소지의 칼럼을 공개했다.

해당 칼럼이 일부 네티즌의 비판을 받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학생회 측은 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아래는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에서 밝힌 입장서의 전문이다.

   
▲ 작년 11월 14일 열린 1차 민중총궐기는 불법폭력이 난무하는 시위대의 경연장이었다. 복면을 쓴 시위대가 사전에 준비한 쇠파이프와 밧줄, 새총으로 경고방송을 하던 경찰들과 경찰차벽을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경찰버스 50여대가 파손되고 경찰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사진=연합뉴스


[ 안녕하십니까.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제33대 학생회입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우가 '뉴데일리'에 기고한 고 백남기 농민에 관한 글이 상당한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먼저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인을 욕보이는 언행을 하거나,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날조하여 퍼트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글은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공식 의견이 아니며 학생 개인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저희는 고 백남기 농민분의 죽음과 세월호 사건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학생회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총력을 가하고 있으며, 상처받으신 유가족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고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또한, 이번 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더욱 노력하는 학생회가 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본문의 오탈자나 맞춤법 및 띄어쓰기 오류 등은 수정하지 않음)]

뉴데일리에 기고되었다는 대학생 정은이 씨의 글은 같은 학과 소속의 학생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신속하게 입장서를 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신속함과 신중함은, 애석하지만 언제나 한 배를 타고 오는 선물은 아니다. 신속한 만큼 신중함은 떨어졌다는 것이 해당 입장서에 대한 필자의 의견이다.

이런 입장서를 발표하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부 네티즌의 과격한 댓글들이 있었을 터다. 그랬기에 학생회는 성급히 해당 학생의 의견과 우리 과 친구들의 '전체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해명을 내놓는다. 고인의 유가족 분들에게 남기는 사과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해명과 사과는 사실, 그들이 해서도 안 되며 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학생회 측의 입장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은이 학생의 의견과 학생회의 의견을 분리하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해당 학생과 학생회라는 조직 자체는 분리해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학생회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총력을 가하고 있'다는 표현과, '이번 사건에 책임을 느낀'다는 대목 때문이다.

어떤 단체나 조직이 개인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지려면, 적어도 그 개인에게 있어서 일정한 종류의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나 자격을 부여 받은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정은이 씨의 해당 기고문의 정부당함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어쨌든 그 제기된 '윤리적 부당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종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해당 학생이 '학생회 소속'이어야 하며, 학생회 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행위가 발생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학생회가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대표하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것에 비해, '정은이 씨'라는 개별 학생에게는 한 학교나 학과를 대표할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개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하며 소속을 밝힐 뿐이다. 한 개인이 특정 학교의 특정 학과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그 학과의 대표성을 위임 받은 자치 기구가 그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여 대신 사과한다'는 표현은 지나친 월권행위이다. 학생회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 사진은 작년 11월 14일 광화문 앞에서 벌어진 불법폭력시위의 모습./사진=한국대학생포럼


이 사건이 일파만파 불어나 커지게 된 것에 아마도 가장 억울할 사람은 정은이 씨 본인일 것이다. 그는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언론에 기고했다는 이유로, 아무 관계없는 인위적인 조직에 의해 본인의 양심의 자유를 빼앗긴 셈이다.

이는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학생회가 개별 학생의 언행을 '옳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고, '저희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으로 해당 학생과 학과 전체를 분리하려고 하는 것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수적으로도 우세한데다 권력을 가진 조직이 힘없는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은, 적어도 범죄가 아닌 이상 개인의 의견에 대해 함구하는 것만을 의미한다. 힘을 가진 조직의 의도적인 '분리'는 자연스럽게 억압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이러한 입장을 표명한 이상, 정은이 씨는 앞으로 강의실에서 출석을 부를 때 당당하게 손을 들 수나 있을까. 

법은 기본적으로 개별 인간을 최우선으로 둔다. 따라서 조직이나 집단의 표현의 자유며 정치적 자유는 개인의 것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오늘날 각 대학의 학생회들은 당연하다는 듯 해당 학교와 학과의 이름을 달고 너나할 것 없이 각종 정치적 사안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집회 등에 참가해 왔다.

여기서 개별 학생들의 '사소한' 의견이 전체에 의해 묻혀 버리는 것은 다반사이다. '해당 학생의 문제적 의견은 우리 생각과는 다르다'며 스스로를 변호했던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학생회는, 지난 2015년 국정교과서 반대 선언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참여한 바 있다.

이때 내심 학생회의 정치적 행동에 반대하면서도, '학생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묵살당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이 얼마나 더 많이 숨어 있을까. 애도와 추모는 공손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정의가 이토록 불손해서는 안 된다. /박성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한국대학생포럼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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