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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68)-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지중해 사색 기행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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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7-05-18 08: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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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68)-문명의 산실 지중해 국가들의 어제와 오늘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 『지중해 기행』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터키의 지배 아래에 있던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그가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며 평생 자유를 갈망하는 작품들을 써냈던 것도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연스런 노력의 일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작품 활동 과정에서 많은 곳들을 여행했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지중해, 이집트, 러시아 구석구석을 여행했고, 말년에는 중국과 일본도 들렀다. <지중해 기행>은 지중해 주변의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반도, 예루살렘, 키프로스의 여행기다.

이 책도 그의 다른 기행기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풍물 소개의 여행기가 아니라, 과거 문명과 현재의 상황을 반추하고 대조하는 성찰과 사색의 기록물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여행지마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와 현지 상황의 자세한 묘사를 많이 기술하고 있어 마치 또 다른 소설 한편을 보는 듯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당대의 리더나 민초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무솔리니와의 대화를 통해 무솔리니의 파시즘적 분투에서 독재자의 비극적 운명을 예견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투사적 신념과 열정에 매력을 느끼는 듯 뉘앙스를 풍긴다. 

이는 카잔차키스 역시 당시 레닌의 볼셰비즘 사상에 심취하고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에 빠져있었던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어쨌든 그가 순수한 자유주의 철학을 온전하게 정립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던 그의 이념적 편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문명에 앞서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이집트 방문했다. 그는 그곳에서 나일 강이 이집트인들의 현실적 삶과 문명을 낳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관찰한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헤로도토스의 말처럼 나일강은 홍수와 범람을 통해 하류에 비옥한 땅을 선사했다. 나일강은 이집트인에게 생명의 원천이자, 수력학, 기하학을 탄생시킨 동력이기도 했다. 

엄격한 전제정치권력이 탄생한 것도 나일강 홍수의 통제를 위한 필요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집트인들에게서 카잔차키스는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읽기보다 백성들의 강제노역의 피와 땀을 상기하면서, 내세의 불멸을 기원했던 파라오들의 헛된 욕망의 허무를 통찰한다. 그는 시민적 합의를 통해 현세 국가의 안녕과 기복을 위해 신전을 건축했던 그리스인들의 현실주의적이고 자유로웠던 삶과 대조적이었던 이집트인들의 참혹했던 현실을 대비하는 듯하다.

'신이 밟고 간 산' 시나이 반도의 여행에서 카잔스키는 자신의 태생의 정체성과 종교적 관점에 대한 고민을 내비친다. 그는 막막한 사막을 횡단하면서 모세와 함께 광야를 헤매던 히브리 민족의 아픔을 추상하기도 하면서, 가난하면서도 서로의 재산을 존중하며 외부인을 환대하는 베두인족의 정직하고 소박한 삶에 공감한다. 
 
그는 자신이 크레타 섬의 야만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이 야만인 마을들은 강제 이주된 이교도 사라센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조상이 그리스인이 아니라 베두인이라 상상하고 싶어 하는 심사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카잔차키스의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카잔차키스는 예루살렘 방문기에서 인류의 진보와 자유의 확장, 민족과 종교 간의 갈등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유대정신에 무한한 찬탄과 희망을 감추지 않는다. 2천년에 걸쳐 히브리 민족이 겪은 박해와 살육, 경멸과 추방의 역사는 히브리 민족을 담금질하여 인류사회를 발전시키는 "지상의 효모"로 다듬어졌다는 것이다. 

히브리 민족의 디아스포라(Diaspora)가 히브리 민족의 우수한 자질을 만들어 주었고, 이런 자질이 정체된 모든 현상과 사상을 혁신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카잔차키스가 당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창설하려는 시온 부흥 운동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것도 실은 유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역설적 표현이었다. 

유대인이 염원하는 정착과 나라의 창설은 결국 모든 조화와 정체를 파열시키는 민족적 본질을 약화시키고, 아랍인들과의 숙명적 대결을 격화시킬 것이란 의미다. 이런 그의 인식이 유대인들에겐 매몰차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조화를 깨고 진화를 몰아붙일 수 있는 누군가의 역할을 유대인에게서 찾으려했던 카잔차키스의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은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 
 
카잔차키스는 격동의 20세기 전반기를 뜨겁게 고민한 현실적 지식인임과 동시에 절대적 자유와 인류의 진보를 희구한 방랑의 구도자였다. 그는 수도원을 찾아 단식을 하는 등 직접 가혹한 고행을 해보기도 한다. 이 역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영원한 평안과 자유를 갈구하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스스로 현실을 타파하는 '행동하는 인간' 내지는 민중이 갈구를 현실화시키는 '영웅'이 되진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신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인간의 분투 그 자체를 더 고귀하게 여겼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쇠락한 그리스의 현실에서 "평생 고뇌 속에 산 '책벌레형' 지식인"이었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Classic 81: 『지중해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송은경 옮김, 열린책들(2011), 246쪽.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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