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경제법 위기 몰린 재계②]투기자본 공격
재계 "공정 경쟁 …기업 자율에 맞겨야" 일성
‘최순실 게이트’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고 있는 재계의 시름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법’ 개정안이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노믹스’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 ‘소비절벽’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는 좌불안석이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이달 임시국회에서 통과할 경우 기업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다. 이에 경제단체들와 재계는 정치권의 합리적인 법안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권이 ‘포퓰리즘’으로 졸속 입법을 강행할 경우 되돌리기 어려운 파장이 예상된다. 미디어펜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이 불러올 영향을 4회에 걸쳐 심층 분석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상법, 잘못 건드리면 ‘메가톤급 폭탄’
②삼성·현대 '핵심기업' 외국자본 놀이터 되나
③공정거래법, 기업 체력보강·체질 개선부터 고려해야
④포퓰리즘에 새카맣게 속타는 재계

   
▲ 수출을 위해 선적을 앞두고 있는 자동차 /연합

[미디어펜=조한진 기자]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핵심기업’들이 해외 투기 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야당이 추진하는 상법개정안이 이달 임시국회를 통과할 경우 해외 투기자본이 이를 악용해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훼손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상법 개정안 가운데 재계가 가장 걱정하는 조항은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해외 투기자본이 차익만 챙기고 떠날 경우 기업경쟁력 약화는 물론, 투자자들의 손실 등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전망된다.

16일 재계와 경제단체에 따르면 상법개정안의 주요 조항 가운데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은 기업의 성장동력 확보와 소액주주의 권익 향상 보다는 투기펀드만 배를 불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외국 투기자본 영향력↑

한국경제연구원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가 입법되면 국내 10대 기업(매출액 기준) 가운데 6개 회사의 감사위원을 외국계 자본이 독식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헤지펀드 등 외국계 투자기관이 힘을 모으면 회사당 3~5명 수준인 감사위원을 싹쓸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총수와 임원, 전략적 투자자(주식 대량 보유 개인‧연합기업), 연기금을 포함한 국내기관투자자를 합쳐도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기아차,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 등은 세를 규합한 해외 기관들이 감사위원을 모두 선임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해외 기관들은 배당확대 등 기업 경영에 사사건건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은 상법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의 모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에서는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이 될 이사’를 별도 주주총회에서 분리선임토록 하고 있다.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선임할 경우 대주주는 보유 주식 수에 관계없이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외국계 투기자본은 ‘지분 쪼개기’ 등을 통해 3% 제한을 피하고,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주주보다 적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를 다수 선임할 수 있는 구조다.

현행 상법에서는 전체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일괄선임하고, 이들 중 감사위원회 위원이 될 이사를 별도의 주주총회에서 다시 선임한다. 이때만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지난 2003년 SK와 경영권 분쟁을 버린 소버린은 당시 보유 지분 14.99%를 5개로 나눴다. 소버린은 2.99%씩 쪼갠 지분을 통해 의결권을 모두 행사했다. 이에 비해 SK 최대 주주측은 3%밖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후 소버린은 1조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경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감사위원 선출 등 의결권 대결에 있어 현실적으로 대주주 등 국내 투자자들은 3% 의결권 제한을 받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엘리엇 매니지먼트, 소버린 등 단기투기자본으로 알려진 기관투자자는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외국계 연합의 실체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삼성 서초사옥 전경 /연합

집중투표제, 먹튀 투기자본 양산?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이사 한 명이 이사회에 포진할 수 있는 기업은 10대 기업 중 절반인 5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이 해당 기업으로 분석된다.

집중투표제는 소수 주주가 선호하는 이사의 선출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1998년 개정상법에서 도입됐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원하지 않는 기업은 출석주주 3분의2 이상 찬성 의결로 정관을 변경해 도입을 배제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어 소수주주들이 도입을 원한다면 정관에서 배제하기 쉽지 않다. 현재도 사실상 집중투표제를 강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미국과 일본 등 20여 개국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했으나 의무 사항은 아니다. 헤지펀드와 해외투기 자본 등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부장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의 약점을 파고 든 헤지펀드가 과거 국내 기업 이사회에 진출해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 지난 2006년 칼아이칸은 헤지펀드 세력을 규합해 KT&G 주식 6.59%를 사들였다. 당시 KT&G는 집중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칼아이칸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외이사 1명을 KT&G 이사회에 포함시켰다. 이후 칼아이칸은 KT&G가 장기사업을 위해 보유한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회계장부 제출은 물론 자회사인 한국인삼 공사의 기업공개 등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8000억원 가량을 쏟아 부었다. 칼아이칸은 주식매각과 배당금 등을 통해 1482억 차익을 실현하고 손을 털었다.

해외 헤지펀드들의 이익 추구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과거 헤지펀들은 적대적 M&A를 통해 이사회를 장악한 뒤 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등의 단기수익에 집중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최소 비용으로 이익을 극대화 하는 상황이다. 특정 기업의 최소지분을 확보하고, 1~2명을 이사회에 진출 시켜 자산이나 사업을 매각을 요구해 주가를 끌어 올린 뒤 차익을 실현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박수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방향이 있기 때문에 집중투표제 실시 여부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며 “집중투표제도가 의무화되면 외국 투기펀드들에 의해 우리 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