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신코(信仰)와 덴코(전향:轉向) 3
                           
붉은 줄이 가슴에 그인 푸른 제복을 입은 호송원이 요시다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기자, 곧 문틈으로 요시다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들어와요!"

요시다는 평소와 다름없이 늘 자신만만했다. 오늘도 그의 목소리는 노래하는 요정처럼 통통 튀었다. 그는 방안에 들어 선 손양원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것이 야지랑스럽게도 그로서는 손양원의 모습이 뜻밖이라는 인상을 지은 것이다. 이레가 지났지만 손양원의 얼굴엔 김관출에게 폭행을 당해 생긴 피멍이 선명했다. 

"아니! 손 목사,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허허, 연기도 잘 하시네?"
"무슨 말이요?"
"세상사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인데, 요시다 검사님이 모르는 일이 있다니, 세상에 참, 이런 일도 있네요, 허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구타를 당하고도 손양원은 일말의 감정의 동요 없이 요시다 앞에서 신소리를 할 만큼 아주 여유로웠다.

반면 폭행을 사주한 요시다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손양원의 당당한 태도도 전혀 예상치 못했거니와 손양원의 농담에는 자신의 향한 비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가해자 앞에 기가 죽거나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거나 아니면 흥분해서 화를 내거나 하는 것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사람을 다루는데 이골이 난 요시다 입장에서는 감정이 흔들리는 이런 사람들을 다루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손양원은 자신을 비웃듯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더 여물어 가는 곡식처럼 그 역시 더 야물어지고 단단해지고만 있었다.

결국 자신이 스스로의 자존심에 먹칠을 해가면서까지 김관철에게 애써 부탁한 일이 고작 시정잡배들의 한풀이 폭행과 다름없이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 한심해 어이가 없었다.

그는 손양원이 던진 언중유골에 가슴이 뜨끔 해서, 민망한 나머지 할 말을 잊고 잠시 천장에 매달린 푸른 모빌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태연을 가장한 외견상의 모습과는 달리 그의 머릿속은 지진이 날만큼 팽팽한 긴장이 꿈틀꿈틀 일어서고 있었다.

오월의 태양이 내뿜은 화기(火氣)가 녹음이 짙어진 법원의 아름다운 후원이 내려다보이는 요시다의 방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한낮의 열기로 방 안이 더운데다 긴장한 탓에 몸에서까지 신열이 올라와 요시다는 자신도 모르게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만춘(晩春)을 늘어지게 즐기고 있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게으른 파리 한 마리가 땀을 흘리고 있는 요시다를 얕보았는지 그 앞에서 어설픈 날개 짓을 하면서 그를 희롱하다, 그가 짜증스럽게 휘두른 손에 맞아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철없는 파리의 비극이었다. 미물이든 인간이든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했다.
'아니, 이게 미쳤나, 파리 새끼가?'

찌푸린 요시다의 이맛살이 경련을 일으키듯 씰룩거렸다.  
'젠장 근데 정말 이게 어쩐 일이야? 아무리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만 정말 이건 비밀이었는데, 나하고 관출이만 알고 있는 것이었는데......'    

요시다는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관출이처럼 입이 무거운 놈이 입을 떠벌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럼 대체 누구야?'

암만 생각해도 요시다는 당최 짚이는 구석이 없어 갑갑했다. 기름을 잔뜩 발라 머리를 뒤로 넘긴 요시다의 머리칼이 쭈뼛거렸다. 그는 정말 당황하고 있었다. 양심이라곤 두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고 얼굴에 두꺼운 철판까지 깔았다고 소문난 그였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을 만나고 보니 그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손양원은 그가 자신을 다시 부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요시다를 만나는 게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의 태도와 표정이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당황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손양원은 왠지 자꾸만 쓴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어찌 그렇게 악독한 짓을 시킬 수 있었을까? 이게 권력의 가진 사람들의 진면목인가?'

   
▲ 영화 '남영동 1985' 스틸 컷.

권력을 잃는 순간 한없이 초라해지면서도, 완장을 차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가 살아 올챙이 시절을 잊은 개구리마냥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이 요시다와 같이 이중적인 인격을 가진 비루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간수 무라카미와 같이 마음씨 고운 사람도 많다. 그는 당직을 서다가 우연히 요시다와 김관철이 조우하는 걸 보면서 알게 된 손양원 폭행 사건의 전말을 맨 처음 손양원에게 전한 인물이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요시다의 손을 보니 그처럼 극악무도해 보이는 사람도 별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문득 그에 대한 연민이 들기도 했는데 이런 자신의 모습에 손양원은 또 헛웃음이 지어졌다. 요시다가 시키고 김관출이 자행한 그에 대한 고문은 정말 꿈에서라도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자신의 두 배가 넘는 거구가 뒤에서 자신을 짓누르며 그의 거대한 남성을 자신의 항문으로 밀어 넣을 땐 정말 손양원은 하늘이 노랬다.

김관출의 정액이 자신의 가랑이를 타고 흘러내릴 땐 손양원은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그에게 당한 성 고문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아래가 쓰라려 손양원은 아직도 잘 걷지를 못했다. 손양원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그날의 기억 때문에 손양원은 한동안 음식 냄새만 맡아도 입덧을 하듯 자꾸만 헛구역질을 하여 밥을 한 숟가락도 먹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너무 괴로워서 김관출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또 마음이 아파야 했다. 죄책감에 앞서 자책감이 밀려왔던 것이다.

'내 그릇이 이것 밖에 안 되는가? 내 믿음이 왜 이리 부족한가?'

한편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자꾸만 자신을 시험하는지 묻고도 싶었다. 그래서 아이처럼 투정도 부렸다.

'주님, 이젠 정말 저에 대한 시험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 정신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저를 더 시험 더 하셔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다가도 그는 믿음이 깊은 신앙인답게 진정에서 우러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벽을 바라보고앉아 다시 뜨거운 회개를 하곤 했다. 

'주여, 모든 것을 주의 뜻대로 하소서.' 

아무튼 고문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에, 그는 술 취한 사람처럼 마음이 잠시 갈지자를 그리며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그는 노인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지혜로웠고 소년처럼 마음이 거짓 없이 맑고 순수해, 금방 자신의 눈을 막고 있던 분노의 장막과 가슴을 덮고 있던 미움의 거적때기를 훌쩍 벗어버리고, 자신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 그들을 모두 용서했다. 조건 없이 용서했다.

자신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미움이라는 마음이 자신을 들볶고 자신을 괴롭히고 끝내는 자신을 해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용서만이 자신에게 평안과 안식 그리고 자유를 준다는 것도 더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굳이 그들이 자신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자신이 앞서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고는 이를 알게 해준 신에게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손양원은 진작 그를 용서하기로 하였지만, 그에게 묻고 싶은 것만은 있었다. 자신에게 왜 상상할 수 없는 지독한 고문을 가해야 했는지 그 이유는 꼭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요시다의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마저도 포기했다.

고문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었다면, 요시다가 자신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어찌할 줄   몰라 허둥거리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철학도 소신도 없는 사람에게 의문을 제기하며 항의를 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애타게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 판단했다. 마치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우매한 행동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싶었다. 그래서 그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묻기를 그만두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똥 낀 놈이 성내는 격으로 요시다가 오히려 얼굴까지 붉혀가며 더 성을 내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말을 듣자하니 좀 불쾌하네요, 마치 꼭 내가 시켜서 맞았다, 그런 말씀 같은데, 이거 정말 유감입니다. 증거 있어요? 우리 본토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처럼 사람을 절대 때리지 않습니다."

"됐습니다, 관둡시다."    

피해자를 앞에 두고 사과 한마디 없이 딴청만 피우고 있는 요시다의 몰염치한 행동에 손양원이 진저리를 내며 정색을 하고는 목소리를 높였고, 요시다도 손양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머쓱한 얼굴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뒤통수를 긁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켕기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차피 손양원과 최후의 담판을 지어야 하는 날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폭행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처럼, 불필요한 언행으로 굳이 손양원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요시다도 생각했다.

마음 씀씀이가 고약한 요시다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은근히 손양원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손양원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홧김에 저지른 일이지만 김관출에게 폭행을 사주한 일을 그 역시 후회하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 이 순간 요시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손양원의 생각을 바꾸어 그에게서 전향을 이끌어내는 일이었다. 당국에서도 손양원의 전향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일제는 태평양 전쟁에 나서면서 전쟁에 대한 당위성과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고 내선 일체(內鮮一體)를 강화하는 의미에서 신사 참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초기에는 31명이 옥살이를 하나가 순교를 했고 만이천명이나 넘는 기독인들이 신사 참배를 반대하여 투옥이 될 만큼 반대 기류가 강했다.

그런데 매에 장사가 없다고 끈질긴 일제의 협박에 결국 적지 않은 기독인들이 무릎을 꿇었고, 이들은 조선 장로교 총회를 열어 신사참배가 종교 의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총독부의 신사참배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총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부산 성경학교를 세운 목사 주기철, 고려신학파의 목사 한상동, 그리고 애수 애향원의 담임 목사 손양원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주로 무교회주의 운동을 펼친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인 목회자들이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손양원 역시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형식보다는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도 격렬해졌고 동시에 이들에 대한 회유 작업도 병행되었다.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손양원에 대한 회유에 성공한다면 총독부로서는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미 손양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자로 불리며 뜨거운 칭송을 받고 있어, 그는 조선 사람들 사이엔 여느 유명한 가수에 비할 바 없는  스타였다.  

그런 그가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 신사참배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공개적으로 신사참배에 나서준다면, 조선의 일본화를 의미하는 내선 일체 운동을 필사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제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대 사건이 될 게 틀림이 없었다.

그에 대한 회유에 성공한다면, 요시다로서도 특별한 영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마지막 담판을 앞두고 자못 긴장이 되었던지, 요시다는 손양원에게 차를 내어 준 후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담뱃불을 붙였다.   

하얀 목련이 만개한 오월의 봄이 단박에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지럽도록 봄은 화사했다. 평소 같았으면 애지중지하는 니콘 카메라를 들고 나가 뜰의 속살을 헤집고 꽃길 사이를 누비며 셔터를 마구 눌렀을 것이다.

그는 입에 문 필터를 껌처럼 질겅질겅 두어 번 씹었다. 그리고는 깊이 빨아들인 연기를 자신의 피로 덥인 후 다시 오월의 정원 속으로 날려 보냈다.

이것은 그가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전의를 다질 때 벌이는 하나의 의식과 같은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모든 것을 불태워 말끔하게 청소를 하겠다는 뜻이다. 우상 숭배라는 구실을 들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나선 손양원의 얼빠진 생각을 기필코 뜯어고쳐 놓고야 말겠다는 그의 다짐이기도 했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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