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증축 공간에서 발화…'법의 사각지대' 스프링클러·제연시설 미설치로 피해 커져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사망자 39명·부상자 151명을 낳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를 계기로 스프링클러 설치의무 없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 전국 중소병원 건물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1000여곳에 달한다고 추정되는 해당 건물들은 층수 및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법정 규모가 작아 스프링클러는 물론이고 연기배출을 위한 배연·제연시설 설치 의무도 없다.

이로 인해 중소병원의 소방안전 기준이 대형건물에 입주한 동네의원이나 헬스클럽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일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28일 "대형건물이 입주한 수도권 중소병원 외에 지방의료기관들 대부분은 4층 이하이고 면적이 적어 스프링클러 설치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30~99개 병상을 갖춘 중소병원은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전국에 일반병원 857곳, 한방병원 304곳 등 1161개에 달하며, 보건복지부는 이 중 밀양 세종병원처럼 독립건물에 입주한 1000여 곳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의 경우 불법개조공간인 1층 응급실 내 탕비실에서 화재가 일어난 직후 비상발전기가 멈춰 정전이 일어났고, 스프링클러와 1층 방화문 없이 2층 방화문 틈새 및 배관으로 유독가스가 삽시간에 번져 피해 규모가 커졌다.

관건은 세종병원이 원내 연면적(1489㎡)의 10%인 147.04㎡를 불법 증축해 지난 2012년부터 매년 이행강제금을 내오면서 비상구 등 대피시설을 개선하지 않았고,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화재에 대비한 주요시설을 갖출 의무가 없었다는 점이다.

연기배출·제연시설 설치 의무는 6층 이상 건물이나 바닥면적 1000㎡ 이상 건물에 있고, 스프링클러는 4층 이상이면서 바닥면적이 600㎡여야 한다.

5층 규모의 세종병원은 바닥면적이 224.69㎡에 불과해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화재예방·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었고, 종합병원과 달리 일반병원이라 다중이용업소법에 따른 방염 내장재 사용 의무도 없었다.

   
▲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29일 새해 첫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고 중소병원을 포함한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화재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 사진은 26일 오전7시30분경 불이 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소방대원이 화재원인을 조사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불특정 다수가 주로 이용하는 시설을 따로 정해 건물 내장재에 방염처리를 의무화한 다중이용업소법의 경우, 노래방과 고시원 등 화재가 잦았던 곳 위주로 제정된 법이라 일반병원인 중소병원은 제외되어 있다.

결국 응급실 내 탕비실에서 발화가 일어난 후 커튼·매트리스·스티로폼 등 불에 타기 쉬운 원내 내장재들로 인해 유독가스가 급속도로 번져 피해자가 속출했다.

반복되는 화재 참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초기에 진화하고 연기가 침투하지 않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만드는 것만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밀양 세종병원 참사 발생 하루 뒤 대구 신라병원(5층 건물)에서도 불이 났지만, 방화문 폐쇄와 신속한 신고 등 적절한 초동 대처로 인명피해를 막았다.

경남소방본부 관계자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소형 독립건물에 자리한 병원들의 경우 현장에서의 환자 구조에 한계가 있어 사전예방을 위한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며 "미비한 병원에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를 의무 설치하고 방화문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화재안전기준 및 소방시설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규모 건물이라고 해도 1층 방화문 설치를 의무화하고 피난계단화시켜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건축물 화재 발생시 건축주와 시공사에게 책임을 물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고, 환자 안전관리 전문가인 이상일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부 의료기관 인증평가에서도 소방안전을 꼼꼼히 따지도록 다른 건물보다 의료시설의 소방안전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29일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어 안전관리 취약시설 29만 여곳에 대해 안전대진단을 하고 중소병원을 포함한 다중이용시설의 화재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소방 안전법을 비껴갔던 중소건물들에 대해 향후 시설 사용목적과 입주자 여건을 고려한 안전기준 강화에 따라 화재 참사를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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