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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
정세균 국회의장이 자장면을 먹는 사진을 SNS에 올려 언론을 탔다. 여당 대표가 국회의장의 편파 심판에 항의하는 의미로 단식투쟁을 벌이다 탈진했는데 그 와중에 먹는 사진을 자랑하다니, 그 센스에 "대단하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직접 올린 게 아니라 정 의장 SNS를 관리하는 팬클럽이 올린 것이라고 해명을 하긴 했다. 개념 없어 뵈는 해프닝이긴 해도 정 의장 쪽 정서를 반영하는 것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요컨대 난 잘못한 게 없으니 "법대로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의장의 당적이탈 의무는 정치적 중립의무와는 관계다 없다"는 본인 말대로 국회법에 국회의장의 정치중립이란 단어가 없는 이상 본인은 계속 자기 정치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정 의장은 국회의장이 당적을 갖지 않도록 한 국회법 규정을 엉뚱하게 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단식을 중단했고, 사태가 수습국면이라 해도 이 문제는 반드시 지적하고 가야 한다.
정 의장은 얼마 전 대학 특강에서 "고(故) 이만섭 의장 시절에 '의장의 당적을 없애도록 하자'는 말이 나왔고, 이것이 중립의무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시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이나 특별위원회위원장이나 국회에서 회의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은 모두 중립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틀린 말이다.
국회법이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을 규정한 이유의 중대성을 심각하게 물타기하는 말이다. 상임위원장이나 특별위원회위원장이 중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과 국회의장의 당적이탈 의무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정 의장이 언급한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이 당적을 갖는 것을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에 앞장섰던 분으로, 이 분의 말에 진짜가 담겨 있다. 신동아 2002년 4월호 인터뷰 기사에는 이 전 의장이 왜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시키는 국회법 개정에 앞장섰는지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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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균 의장은 국회법 위반 이전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기본적인 개념이 없다. 자기정치 자기 권위부터 챙기느라 민생과 안보도 팽개쳤다. 더욱이 고 이만섭 국회의장까지 들먹이며 자기변명을 위한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 소통을 거부하는 독선의 정치란 바로 정 의장의 이런 언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진=연합뉴스 |
자기 이익과 필요에 따라서 움직이는 국회의장의 이중처신
"내가 16대 국회의장이 된 직후부터 국회의장은 당적을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그래야 여야를 초월해서 공정한 국회 운영을 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어요. 정치개혁특별위원들에게 2월말까지 이 법이 통과되도록 해달라고 여러 번 독촉했어요. 왜냐하면 내 임기 전에 만들어놓아야지, 내가 그만두면 이 법을 추진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에요. 국회의장이 청와대 눈치 안 보고 또 자기가 속해 있는 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올바르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한 겁니다.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진일보한 것이죠."
국회의장이 입법부 수장인데도 청와대와 집권여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태정치를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만섭 전 의장은 2002년 3월 법안이 통과되자 민주당을 탈당해 당적이 없는 첫 국회의장이 됐다.
신동아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이만섭 전 의장은 '공정하고 민주적인 국회 운영'을 최우선으로 강조했던 인물이다. 국회의장이 당적을 지닌 채로 집권여당이든 야당이든 자기 친정에 매어 공정성을 잃어선 안 된다고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국회의장의 권위는 바로 이런 품격과 소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정 의장은 어떤가. 품격은커녕 법정신조차 깡그리 무시했다.
국회법에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의장이 차수를 변경할 수 있다고 한 대목을 정 의장은 어떻게 처리했나. 의사국 직원을 통해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에 종이 쪼가리 하나 덜렁 보내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다고 주장했다. 협의가 물론 합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산회 선포도 없이 차수를 변경하고 교섭단체대표의원인 여당 원내대표의 의사는 무시하는 게 협의하는 자세인가.
정 의장은 여당 대표가 목숨 건 단식으로 맞서면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책임론이 불거지자 자기 상대는 3당 원내대표라고 했다. 차수 변경 협의 때는 여당 원내대표를 투명인간 취급하더니 본인 방패막이가 필요할 땐 또 원내대표를 앞세우는 것이 정 의장의 처신이었다. 너무 비겁한 것 아닌가. 정 의장의 이런 얍삽한 처신은 한두 사례가 아니다.
20대 국회 개원사에선 사드에 반대한다더니 미국에 가선 사드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딴 말을 했다. 얼마 전 외신기자들을 초청한 간담회에 가서는 사드관련 정보가 미흡하다고 마치 정부가 문제인 양 말했다. 국회는 그동안 북핵이나 안보이슈 사안이 생기면 국방장관 등을 불러다 숱하게 보고를 받았다. 정 의장은 입법부 의장으로서 국방부 국정원 등 관계당국으로부터 얼마든지 정보를 받을 수도 있다. 사드 정보가 미흡하다는 말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얘기다. 그런데도 외신 기자들 앞에서 그런 언론플레이를 했다.
초선보다 못한 깜냥 자랑한 국회의장의 부끄러운 '정세균 방지법'
정 의장의 지금까지 언행이나 행보를 보면 솔직히 본인이나 친정 더민주당을 위해서 교활한 거짓말을 동원해 저급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맨입' 발언도 "우리 송 최고 잘하더라" 발언도 국회의장으로서 중립성과 품격이 아닌 친정을 싸고도는 일개 국회의원의 편파성이나 자랑하는 수준과 '격'을 증명한 것에 불과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 의장은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의원들이 고민하고 애써 만든 국회법의 정신을 우습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정 의장은 "고(故) 이만섭 의장 시절에 '의장의 당적을 없애도록 하자'는 말이 나왔고, 이것이 중립의무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시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고 했지만 앞에서 보았듯 이만섭 전 의장의 발언은 전혀 다르다.
고인까지 들먹이며 자기변명을 위해 거짓말을 한 꼴 아닌가. 국회의장이 헌법과 국회법 정신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사건건 야당을 편들면서 자기정치의 장으로 악용하는 모습은 추함 그 자체다. 소통을 거부하는 독선의 정치란 바로 정 의장의 이런 언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불의와 왜곡에 타협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통이 아니다. 불통이란 바로 이렇게 자기만의 체면과 이익을 위해 모두의 뒤로 숨어 사태를 난장판을 만드는 정치다. 이건 국민이 그렇게 혐오하는 구태정치, 무책임 정치의 표본이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이 아무리 무리하다 비난을 산들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으로서 국감파행의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한들 정 의장이 이번에 보여준 행태는 화석처럼 남을 수밖에 없다.
자기밖에 모르는 무책임한 불통정치의 대명사로 역사에 그대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정 의장은 본인의 졸렬한 처신으로 인해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소위 '정세균 방지법'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온 이 현실을 몹시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 대표가 단식을 끝내고 새누리당이 국감복귀 선언을 했지만 정 의장은 끝내 여당에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국회의 어른이 아니라 일개 초선보다 못한 깜냥을 재확인시켜준 꼴이다.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을 경신할 것이라는 우려를 국회의장이 초반부터 몸소 증명하는 꼴을 보자니 필자 같은 국민들은 화병이 날 지경이다.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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